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해적당·새세대희망당, 내년 4월에 뜰까

안철수 현상 바람 타고 잇단 창당 준비

위키리크스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자주 언급되는 정당이 있다.
해적(pirate)당. 조니 뎁 주연의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인터넷 자유를 외치는 정당이다. 호주 출신의 줄리언 어산지가 뜬 데에는 스웨덴과 스위스 해적당의 도움이 컸다. 지난 9월 중순, 해적당은 다시 한 번 뉴스를 탔다. 이번에는 독일이다. 9월 18일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8.9%를 득표, 15명의 의원을 배출했다.

해적당, 전세계 40개국 만들어져

새세대희망당을 준비 중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 /정용인 기자

최초의 해적당은 2006년 창당한 스웨덴 해적당이다. 유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10년 결성된 ‘해적당 인터내셔널(Pirate Parties International·PPI)’이 밝히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 40개의 해적당이 결성되어 있다. PPI에 공식 등록된 경우만 하더라도 20여개국.

스웨덴은 2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했고, 지방의회 의원이 나온 나라는 체코공화국, 스페인(카탈루냐 해적당), 스웨덴, 스위스, 독일(독일해적당, 헤세해적당) 등이다. 중국도 아직 정당으로 정식 등록하지 않았지만 토론그룹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름은 중국도판당(中國盜版黨). 각국의 상황에 따라 주장하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는 있다. 정보의 공유와 정부의 투명성. 더 나아가 저작권 개혁과 인터넷 프라이버시, 온라인 검열 반대 등이다.

한국에는 없을까. 있다. 중국처럼 토론그룹의 형태이지만, 한국해적당을 준비하는 그룹이 있다. 김석수 창조한국당 전 대변인(51)이 총대를 멨다. 김씨는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략은 비슷하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 그리고 다음카페를 통해서 자료를 축적하고 해적당의 입장을 알려나가는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한국해적당 페이스북에 ‘동의’ 의사를 밝힌 사람은 2000여명. 다음카페를 통해 결합되어 있는 회원은 10월 14일 현재 59명이다. 김씨는 “해적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20~30대 젊은 세대의 결합이 필수”라고 말한다. “20~30대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고 말하는데, 청년층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도권에 없다보니 안철수와 같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김씨는 50대가 아닌가. “그렇다. 혼자만 해서는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청년유니온과 같은 청년단체들을 찾아 만나고 있고, 등록금 집회 등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여하튼 정말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이를테면 선대인 전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이 만든 ‘세금혁명당’은 당(黨)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SNS인 페이스북에 기반을 둔 ‘풀뿌리시민모임’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강령을 가진 당, 당원 등의 ‘체계’를 갖췄다고 ‘등록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중앙당이 등록하면서 성립한다. 문제는 성립 요건이다. 정당법상 절차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창당활동’을 하는 창당준비위원회(창준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경우 중앙당은 200명, 시·도당은 100명 이상의 발기인으로 구성해야 한다.

창준위를 만들고 이것이 창당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6개월 내에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즉 6개월이 넘으면 등록이 취소된다. 창당에 있어서 다시 난관은 이 법 17조와 18조의 규정이다. 17조에 따르면 정당은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하며, 각 시·도당은 1000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 선관위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그러니까 5×1000= 5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하며, 각각의 시·도에서 1000명이 넘어야 한다. 서울 4999명에 부산 1~2명, 이런 식으로 5000명이 넘었다고 창당이 가능하지 않다.”

김씨가 생각하는 난관은 더 있다. 해적당이라는 당 명칭 자체를 선관위가 못쓰게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씨는 “반려되면 헌법소원도 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정당은 또 어떨까. 새세대희망당. 진짜로 추진 중인 정당이다. 민간싱크탱크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 소장(53)이 추진하는 정당이다. 김 소장은 2006년부터 창당을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20세기의 정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정당조직을 구축해야 한다. 20세기 정치패러다임에선 거대정당과 정치자금 없이는 정치권력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넘어오면서 바뀌었다. 인터넷 상에서 정치세력에 대한 정보 입수나 토론, 여론수렴이 모두 가능해졌다. 이게 지식정보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이다.” 즉 현재의 구도는 20세기식의 이념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기존 여야 정당과 이념을 무너뜨리는 21세기 지식정보 패러다임의 싸움이다.

김광수연구소, 정당 창당 주도
김 소장 역시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되는 이 변화에서 ‘20~40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현상이 어느날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다.

한국해적당을 준비하는 사람들. 왼쪽에서 세 번째가 김석수씨. /한국해적당 제공

한나라당 지지자든 민주당 지지자든 기존 정치권에 대한 거부가 폭발적으로 안철수라는 특정인물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다. 우리와 공감하는 20대에서 40대까지 유능한 사람들이 모이면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날 것이다.” 그가 추진하는 당명이 ‘새세대희망당’인 이유다. 김 소장의 ‘새세대희망당’은 해적당보다 훨씬 실현가능성이 있다. 지금 추진 중인 정당 창당작업은 또다른 단계로의 비약이다. 일단 김광수경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전국 30개 지역에 자발적인 공부방이 마련되어 있다. 공부방 모임을 정당조직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러나 그 다음엔?

정당법에는 또 하나의 복병이 있다. 바로 2% 규정이다. 이 법 44조를 풀이하면 정당 창당 후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 선거 등에 후보를 안 내는 경우 최소 4년 동안 당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선거에 후보를 내는 경우,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유효투표 수의 100분의 2’를 얻지 못하는 경우 정당의 등록은 취소된다. 1992년 선거 당시 진보정당이었던 민중당이 해산한 것은 바로 이 장벽을 넘지 못해서다. 민중당이 받은 유효득표 수는 1.5%였다.

유창오 동아시아미래재단 정책실장은 최근 ‘진보세대가 지배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유 실장은 책에서 ‘안철수 현상’ 등 최근 정치지형의 지각변동에서 핵심 키워드가 ‘20~40대의 진보세대’라고 규정한다. 즉 이들 젊은 세대가 이미 한국 사회의 주류로 떠올랐으며, 이들이 앞으로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다. 유 실장은 “해적당이나 새세대희망당과 같은 실험을 굳이 규정한다면 일종의 정치적 벤처라고 할 수 있다”면서 “기존 정당의 중심이 지역에서 세대로 옮겨가는 과도기라는 점에서 이들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타이밍인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20~30대 정당을 표방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 세대들이 자신들의 대표로 인정할지 여부는 다른 문제”라며 “야권의 이합집산 등 여러 공간을 활용하면 정치적 의미를 떠나 사회적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