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비정규직 고통은 우리 대에서 끝나야 한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노문희씨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홍익대 청소노동자 노문희씨를 만난 뒤 떠올린 두 가지 의문문이다. 첫 번째 것은 국내 인문과학서 출판시장에서 전무후무하게 8개월여 만에 80만부가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한 미국 학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제목이고, 두 번째 것은 그에 비견되는 스테디셀러를 갖고 있는 한국 정치인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이 곧 출간할 저서의 가제목이다.

우리의 법과 제도는 과연 노씨와 같은 사람에게도 정의로운가. 국가 권력은 노씨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의지나 힘을 가지고 있는가. 굳이 샌델 교수와 유 원장의 어법을 빌리지 않더라도 단박에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는 장면부터 먼저 만나게 된다.

지난 2월 15일 노씨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있었다. 오후 4시부터 열리는 ‘집단해고 철회, 생활임금 쟁취, 홍익대 투쟁 승리!를 위한 (가)공공운수노조준비위 집중결의대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붉은 색 ‘투쟁 조끼’를 입고 ‘우리는 일하고 싶다. 170명의 소리를 들어 달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서다.

홍익대 사태는 새해 벽두부터 대학가와 노동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특히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씨는 지난 연말 학교 측의 용역계약 해지로 일자리를 잃은 홍익대 청소·경비·시설관리 노동자 170명 가운데 한 명이다. 이들은 지난 1월 3일부터 학교 본관 로비에서 44일째 농성 투쟁을 하고 있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특히 매주 고정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자주 듣는 얘기 가운데 하나가 “왜 유명하거나 힘 있는 사람만 인터뷰하느냐”는 것이다. 이번 인터뷰는 그에 대한 응답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험적인 시도이기도 하다. 유명하거나 힘 있는 사람보다 그 반대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게 사실은 더 어렵다. 그가 살아온 내력이나 품고 있는 생각이 공개될 때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어력을 갖추지 못한 사회적 약자가 익명성의 보호막을 벗고 대중 앞에 나서려면 상당한 위험 부담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다행하고 고맙게도 노씨는 대범했다. 그는 “이런(비정규직 문제로 인한) 고통은 우리 대에서 끝나야 한다”고 강조한 뒤 “거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비정규직 문제가 대학, 그것도 홍익대에서 터진 데는 적잖은 의미가 담겨 있다. 대학은 비정규직, 이른바 ‘88만원 세대’를 양산하는 곳처럼 돼 버렸다. 그 자리가 또 다른 비정규직인 이른바 ‘올드 88만원 세대’의 농성장이 됐다. 홍익대 정문에서 농성장 앞까지 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플래카드가 겹겹이 걸려 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학생들이 내건 ‘○○대는 어머님 아버님을 지지합니다’ ‘어머님과 소통하고 싶어요’ ‘어머님들의 밝은 미소 꼭 찾아드릴게요’ 등이다.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신세대 문화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홍대 앞 권역에서 그들과 가장 멀었던 부모세대와 소통의 장이 마련된 상황이 극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홍익대 사태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굳이 노씨의 입을 빌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열악한 근무환경, ‘하루 식대 300원’으로 상징되는 형편없는 임금과 처우, 비정규직 보호 대상조차 될 수 없는 파견근로자의 고용 불안 등 홍대 청소노동자가 처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학교 측의 자세와 총학생회의 태도, 학생들을 비롯한 안팎의 지지나 성원 등도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노씨를 만난 것은 그렇게 문제를 객관화시켜서 볼 게 아니라 내 자신의 문제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는 물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의외로 무심한 데가 있다. 그 점에서는 노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 12월 노조를 결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가 비정규직이란 걸 알았죠. 그 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글자(뜻)도 몰랐고 슬픔과 아픔도 몰랐어요. TV에 비정규직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렸어요. 이제까지 우리가 파견근로자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거예요.”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홍익대 청소노동자의 일원으로서 노씨를 보는 것도 비슷하다. 그를 또는 그들을 특별한 상황에 처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그것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문제가 돼 버린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한 남자의 아내이고 3남매의 어머니이며 6명의 손자·손녀의 할머니다. 힘들고 가난하지만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수입에 의존하는 가족의 생계 불안, 월 30만원짜리 지하 셋방살이에서 오는 주거 불안, 이번 사태가 말해주는 고용 불안 등 다중고를 겪고 있음에도 정직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서민·빈곤층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듯했다.

“홍익대 근무는 2003년부터 시작했어요. 청소 일은 처음이었는데 힘들다는 건 알았죠. 첫날 일하고 집에 돌아오니 눈물이 나더군요. 일도 힘들지만 내 처지가 비참했어요. 인생의 제일 밑바닥이잖아요. 그때는 나도 노동하는 사람을 낮춰 봤거든요.”

올 3월이면 그는 환갑을 맞는다. 대한민국 60년사가 그렇듯 그의 60 인생도 순탄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세대에 순탄했다면 그게 더 특별한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그는 경기 가평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집이 두 채에다 식모와 머슴까지 둔 집안의 7남매 중 셋째로서 ‘공주’ 소리를 들으며 귀하게 자랐다. 결혼해서는 서울에서 알뜰하게 살면서 내 집도 마련하고 3남매를 키워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남편 사업이 번창할 때는 ‘사모님’으로서 사회봉사활동도 했다. 아들도 당시로서는 전도가 유망한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도 했다.

삶의 중도에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중도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장애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즉 장애인을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주변의 문제, 나아가서 내 자신의 문제로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빈곤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씨처럼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떨어질 위험이 상존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대부분의 재산을 잃었다.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워졌다. 글을 잘 써서 장래에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큰 좌절을 맛보았다.

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그는 또 한 번 큰 시련을 맞는다. 남편 회사의 부도로 집까지 넘어가 길거리로 나앉은 것이다. 그 충격과 후폭풍으로 남편과 그가 번갈아 쓰러졌다. 회복된 뒤에도 남편은 술로 세월을 보내며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얼마 뒤에는 대우그룹 부도와 함께 아들도 직장을 잃고 실업자로 전락했다.

중도장애인과 같은 조어법을 적용해 노씨 가족처럼 새롭게 빈곤층에 편입된 경우를 ‘중도빈곤층’이라고 한다면, 그 역시 남의 일로만 치부할 게 아닐 터이다. 요즘 흔히 얘기하는 사회 양극화나 중산층 붕괴 현상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다만 중도장애의 원인이 개인의 불운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면 중도빈곤의 원인에는 사회 구조적인 요소가 더 많이 개입돼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 아저씨(남편)가 포기를 잘 해요. 누가 물건 납품한 값을 받아서 도망가면 그 사람 잡으러 다니기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사업이 잘 될 때 제법 돈을 벌었는데, 집안을 돌보거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공장을 확장하는 데다 다 썼고요. 결과적으로 선하게 사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더라고요.”

노씨는 집이 사채업자의 손에 넘어가던 날 교도소 봉사활동에 참석하기도 했다. 가기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 사정을 이유로 그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아침에 집에서 쫓겨났는데 거기 가니까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비비안나(그의 세례명), 너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여기 왔느냐’고요.”

그에게 가난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가족들의 좌절감이었다. 알코올에 젖어 사는 남편이 힘들었고, 실직에 이은 파경으로 절망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아파하는 그들을 보며 대신 아파주고 싶었다. 그는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남편을 버리고 가출할 생각까지 했으나 자녀들 때문에 참았다. 자살하고픈 유혹은 신앙심으로 떨쳐냈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식당 설거지 일을 1년 정도 했는데, 체력이 안 따라줬어요. 성당 대부님의 소개로 홍익대 청소 일을 하게 된 거예요. 다른 곳에 비해 인건비가 박했지만 대학은 뭔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처음에는 힘들고 참담했지만 1년 정도 지나니까 견딜 만하고 나 자신에게도 당당해졌어요. 가족의 생계를 내가 노력해서 꾸려간다고 생각하고 기쁘게 일한 거죠. 여기서 주는 만큼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한다는 생각에서 열심히 했어요.”

그는 홍익대에서 일하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싶었다. 기자가 간곡하게 요청하자 인터뷰 다음날 그 일부를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신앙 고백과 기도 형식으로 쓴 그의 일기에서 우선 눈에 띈 것은 임금과 관련한 것이었다.

“제가 직장 생활하는 보수로는 너무나 힘겨워 쓰러질 것 같아요. 무엇 하나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지금까지 저의 삶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 같이 위태롭고, 고달프게 떨어질 듯하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는 가냘픈 인생의 곡예사 같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 조금은 넉넉하게 살고 싶어요. 제가 신세를 진 은인들에게 보답도 하고 싶고 저와 같이 가난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고 또 저의 잘못된 삶 때문에 형제자매에게 마음을 아프게 한 것도 용서받고 싶어요.”

일기는 주로 휴식 시간에 쓴 듯했다. 그는 ‘창고방’에서 기도하고 졸고 사색에 잠기는 때가 “아무런 욕심도 부족함도 없는 풍요한 시간”이라며 “이런 시간과 환경을 사랑한다”고 썼다. 학생들에 대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함을 아쉬워하기도 했고, 자신의 가난이 본의 아니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한다는 점을 깨닫고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3년 전 그는 청소를 하다가 열 계단 아래로 굴렀다. 가슴과 다리에 타박상을 입었으나 병원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아 파스를 붙이고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진통제를 먹는 것으로 버텼다. 그 후로 습관처럼 자주 다리를 다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다리의 불편함보다 ‘다리 아픈 사람’으로 알려져 일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를 더 걱정했다.

“그래도 일은 할 수 있거든요. 계단 오르내리는 것, 물건 드는 것이 좀 힘들기는 하지만 할 만하답니다. 지금은 우리 집 아저씨도 직장을 다니고 아이도 일을 시작했어요. 마치 딴 세상을 사는 것 같아요.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지금의 삶이 고맙고 감사하죠.”

악전고투 끝에 피어나는 이 작은 행복의 불씨가 홍익대 사태로 또 다시 바람 앞에 내던져졌다. 그는 농성이 시작되면서 일기 쓰기를 중단했다. 수입이 없어져 가계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장기간의 농성은 청소 일을 하는 것보다 그에게는 힘에 더 부쳤다. 두 차례 만나는 동안 그는 인터뷰가 길어지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집회장이나 농성장을 오래 비우는 게 불안한 듯했다.

“그 전에는 몰랐어요. 우리가 근로자로 살잖아요. 그저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일했어요. 다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 달라졌어요. 내 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제는 노동조합 하는 사람이 재단 이사장보다 더 위대해 보여요. 20년만 젊다면 나도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그에게 또 하나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은 학생들이다. 이제까지 그에게 학생들은 그저 어지르기나 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철 없는 아이일 뿐이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학생들은 부모세대인 청소노동자를 새롭게 보고, 청소노동자들은 자식세대인 학생을 새롭게 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저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까… 너무 감동 받았어요. 나는 저만한 나이에 저런 생각을 못 하고 살았는데 말이죠. 그런 마음이 너무 예쁘고 고마울 뿐 아니라 세상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어쩌면 (학교재단) 이사장이 고마운 거죠. 약한 자도 뭉치면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정의가 이긴다는 희망을 보여주었고, 젊은이들한테서 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요.”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샌델 교수와 유 원장이 아니라 정치권과 국가권력이 이제는 노씨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향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야 할 사안이 될 것 같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