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지금은 팟캐스트 시대

팟캐스트 전성시대다. 대표적인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청취자는 1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3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0.0%가 나꼼수 방송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체 인구 수로 환산하면 대략 1100만명이 나꼼수 청취 경험이 있는 셈이다.

아이폰으로 팟캐스트 다운로드를 받는 모습.

팟캐스트(podcast)는 아이팟(iPod)의 ‘pod’과 방송(broadcast)의 ‘cast’의 합성어다. 2011년 아이폰의 누적 판매량이 250만대를 넘어서면서 아이폰에 기반한 팟캐스트는 여러 사람들과 열린 공간에서 소통하는 매체가 됐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로 불릴 수 있지만, 이들보다 콘텐츠 제작이라는 측면은 더 강한 것이다.

물론 팟캐스트 붐이 일어났다고 해서 다른 소셜 미디어의 활용이 줄어들었다고 볼 순 없다. 트위터 열풍이 일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를 활용하고,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고, 다음 아고라에서 토론했던 것처럼, 팟캐스트는 또 하나의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팟캐스트 확산의 기저에는 기존 언론에 대한 불만, 표현의 자유 위축 등이 깔려 있다. ‘SNS 붐’과 비슷한 현상이다.

검열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팟캐스트는 블로그가 처음 붐을 일으켰을 때처럼 또 하나의 ‘대안 미디어’로서 기능하고 있다. 소통 없는 정권과 여당에 대한 비판이 ‘국민 스포츠’라면 팟캐스트는 ‘새로운 리그’가 열린 것과 같다.

진보·개혁의 전시장
팟캐스트 붐의 시작이 나꼼수라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현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방송의 대부분은 나꼼수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나꼼수는 지난해 4월 첫 전파를 탔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 나꼼수 이전까지 한국 팟캐스트는 주로 지상파 방송 3사와 CBS, MBN 등의 주요 프로그램을 다시 듣는 정도였다.

나꼼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지난해 여름부터는 팟캐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6월 13일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유시민의 따뜻한 라디오>로 기성 정치인으로는 첫 테이프를 끊었다. 뒤이어 10월에는 이해찬 전 총리, 12월 23일에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올해 1월 8일에는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가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정당의 팟캐스트 진출도 시작됐다. 통합진보당은 1월 18일부터 유시민 대표, 노회찬 대변인을 앞세운 <저공비행>을 시작했다. <저공비행>은 나꼼수를 제치고 한국 팟캐스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진보신당은 <진보신당 팟캐스트>를 만들었다.

겨울이 오면서 기존 언론사들의 팟캐스트 진출도 시작됐다. 진보 성향의 인터넷 신문 민중의소리는 11월부터 <애국전선>, <도도한 뒷담화> 등의 채널을 선보였다. 한국일보도 11월 17일부터 <시사난타 H>를 방송한다. 나꼼수의 진행자 김어준이 총수로 있는 딴지일보도 11월 18일부터 경제전문 방송 <나는 꼽사리다>를 시작했다.

이런 팟캐스트는 대개 진보·개혁적인 성향을 가진다. 2005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대안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환씨(36·예명 미디어몽구)는 “팟캐스트가 대안 미디어로 떠오르고 있는 데에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맞물려 있다. 기존 언론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몰리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적 성향의 팟캐스트는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언급할 만한 보수 성향의 팟캐스트로는 나꼼수의 대항마를 자처했던 <명푼수다>가 있다. <명푼수다>는 지난해 11월부터 <저격수다>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박성현 전 나우콤 대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등이 출연하는 것도 동일하다.

그동안 <저격수다>는 정치계의 화성인 강용석 무소속 의원을 출연시키는 등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7일에도 ‘학교는 감옥이다’라는 주제의 새 방송을 올렸다. 하지만 2월 10일 현재 <저격수다>는 한국 팟캐스트 ‘뉴스 및 정치’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나꼼수 듣다가 ‘나도 한번’
지난해 말부터는 일반인들도 팟캐스트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토크온섹스>처럼 나꼼수 이전에도 개인 팟캐스트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개인 팟캐스트의 출발점은 이 시점이다.

지난해 9월 첫 방송을 한 <듣기 싫으면 관두시고>를 필두로, 11월부터 매달 새로운 팟캐스트가 생겨났다. 11월에는 <어쩌다 마주친 방송>(20~30대 토크), <매직은꼼수다>(카드게임 ‘매직 더 개더링’), <마인드 골프>(골프 블로거의 방송), 12월에는 <나는 일반인이다>(잡담), <흔남흔녀의 흔흔한 상담소>가 문을 열었다. 1월에는 <나는 연애고수다>(연애기법), <누나 화났다>(여성관련 문제)가 생겼다.

인기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가 홍익대 인근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있다. <나는 꼽사리다>는 팟캐스트의 진보적 분위기에 걸맞은 경제전문 방송이다. | 백철 기자

여러가지 개인 팟캐스트의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나꼼수의 존재는 개인 팟캐스트 제작에 자극제가 됐다. 코미디 분야 1위 <나는 일반인이다>의 제작자인 김재용씨(24·대학생)는 “나는 나꼼수의 팬이다. 나꼼수를 들으며 방송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누나 화났다>의 제작자인 장태호 여행작가(42·예명 테오)는 “나꼼수를 듣다가 하고 싶은 말을 팟캐스트로 하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쌓은 지식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취지로 방송을 시작한 사람도 있다. <나는 연애고수다>의 제작자 손창완씨(26·예명 돌프)는 “대학과 전문교육기관에서 심리학, 뇌과학, 최면 이론 등을 배웠다. 팟캐스트를 하기 전부터 ‘어트로폴리스’라는 카페를 통해 연애 과정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는 기법을 알려오고 있었다. 팟캐스트로 더 많은 사람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전하고, 카페도 알리려 한다”고 말했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팟캐스트는 유용한 도구다. <듣기 싫으면 관두시고>의 제작자 김준혁씨(42·영어강사)는 “팟캐스트는 만들기가 참 쉽다. 아이폰으로 녹음한 뒤 간단한 편집을 하면 끝이다. 젊었을 때부터 책도 쓰고 싶고, 방송도 하고 싶었던 입장에서 참으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손창완씨는 “나와 함께 <나는 연애고수다>를 제작하는 동료들처럼 전문 방송인은 아니더라도 특정 분야에 남들보다 좀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다. 팟캐스트는 쉬운 방법으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휴대폰 기반의 유비쿼터스 시스템
개인 팟캐스트 제작자들은 공통적으로 팟캐스트가 스마트폰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블로그, 유튜브, 인터넷 방송국(인라이브, 아프리카TV 등)에 비해 접근성의 측면에서 훨씬 우수하다는 것이다. 휴대폰을 타고 급속히 확산된 트위터 열풍과 맞닿는 지점이다. 이 때문인지 2008년 촛불집회 때 대안미디어로 떠올랐던 아프리카TV의 유명 BJ인 유창선 시사평론가와 이경선씨(예명 망치부인)도 팟캐스트로 자리를 옮겼다.

장태호 작가는 휴대폰과 사람의 정신적 일체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취자들이 친근감을 쉽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팟캐스트 붐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 엄밀히 말하면 팟캐스트는 방송이라기보다 청취자와 제작자가 서로 전화 통화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인터넷 방송에 있어서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PC통신을 통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던 1990년대에 천리안을 통해 인터넷 음악방송국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나에게 있어 팟캐스트란 20년 전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다시 꺼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20년 동안 온라인을 통해 콘텐츠를 발표해온 장 작가는 “TV나 라디오는 꼭 집에 와서 생방송 시간대에 들어야 한다. 유튜브, 아프리카TV의 경우 동영상 용량이 커서 부담이 있다. 그에 비해 팟캐스트는 받아만 두면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시간대에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팟캐스트 지속가능한가
물론 팟캐스트의 가능성을 무조건 좋게만 볼 수는 없다. 아무리 팟캐스트를 통한 개인 방송이 쉽다고 해도,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준혁씨는 “한국 팟캐스트는 미국 팟캐스트와 달리 100% 제작자의 시간과 돈을 들여서 만들어야 한다. 초창기 유명인들의 방송도 광고를 붙이지 못하는데 일반인들의 팟캐스트에 광고를 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팟캐스트와 달리 미국 팟캐스트에는 광고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나꼼수를 자신의 방송에 언급해 화제가 된 적이 있는 미국 팟캐스트 방송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Joe Rogan Experience)의 경우 방송 중간에 광고를 내보내기도 한다.

출근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틈틈이 팟캐스트에 방송을 올리는 김씨는 “좋은 내용의 방송을 하려면 장비도 구입해야 하고, 편집하는 데 공을 더 들여야 한다. 어떤 내용을 방송할지 연구할 시간도 필요하다. 제작자들이 돈과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훨씬 좋은 콘텐츠의 팟캐스트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태호 작가는 아직 팟캐스트가 초기 단계라는 점을 지적했다. “사람들이 떼로 몰려서 놀다 보면 블로그나 유튜브처럼 방송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블로그, 유튜브에 비해 한국 팟캐스트 제작자의 수는 많지 않다. 아직 가능성은 많다.”

또한 일각에서는 한국 팟캐스트가 진보·개혁 정치의 전시장으로 출발한 만큼, 올해 입법부와 행정부 권력이 교체되면 급격히 붐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나꼼수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는 방송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김준혁씨는 “정치 관련 팟캐스트는 확실히 포화 상태로, 일반인들의 관심은 정점을 지났을지도 모른다. 일반인들이 쉽게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팟캐스트 붐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장태호 작가는 “정치, 시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면 이제 소재가 생활 전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로 넓어지는 시기다”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의 이해’의 저자인 황유선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원도 “나꼼수 등 정치 팟캐스트의 성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팟캐스트를 통한 사회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정치 환경이 변한다고 꼭 활용이 줄어들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