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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자장면에 한국 이미지를 가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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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습관을 바꾸자
중국에는 없는 ‘우리만의 맛’ 지닌 국민음식 대접받아야

2005년 인천차이나타운에서 열린 자장면 빨리먹기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자장면을 맛있게 먹고 있다. <경향신문>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의 입맛도 변한다. 취향도 달라지고 선호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장면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누구나 동네 중국집에서 나오는 자장면 냄새에 입 안에 잔 듯 침이 고이는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자장면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자장면에는 음식의 특별함이 주는 추억만 있는 게 아니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사람들의 ‘첫 외식’은 보통 자장면이었다. 자장면에는 최초라는 상징성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다. 자장면은 ‘상’이고 ‘축제’였다. 생일,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때나 학교에서 특별한 상이라도 받은 날엔 모든 가족이 함께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 허기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진한 냄새 그리고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자장면 맛은 동심을 사로잡고 남았다. 자장면 한 그릇이 만든 ‘100원의 행복’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장면에 얽힌 이야깃거리 하나 정도는 있을 만큼 ‘추억 음식’인 셈이다.

‘한국 100대 민족문화 상징’에 선정
특별행사 때나 찾는 동네 골목의 자장면 집 위세도 대단했다. 골목 상권의 대표주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1960대 급속한 경제 개발과 인구 이동의 본격화는 저렴한 별식으로 등장한 자장면 보급에 엔진을 달아줬다. 거기다가 미국의 밀가루 원조와 정부의 혼식 장려는 ‘저렴한 별식’ ‘외식의 대표’로서 아성을 굳혀갔다. 자장면의 한국화와 대중화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1950년대 ‘사자표’이라는 춘장의 출현이다. 1950년대 중반 이래 한국식 자장면의 ‘검은 유혹’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도시화, 고도성장 시대를 지나며 값싸고, 맛있고, 빨리 먹을 수 있는 ‘4000만의 외식 메뉴’로 대중화됐다. 음식전문가 김영민씨는 “자장면은 그냥 음식이 아니라 산업화의 ‘전투 식량’이자 우리네 희로애락의 산증인”이라고 강조했다. 한 음식 전문가는 “자장면 역시 시스템화되어 있지 않다”면서 “그러나 맛의 균일화라는 측면에서 자장면만큼 발전한 음식은 없다”고 말했다. 세계화 바람과 함께 자장면의 아성도 도전받고 있다. 햄버거, 치킨, 도넛 등 패스트푸드 그리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그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자장면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와 삶의 애환을 함께 한 ‘한국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장면은 2006년 정부가 선정한 ‘한국 100대 민족문화 상징’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지만 하루에 600만 그릇 이상이 팔려 나가는 등 국민 음식으로 대접할 만하다. 하루에 8명 중 한 명은 자장면을 먹는 셈이다. 자장면은 또 외식 품목 중 유일한 물가 중점관리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ㆍ역사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면 너무 각박해질지 모른다.

100여 년 전 인천에 처음으로 자장면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공화춘. <경향신문>

자장면은 중국에서 온 외래 음식이다. 자장의 어원인 작장(炸醬)이라는 단어도 볶은 면장이라는 뜻을 가진 중국어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산둥 지방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이 간편식 끼니로 자장면을 만들어 먹으면서 인천이 자장면의 고향이 됐다. 인천시가 2005년 자장면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공화춘’ 개업일을 기념해 자장면 탄생 100년 축제를 개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화춘을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작업도 했다. 최근 <자짱면젼>이라는 저서를 낸 양세욱 한양대 연구교수는 “자장면의 원류는 중국 베이징과 산둥 지역 사람들이 삶은 면에 각종 야채와 기름에 튀긴 토속면장을 얹어 비벼 먹던 국수인 차오장멘(작장면)”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차아나타운 거리인 인천 ‘청관거리’에 산둥 출신 화교가 유난히 많이 살고 있는 것도 자장면 유래를 짐작할 수 있는 한 대목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서 자장면과 유사한 음식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중국 대사관 부민 전 상무서기관은 “중국에서는 사실 자장면의 자취조차 찾기가 어렵다”면서 “실제로 자장면을 제공하는 음식점은 0.1%도 안 된다”고 말했다.

자장면이지만 맛과 향 역시 한국 자장면과 전혀 다르다. 우리 자장면은 춘장을 볶아 찹쌀을 풀고 양파와 고기, 감자 등과 같이 볶아 걸쭉하게 만든다. 단맛을 내려고 캐러멜 시럽을 넣는다. 차오장멘은 춘장이나 캐러멜이나 양파가 들어가지 않는다. 베이징 전통 면장에 몇 가지 야채를 기름에 볶아 고명처럼 얹는 것이다. 중국 요리가 거의 그렇듯이 차오장멘도 불의 세기를 중시한다. 맛도 당연히 심심한 느낌을 준다.

베이징에 역수출, 중국 입맛 사로잡아
한국의 자장면은 최근 중국에 역수출되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위순명씨는 “요즘 베이징에선 한국식 자장면이 인기가 대단하다”면서 “한국 자장면이 훨씬 보급성이 뛰어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중국인들도 한국에서 처음 먹어본 자장면 맛을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서 “중국의 이미지를 벗어나는 게 자장면을 세계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장면 축제’가 곧 자장면의 한국화 작업이라는 얘기다. 사실 우리는 자장면을 중국 요리의 하나로 치부했다. 그래서 자장면 파는 집을 중국집이나 청요리집이라고 불렀다. 자장면을 중국 이미지로 덧칠하고 살았던 것이다. 좀 더 확실히 남귤북지(南橘北枳·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의 경지에 이르도록 국민적 관심이 모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원래 자장면은 고급 음식이었다. 중국의 대중음식을 처음으로 접했던 우리 서민들은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랐고, 청인들은 청요리가 인기를 끌자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됐다. 태생적으로 ‘서민 요리’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양세욱 교수는 “자장면은 오랜 세월 한국인 외식 메뉴 1위였고, 컬러자장·쟁반자장·마라도 자장면에다 자장면을 먹는 블랙데이(4월 14일)까지 생겨났다”면서 “음식으론 드물게 자장면은 정호승·안도현의 글을 비롯해 <역전중국집> <북경반점> 같은 음식영화와 아이들그룹 god의 노래 ‘어머님께’까지, 문학·연극·영화·만화·대중가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소재로도 등장한다”고 말했다. 옛날의 명성에는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자장면의 독특한 냄새는 100년이 넘도록 한국 사람의 체취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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