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IPTV, 황금알을 낳는 거위 될까?

기존 유선방송 비해 콘텐츠 강점 없어 사업 전망 불투명

KT가 17일부터 IPTV 서비스를 시작한다. KT는 10월 21일 KBS, SBS와 실시간 재전송에 합의한 데 이어 11월 12일에는 MBC와도 재전송에 합의했다. 이로써 IPTV 사업 성공을 위한 필수 조건이자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지상파 실시간 재전송 문제를 해결했다.

지상파 방송사와 재전송 합의가 마무리되면서 11월 17일부터 KT의 IPTV 서비스가 시작된다. 사진은 KT의 IPTV 서비스.

KT 주도로 IPTV 도입 논의를 시작한 지 4년 만에 본격적인 서비스에 착수할 수 있게 됐지만, 현 시점에서 IPTV에 대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애초의 장밋빛 전망을 그대로 가진 사람은 드물다. IPTV의 성공 가능성부터 IPTV 도입이 방송 지형에 미칠 사회적 파장에 이르기까지 논란의 소지가 될 만한 대목들이 적지 않다.

우선 IPTV 사업 자체 전망이 불투명하다. IPTV 사업자가 수신료 및 광고수익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IPTV 가입자가 최소 300만 가구는 돼야 한다. 그러나 케이블과 위성방송, 위성DMB 등 유료방송 보급률이 이미 75%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입자를 IPTV 쪽으로 끌어오려면 차별화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문제는 기존 유료방송과 비교해 콘텐츠에서 강점이 없다는 점이다. KT가 지상파 실시간 재전송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애쓴 이유도 특별한 콘텐츠가 없는 상황에서 가입자를 끌어오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 지상파 재전송이었기 때문이다.

지상파 재전송 합의로 서비스 착수
서울산업대 최성진 교수는 “우리나라는 땅을 파면 네트워크만 나온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네트워크는 잘 깔려 있지만 네트워크에 대해 엄청나게 투자한 대신 콘텐츠 개발은 부족해 발전이 미미했다”면서 “IPTV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홍콩은 IPTV 사업자가 케이블 사업자와 전혀 다른 콘텐츠를 사용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국가가 지금부터라도 콘텐츠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면서 “콘텐츠가 빈곤한 상황이기 때문에 가격경쟁만 남았고 제로섬 경쟁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있다”고 말했다.

방송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는 IPTV 도입과 관련해 몇 가지 우려했던 점을 지적했다. 먼저 IPTV 도입이 지역 시청자에 대한 방송의 사회적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KBS나 MBC와 같은 지상파 방송사는 지역총국이나 지역방송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일정한 기여를 할 의무가 있고, 지역 기반 사업권을 갖고 있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상황에서 전국 단위 사업 면허를 받은 IPTV가 들어오면 방송의 지역성이 크게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IPTV 도입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를 촉발하는 계기로도 작용하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전국 77개 권역에서 별도 허가를 받고 전체 권역의 5분의 1을 넘지 못한다는 규제를 받고 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IPTV에 대해 정부가 예외적으로 전국 면허를 내준 만큼 케이블TV가 IPTV와 경쟁할 수 있도록 ‘전체 권역의 3분의 1’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큰 문제는 IPTV 도입을 통해 방송을 바라보는 시각이 공영성보다는 자본의 논리로 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우며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2007년 11월 20일 ‘IT 정책 포럼’에서 ‘방송통신 융합 관련 산업을 미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IT 7대 전략을 발표한 바 있고 ‘중소기업 희망 선포식’에서는 “방송 통신 융합 시대가 열리면 채널이 수만 개가 된다”며 방송을 규모 차원에서 접근하는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김서중 교수는 “YTN이나 KBS에 낙하산 사장을 보내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IPTV를 지렛대삼아 방송 지형을 산업 논리로 재편하는 것이 정부가 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방송이 자본의 영향을 받는 구도가 되면 공공영역은 위축되고 시장영역은 커지면서 방송이 시장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으로 갈 것”이라며 “KT 사장 인선도 그 방향에 부합하는 쪽으로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하여 최수현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정부가 KT에 사업을 빨리 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것 같다”면서 “지상파 재전송 허용이나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창립 등을 통해 IPTV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실제 10월 21일 KT와 KBS, SBS 사이의 지상파 재전송 합의가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창립 행사장에서 열린 간담회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무성한 뒷말을 남겼다.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 방통위인데다, 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김인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대통령 측근 인사기 때문이다.

방송을 산업논리로 재편하는 지렛대
IPTV 도입이 방송의 공익성이나 공공성 같은 가치를 훼손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방통위가 추진하고 있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지상파 방송 및 보도 종합편성 케이블 방송 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의 요건을 기존의 자산 규모 3조 원 이상 기업에서 10조 원으로 대폭 완화하는 것이다. 종합편성 케이블 채널은 보도를 비롯하여 드라마·교양·오락 등 종합적인 편성이 가능한 채널로, 프로그램의 범위가 사실상 지상파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에 전국 단위 사업 면허를 가진 IPTV가 결합하면 막강한 여론 형성력을 발휘할 수 있고, 결국 방송의 공익성은 상업성에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현 정부 방송정책에 비판적인 진영의 논리다.

48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미디어행동’은 6월 26일 기자 회견을 열고 “대기업 기준 완화는 친 정부 여당 방송국 개국을 위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술책”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방송법에 대기업이 지상파, 보도, 종합편성 채널을 소유, 겸영할 수 없게 한 것은 방송을 소유한 기업이 시청자의 이익보다 특정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여 여론과 시장을 왜곡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수현 정책실장은 “KT가 IPTV에 진출해 방송사업자가 되면 방통위 통제를 받게 되므로 정부가 통제하기 쉽다”면서 “사장으로 누가 오든 정부가 통제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T 관계자는 “IPTV에서 채널 선택권은 전적으로 소비자의 권한”이라며 “KT가 IPTV를 통해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이러한 우려를 일축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