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콘서트]지식인 만담, 가시 돋친 개그 ‘열광’

‘탁현민의 시사콘서트’ 조국 교수·선대인 부소장 촌철살인 입담

2월 23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는 <주간경향>과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함께 하는 장기 프로젝트 ‘탁현민의 시사콘서트’ 두 번째 공연이 열렸다. 이번 시사콘서트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맞물려 우리 시대가 당면한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즐겁게 성찰하는 자리였다. 탁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전인적 인간’인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의 시사강연과 어느새 고정이 돼버린 ‘바드’와 ‘일단은 준석이들’의 흥겨운 공연이 어우러졌다.

시사콘서트에서 강연을 하는 조국 교수.

이번 공연은 티켓 오픈 5시간 만에 250개 전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큰 기대를 모았다. 매진 이후에도 300명가량의 예약자가 대기할 정도였다. 공연 당일인 2월 23일, 보조석까지 더해진 300여개 좌석은 공연 시작 전 이미 꽉 차 있었다. 8시 10분. 공연장의 불이 꺼지고 바드의 연주로 공연은 시작됐다. 바이올린·기타·타악기·아코디언 등이 어우러져 아이리시 버전으로 새롭게 불러진 김광석의 ‘나의 노래’에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아일랜드 음악의 포인트는 관람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는 바드의 말은 이번 시사콘서트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 도표 만들면 공포호러물”
오프닝 공연이 끝나자 탁 교수가 무대에 등장했다. 탁 교수는 “지난달 공연하고 나서 다시는 못 뵐 줄 알았다”는 농담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줄 선물로 조국 교수의 책 <대한민국에 고한다>와 선대인 부소장의 <프리라이더>를 들고 나왔다. 탁 교수가 “책이 탐나시는 분들, 이 책을 받아가야 할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자 한 여성 관객이 “조국 교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답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탁 교수는 “조국, 선대인 두 분은 진보진영 남자들의 공적이다”라고 대답하며 “이 두 분과 나란히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말해 객석은 또 한번 웃음바다가 됐다. 탁 교수는 이재오 장관과 정운천 장관을 언급하며 오프닝을 갈음했다. “이재오 장관이 고개 숙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더 높이 쳐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정운천 장관이 침출수로 퇴비를 만들자는 얘기를 했는데 그분은 소에 대한 트라우마를 빨리 벗어야 한다”는 말에 관객들은 웃음과 함께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첫 번째 강연자 선대인 부소장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크게 환호했다. <위험한 경제학>, <프리라이더> 등의 책을 집필한 선 부소장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선 부소장은 자신의 강연을 “도표로 만든 공포호러물”이라고 소개했다. 일자리 문제·노동 문제·세금 문제·소득 재분배 문제 등이 구체적인 데이터로 제시되면서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 강연에서 선 부소장이 반복해서 한 말은 “여러분들, 느끼시고 있나요?”라는 반문이었다. 정부가 경제적 성과로 선전하고 있는 여러 지표들을 실질적으로 체감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3%대로 안정적인 공식 실업률, 6.1%에 달하는 지난해 경제성장률, 21조원이 넘는 G20 경제효과. 이런 긍정적인 지표들을 체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관객들은 아무도 없었다. 선 부소장은 이러한 경제지표들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된 지표임을 구체적인 자료와 수치를 통해 하나하나 반박하며 “한국의 최고 싱크탱크라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자료를 내고 이를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한국 사회에서 난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선 부소장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은 한국의 소득재분배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한국의 대학등록금의 문제점을 시급한 경제문제로 지적했다.

시사콘서트를 진행 중인 탁현민 교수.

강연을 마무리하며 선 부소장은 “제 책을 읽으면 우울하고 화는 나지만 당장 뭘 할 수 있을지 몰라 답답해 하는 분들이 많다”며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소개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황무지에서 묵묵히 도토리 나무를 심어 결국은 숲을 만들어내는 한 노인의 이야기다.

선 부소장은 “노인이 수십년 동안 묵묵하게 수행했던 성실한 노동, 나무를 하나하나 심어가면서 숲을 가꾼 그 정성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든다”고 말하며 “지금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들이 당장은 눈에 안 보여 쉽게 좌절할 수 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나무를 심으면 우리 후배·자식들은 그 결실을 따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어서 두 번째 강연자인 조국 교수가 ‘MB표 법치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위트와 풍자가 넘치는 조 교수의 강연에 관객들은 강연 중간중간 웃음과 호응의 박수를 보냈다. 조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강조하는 법치가 “존재하는 실정법은 모두 다 맞다”라는 사고에서 비롯되는 “단순한 법치주의”라고 비판하며, 실정법의 무조건적 준수는 곧 공안통치에 버금갈 수 있음을 지적했다.

“단순·몰상식한 법치는 신공안통치”
조 교수는 강연 중 “정상적인 법학 교육을 받았다면”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현 정권의 잘못된 법치를 비꼬았다. 진보·보수의 차원을 넘어 정상적인 법률교육을 받았다면 무죄 판결이 나거나 아예 논란거리도 안 됐을 사안이 이명박 정부 들어 무리하게 수사가 강행됐다는 뜻에서다. 관객들은 조 교수가 미네르바 구속, 사이버 모욕죄 논란, PD수첩 기소, 박원순 변호사 소송 사건 등을 설명하며 “정상적인 법학 교육을 받았다면”이라는 말을 반복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조 교수는 이러한 사안들을 ‘몰상식’의 문제로 비판하며 이명박 정부의 법치를 ‘법의 치욕’이라고 일갈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며 법치를 강행하는 이유를 조 교수는 ‘냉각효과’로 설명했다.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면서 네티즌들의 자기 검열이 강화됐고, 박원순 변호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되면서 기업들이 박 변호사가 상임이사로 있는 아름다운 재단에 후원을 꺼리게 됐다는 것이다. 자기 주위 사람부터 똑바로 단속하는 게 법치의 핵심이라며 “너나 잘하세요”라는 영화대사로 강연은 마무리됐고, 관객들은 조 교수에게 환호와 큰 박수를 보냈다.

이후 시사인 고재열 기자와 탁 교수의 유쾌한 시사방담이 이어졌고, ‘일단은 준석이들’의 흥겨운 공연으로 콘서트는 마무리됐다. 예정됐던 시간을 훌쩍 넘긴 밤 11시가 넘어서야 시사콘서트는 끝이 났다. 후불제 공연인 만큼 관객들은 들어올 때 받았던 봉투에 관람료를 넣고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주로 젊은 관객이 주를 이루었던 이번 공연에서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 관객이 눈에 띄었다. 아내가 신문에서 보고 관심이 있어 해 같이 왔다는 김영남씨(63)는 “공연이 아주 재미있었다”며 “두 선생님들의 강연이 마음에 많이 남았고 다음달 시사콘서트에도 오고 싶다”고 말했다.

트위터로도 생중계된 ‘탁현민의 시사콘서트’는 issuenow 검색순위 3위에 오를 정도로 트위터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불러왔다. ‘탁현민의 시사콘서트’는 3월에도 계속된다. 탁현민의 시사콘서트에 참여하려면 인터넷 카페(cafe.naver.com/taksisa)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