[특집| 내부고발자, 그 후]내부고발자 보호제도 ‘못 믿을 구석’

공직자가 외부 통해 고발 땐 보호 못받고 오히려 파면에 형사적 책임까지

국가정보원 직원 정모씨(49)는 지난 18대 대선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여론조작 의혹을 민주당에 제보한 뒤 자신이 오히려 기소됐다. 직무상의 비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국정원에서 파면된 데 이어 형사적인 책임까지 추궁당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기관의 내부 공익제보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만약 정씨가 국정원의 부패행위를 알고 이를 ‘합법적으로’ 고발하려 했다면 어떤 방식을 택해야 했을까. 현행법에 따르면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나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혹은 당사자가 소속된 국정원에 신고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택하기 힘든 방법이다.

정씨의 경우처럼 공직자가 정당이나 언론, 시민단체 등을 통해 내부고발을 할 경우 법적으로 보호받을 길이 막막하다. 고발 내용이 사실이어도 현직 공무원이라면 해당 기관에서 비밀누설로 처벌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보호는커녕 정씨처럼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재판을 통해 국가와 싸울 수밖에 없다.

어린이집의 비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보육교사들이 지난 6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권익위원회 앞에서 공익신고자 보호조치를 신청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호요청 178건 중 실제 조치는 62건
이런 상황에서는 적극적인 내부고발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국가기관 내부의 부정부패를 방지한다는 취지의 법이 반쪽 역할만을 하는 데 그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공분야의 부패행위 신고와 제보자 보호 등의 내용을 규정하는 법은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2001년 제정된 이후 올해 9월까지 12년 동안 이 법에 따라 국민권익위가 신고를 받고 적발한 부패행위는 총 626건이다.

부패행위와 관련해 적발된 금액은 4669억7400만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내부신고로 적발된 건수는 308건으로 전체의 49%를 차지했고, 특히 적발 금액으로 보면 전체의 84%인 3920억7700만원이 내부고발을 통해 적발됐다. 부패행위 적발과 방지에 내부고발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 공익부정행위조사전문가협회의 2012년 연차보고서에서도 조직 내부의 부정행위는 내부자의 신고로 알려질 확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 재확인된다. 신고에 따른 부정행위 적발 비율은 43.3%로 지난 10년간 1위를 차지했고, 이 가운데 50.9%가 내부직원의 신고로 이뤄져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조직 내부의 부정부패를 적발·시정하기 위해선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활성화시키고 그들의 신분과 신변을 보장할 적극적인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 보호조치는 그 역할에 비해 미흡했다. 2002년 이후 부패신고 내부고발자의 보호 요청 건수는 총 178건이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 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62건에 불과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신분보장 요청 145건 가운데 44건을 제외한 101건은 기각이나 취하·종결 등의 이유로 신분보장을 받지 못했다. 신변보호 요청은 21건 중 14건만 이뤄졌고, 신분 비공개 규정 위반자에 대한 징계 요청도 12건 중 4건만 조치됐다. 내부고발자 보호조치에 대해 해당기관이 불복하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6차례나 됐다.

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내부고발한 공무원 중에 아직 다니는 분들도 있다”면서 “그런데 이 분들이 그만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내가 조금 잘못하고 꼬투리 잡히면 나를 자를 거다.’ 물론 피해의식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생길 수밖에 없다. 그걸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느냐. 우리 사회가 그 사람의 내부고발을 통해서 얻은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개인에게 피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민간분야의 공익 침해행위를 신고할 경우에도 신변이나 신분 보호제도가 미흡한 것은 마찬가지다. 올해 3월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을 마친 강모씨(26)는 복무 당시 소속 업체가 방사선 피폭 위험이 있음에도 안전관리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위법사실을 관계당국에 신고했다.

하지만 강씨는 결과적으로 추가 복무기간이 늘어나는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조사과정에서 회사의 지시로 지정된 부서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복무한 사실이 밝혀져 440일의 연장근무를 통보받은 것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신고자를 위한 감면조치를 형량에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강씨는 공익신고를 했음에도 복무기간 감경과 같은 보상은 받을 수 없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2011년 이 법이 제정될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당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여야간 갈등과 관련 정부 부처들의 반대로 법이 규정하는 ‘공익 침해행위’의 범위가 입법예고안에 비해 크게 축소됐기 때문이다.

당초의 입법예고안에는 공익신고 및 신고자 보호대상 법률로 형법을 비롯해 456개 법률이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180개 법률만 포함된 채 시행됐다. 미국에서는 ‘비리행위를 합리적으로 추정 가능할 경우’ 공익신고의 범위 안에 폭넓게 인정되고, 영국에선 ‘비리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공익신고자로 간주되는 것과 비견된다.

결국 2년간의 시행착오 과정에서 강씨와 같은 피해사례가 생기자 지난 9월 개정안이 발의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 개정안은 대상 법률 수를 280개로 늘리고, 강씨의 예처럼 공익신고자 보호조치 결정이 신고자가 속한 회사의 소송 때문에 효력이 정지되는 일이 없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기업 불법비리 고발은 보호대상서 제외
그러나 개정안 역시 내부고발자 보호 취지를 달성하기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익 침해행위의 범위에 기업의 불법·비리행위는 포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등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상대로 진행했던 내부고발 과정에서 공익신고 대상 법률에 포함될 필요가 드러났지만 개정안에는 여전히 포함되지 않았다. 차명계좌나 분식회계 등 기업의 부패행위에 대한 공익신고는 보호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의 동양그룹 사태나 과거 부실 저축은행 사태와 같이 예금자들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방만한 경영 행태 역시 공익 침해행위에 속하지 않게 된다. 상법과 형법 같은 가장 기본적인 법률이 공익 신고 대상 법률에서 제외된 채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익신고 시 이름과 주소, 직업 등 인적사항을 기록해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어 익명 신고가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현행 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내부고발자가 보복의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익명이 보장되는 데다 변호사 등 법적 대리인을 선임하는 등의 방법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는 점도 공익신고가 활성화되지 않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장용진 고려대 연구교수(행정학)는 “아직도 공익제보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고 제보자를 보호하거나 보복행위를 막으려는 조직의 분위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라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문 상임이사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줄 내부고발을 촉발하기 위해서라도 고발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마련돼야 한다며 내부고발자에게 최소한 10년치 연봉을 보장해주는 파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법은 내부고발자의 신분을 보장하는 선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대단한 특혜도 아닐 뿐더러 현실에서는 신분보장마저도 되지 않는다”며 내부 비리를 제보하려고 상담을 신청했다가 발길을 돌린 사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 상임이사는 “더 많은 내부고발자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후 적발’보다 ‘사전 예방’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제도가 변해야 한다”면서 “파격적인 보상안이 마련되면 국가기관과 기업도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내부의 부패·탈세 문제 등을 고칠 것이다. 이것이 내부고발의 예방 효과”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