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홈피 등서 법 위반…처벌 가능할까

지난 4월1일 저작권법 개정안이 의원 143명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우철훈 기자>
"저작권과 관련하여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음을 사과드리오며, 향후 철저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7월30일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미니홈피에 올린 사과문이다. 논란은 나 의원이 2007년 추석 때 올린 보름달 그림으로부터 시작됐다.(Weekly경향 387호 언더그라운드.넷 기사 참조)
나 의원이 ‘스크랩’한 달 그림은 이수동 화백의 그림. 논란이 커지자 이 화백은 8월4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에서 “누구든 내 그림을 퍼가는 걸 환영한다”라며 “부디 여러분은 아무 걱정 마시고 제 그림을 팍팍 퍼 가시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 의원 측은 7월30일 사과문 게재와 함께 달 그림이 실려 있던 카테고리 전체를 닫았다. 나경원의원실 정희장 보좌관은 “다른 사진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제기되고, 미디어법 등과 관련해 욕설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등 문제 때문에 게시판을 닫았다”며 “논란을 계기로 저작권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누리꾼 반응은 곱지 않다. “사과만 하면 그만이냐”는 것이다.
개정 저작권법이 발효되던 7월 23일 언론시민단체인 언론인권센터 1인미디어 특별위원회는 개정 저작권법을 발의했거나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 143명에게 다음과 같은 제목의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의원님들 홈페이지는 저작권법에서 자유로운가요?” 문제는 나 의원만이 아니었다.
언론인권센터가 이들 국회의원의 홈페이지와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조사한 결과 90% 이상의 국회의원이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었다는 것. 실제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 블로그, 미니홈피의 저작권 준수실태는 어떨까. Weekly경향은 개정 저작권법에 서명한 전체 의원 명단(한나라당 127명, 민주당 1명, 무소속 4명, 친박연대 7명, 자유선진당 4명)을 입수해 분석했다. 결과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국회의원 대부분 “위반 몰랐다”
언론인권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이들 조사 대상 143명 가운데 가장 많이 위반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회의원은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 조 의원의 경우 게시물 1868건, 동영상 29건, 사진 390건이 현행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이라고 한 것은 게시 형태는 위반으로 보이지만 실제 해당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조전혁의원실의 답.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지우면 됩니까. 알겠습니다.” 나 의원의 사과와 도긴 개긴이다.

7월23일 개정 저작권법 시행에 맞춰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 핵심 Q/A 10가지’라는 웹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했다. <문화광광부>
한나라당 강명순의원실 관계자는 “스크랩을 (해당 언론사의) 허락받아서 해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당연히 허락을 받아야 한다. 정진섭 한나라당 의원은 특이하게도 본인이 출연한 인터뷰 자료를 모두 이미지 캡처해 올려놓았다. 정진섭의원실 관계자는 “캡처해도 걸립니까”라고 반문했다. 개정 저작권법 시행 이전에 널리 퍼진 ‘저작권 Q/A’에 대표적으로 거론된 위반 사례다. 한나라당 장광근의원실 관계자는 “기사명과 기자이름, 링크가 들어가면 (위반 안)되는 거 아니냐”면서 “다른 의원실도 다 하고 있는데…”라고 항변했다. 물론 잘못 알려진 상식이다. 문제는 이들 의원 모두 개정 저작권법을 추진하거나 서명한 국회의원이라는 것이다. 개정 저작권법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으로는 강봉균 의원이 유일하다. 강 의원의 홈페이지에도 여러 언론사의 강 의원 활동 기사가 ‘스크랩’돼 있다. 강봉균의원실 관계자는 “실제 저작권법에 서명한 지도 오래돼 정확한 사실은 알아봐야 한다”면서 “연합뉴스의 경우 허락을 받아 실었지만 허락 없이 스크랩한 경우도 있다”고 인정했다.
국회의원들의 ‘저작권 위반’ 행위는 대체적으로 국회의원 자신의 인터뷰나 활동 내용이 들어있는 기사를 스크랩한 것이다. 대부분 비서나 보좌관의 일이다. 한 보좌관은 “어떻게 일일이 허락을 받고 할 수 있겠냐”면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근거를 마련했다”고 주장한 의원실도 있었다. 개정 저작권법을 대표 발의한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6월 19일에 있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2차 창작물인 UCC를 만들었다. 강승규의원실 관계자는 “파일은 ‘손석희의 시선집중’ 쪽에서 제공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이 해당 음성파일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이은성PD는 “저작권 문제는 좀 더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출연자들의 요청에 맞춰 파일을 보내주는 경우가 많으며, 또 그것을 바탕으로 2차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원래의 취지를 왜곡하지 않으면 특별하게 문제 삼을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인권센터가 조사한 결과 이들 143명 중 저작권법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의원은 14명. 강길부, 김무성, 이진복, 이해영, 강승규, 권영세, 정영희, 김효재, 한선교, 주호영, 나경원, 이한성, 이정현, 유일호 의원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모든 게시물에서 저작권법을 엄밀하게 준수하진 못했다.
사실 국회의원들의 저작권 위반 행위는 개정 이전부터 불법이었다. 개정법안에서 달라진 것은 소위 ‘삼진아웃제’의 도입, 즉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보통신망을 통한 불법복제물 등의 삭제명령 등을 내릴 수 있는 조항(133조의 2)의 삽입이다.
저작권위원회 등은 이 조항과 관련해 “모든 게시판을 단속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부 헤비업로더를 대상으로 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모두 2287건의 위반 행위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전혁 의원은 ‘헤비업로더’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조 의원의 홈페이지 및 블로그 등과 관련한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해당 게시판 서비스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특권? 예외 없다. 국회의원이라고 저작권과 관련한 면책특권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면책특권은 없지만 처벌 가능성 없어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행 저작권법 상 위반 행위는 친고죄다. 즉 저작권을 가진 이들이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해진다. 송경재 언론인권센터 1인미디어 특별위원회 위원장(경희대 교수)은 “현행 저작권법의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이나 지위가 있는 사람들에겐 해당이 안 되는 법률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을 침해당한 언론사들이 자신의 저작권이 침해됐음을 알더라도 국회의원을 고발하겠느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일반시민은 다르다. 송 위원장은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법무법인에 의한 대리고발”이라며 “결국 힘없는 사람들만 당한다는 측면에서 저작권법은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모욕죄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저작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것은 동의한다”면서도 “그렇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저작권자의 과도한 권리 행사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법안을 발의한 분들이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과연 이런 방식의 규제가 인터넷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저해하지 않는지 의원들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법 재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