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인터넷 규제만 강화된 방통위 1년

관련 전문가들 “뉴미디어 산업 육성없이 컨트롤에만 관심”

2008년 11월 6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주요 인터넷 포털 대표들과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최 위원장이 석종훈 전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차례대로 허진호 인터넷기업협회 회장과 김제임스우 야후코리아 사장.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엔 관심이 없으신 것 같다. 더 ‘큰 것’을 고민하고 있지 않으시냐. 대운하부터 시작해서 정부의 세세한 국정을 걱정하시다보니 인터넷 같은 ‘소소한 것’은 그분 머릿속엔 끼여들 틈이 없는 것 같다.”

인터넷 전문가 ㄱ씨의 ‘최시중 방통위 1년의 인터넷 정책’ 평가다. 비꼬는 소리다. 지난 1년, 방통위가 인터넷 산업과 관련한 일이 뭐가 있냐는 비난이다. 그는 최 위원장의 관심은 온통 인터넷이 아닌 미디어, 올드미디어의 컨트롤에 쏠려 있었지, 뉴미디어나 인터넷 산업 육성 등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나마의 성과라고 방통위가 자찬한 IPTV 교통 정리와 관련해서도 그의 평가는 냉혹했다. “IPTV의 핵심이자 꽃은 인터랙티브한 콘텐츠고 관련 산업인데, 과거 정보통신부가 이동통신사와 일부 대기업의 바람막이 역할만 했던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정통부 해체 후 IT정책 실종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벤처기업의 육성이나 IT 관련 중소기업의 육성 등 원래 주력해야 할 본연의 업무, 즉 ‘진흥책’은 사라지고 일부 대기업의 이익만 대변하는 구악(舊惡)만 남았다는 평가다.

인터넷업계, 포털종사자, 미디어단체 관계자의 평가는 대동소이했다. 인터넷에 관한 한 방통위의 규제책은 두드러진 반면, ‘업적’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포털업계 종사자는 다음과 같은 불만을 쏟아냈다.

“과거 IMF 외환위기 때 한국이 위기 극복의 모멘텀으로 사용한 것이 IT가 아니었나. 지금과 같은 경제 불안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고용창출을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분야가 IT쪽인데, 정통부 해체 이후 주무부서라고 할 방통위에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정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사실 아니냐.”

ㄱ씨는 “인터넷에 관한 한 방통위의 역할 자체가 여전히 불투명한 것이 문제”라며 “방통위가 생각하는 인터넷은 단지 규제의 대상이지, 아직도 계속 발전해야 하는 육성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한 경제신문은 방통위가 “인터넷 포털 ‘다음’ 측에 이 대통령을 비난하는 게시물과 댓글을 노출하지 않도록 협조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방통위는 보도 해명을 통해 “‘다음’ 측에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임시적 차단조치를 자율적으로 취할 수 있다고 답변했을 뿐, 게시물과 댓글을 차단하도록 다음 측에 공식 요청한 바 없다”라고 밝혔다. 다음 실무담당자는 “당시 정황은 방통위의 해명이 맞다”라며 “다른 파트에서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난 촛불시위 전 과정을 놓고 돌이켜보면 이러저러한 요구가 많았던 쪽은 경찰이었지, 방통위에서 직접적으로 어떤 요구가 들어온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언의 압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정 보수언론이 전하는 방통위 관계자, 검찰총장 ‘멘트’ 등을 통해 “사업자이자 운영자로서 다음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메시지를 뚜렷이 받았다는 것. 물론 주관적 해석이다. 이 담당자는 “말하자면 세련된 통제인 셈인데, 오가는 공문에서는 원칙적인 입장만 말하는 것 같지만 행간의 맥락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다음이 주도한 오픈IPTV가 IPTV 사업자 선정에서 결국 탈락한 것과 관련해 “촛불시위와 관련한 보복이 아니냐”는 것이 정설처럼 돌았다. 모바일 인터넷과 함께 IPTV를 ‘차세대 먹을거리’의 핵심 전략으로 추진했던 다음으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다음의 한 팀장은 “물론 자본금 등 자격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방통위 측의 지적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아고라’ 문제로 다음이 집중공격을 받던 시점과 절묘하게 일치하면서 단지 ‘오비이락’ 식으로만 볼 수 없지 않았겠냐”고 여운을 남겼다.

다음 오픈IPTV 탈락은 보복?
한 인터넷 칼럼리스트는 “다음의 오픈IPTV의 탈락은 다음만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포털업계 전반에 보내는 경고’였다는 것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다음처럼 ‘방조’하면 결국 어떤 식으로 든 복수하겠다는 정권의 의지가 실린 것”이라는 게 인터넷업계 전반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저작권 분쟁에서 포털기업 압수수색, 과징금 부여 ‘정치적 의도’가 실렸다는 것이 통설이다.

흉흉한 업계 분위기는 결국 최시중 위원장의 귀에도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최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6일, NHN, 다음, SK커뮤니케이션즈 등 주요 인터넷 포털 대표이사 등과 공식적인 첫 회동을 했다. 취임 후 7개월이 지나고 나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최근 정부가 포털을 규제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라며 “인터넷 기업은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으로 매우 중요한 경제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신공안정국 조성 음모’라는 비난을 받는 사이버모욕죄 신설, 임시조치, 제한적 본인 확인제 확대, 사업자의 모니터링 의무화 등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골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법 개정 추진 주체는 방통위가 아니다. 한나라당이다. 촛불시위 국면에서 정부 비판 게시글 차단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구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아닌 유관 민간독립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게다가 사이버모욕죄나 본인 확인제 등은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에 참여정부 시절부터 기틀을 다지고 추진하던 정책이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포털에서 기본권인 표현의자유 억압 문제를 두고 책임성을 거론한다면 개인적으로 참여정부가 7, 최시중 방통위가 3 정도의 책임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과 방통위 입장에서는 “나는 이미 입안된 정책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변명 여지를 이미 전 정권이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 회장은 “방통위가 사실상 정부의 미디어·인터넷통제 정책의 사령탑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을 미리 예견하고 견제하지 못한 언론개혁진영의 과오도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현준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네트워크국 네트워크윤리팀장은 “사실 인터넷의 역기능, 즉 사생활 침해와 관련한 개인정보 강화 추세는 역으로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과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방통위가 내놓은 각종 정책에 대해서 과도한 정치적 해석은 곤란하지 않나”고 반론을 폈다. 허성욱 인터넷정책과장은 “그동안 다른 분야에 비해 인터넷에 대한 방통위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지난해 위원장과 포털업계 대표 회동 이후 방통위와 포털 실무자가 만나 하나씩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발표한 무선인터넷 활성화·공공DB개방 계획 등이 그 예라는 것. 그러나 ‘최시중 위원장의 방송통신위원회’에 덧씌워져 있는 정치 프레임은 너무나 뚜렷하다. 그리고 문제는 그것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