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경찰 앞에 서면 ‘작아지는 포털’

누리꾼 신상정보 요청에 ‘신속제공’…
아고라 토론방 개편도 ‘눈치보기’

수신: 다음커뮤니케이션, NHN /대장접수번호: 내사사건 08.○○.○○/가입자: 불상/(중략) /조회의뢰사항: 1)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글쓴이 “×××××”(닉네임) 2) 네이버 블로그 이름 ‘△△△△△’의 닉네임 및 아이디 “×××××”.

본지가 최근 입수한 경찰 작성 공문이다. 내사 대상이 된 이 누리꾼은 이틀 뒤 체포·연행됐다. 첨부된 경찰 내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누리꾼이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린 것은 오후 2시쯤. 경찰은 ‘인터넷 순찰’ 중 오후 4시쯤 이 누리꾼의 글이 ‘위법’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관련 첩보를 수집해 지휘자 명의로 이 공문을 포털에 발송하는 데는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회신 역시 신속했다. 다음과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이날 오후 6시를 전후로 이메일과 팩스로 이 누리꾼과 관련한 개인 신상정보를 보내왔다.

양대 포털이 제공한 정보는 유사했다. 다음이 제공한 인적 정보는 ①DAUM ID ②가입 날짜 ③최근 로그인 날짜 ④이름(실명) ⑤주민등록번호 ⑥생년월일 ⑦주소 ⑧집전화 ⑨휴대전화 번호였고, NHN이 제공한 정보 역시 ①네이버 ID ②이름 ③주민번호 ④e-mail ⑤휴대전화 ⑥가입 날짜 ⑦마지막 로그인 날짜 ⑧탈퇴일이다. 이메일로 먼저 정보를 제공한 다음은 다시 이튿날 ‘정식 공문’으로 같은 내용을 경찰에 보냈다.

전기통신법 54조에 의거 정보 요구

포털 다음은 종전 토론방 상단에 노출되던 찬성·반대 베스트를 목록으로 이동하는 개편을 10월 10일 단행했다. 사진은 아고라에 올라온 개편 반대 의견.

이 누리꾼이 연행·체포된 며칠 뒤. 경찰은 다시 ‘수사상 필요에 의해’ 이 누리꾼의 게시글에 댓글을 달거나 비슷한 주장을 한 다른 누리꾼의 인적사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다음에 요청했다. 답변에 걸린 시간 역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체포된 누리꾼과 동일한 항목의 인적 정보를 아예 표로 정리하여 전달했다. 다음의 공문엔 ‘최초 가입 시 등록한 정보’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인적 정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받은 정보 중 두 사람의 휴대폰 번호가 ‘틀린 번호’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수사에 큰 차질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공한 주민번호 덕분이다. 경찰 전산망의 ‘주민번호 조회’를 통해 경찰은 어렵지 않게 사용자의 최신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적법 절차를 밟은 것이다. 실제 경찰의 수사지휘보고서엔 ‘적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음’이라는 경찰 상부의 확인 서명까지 붙어 있다.

경찰이 포털 측에 사용자 인적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전기통신법 54조다. 이 법의 ③항엔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부터 재판·수사·형의 집행이나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해 다음 각호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통신자료제공)을 요청받은 때 이에 응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1. 이용자의 성명 2. 이용자의 주민번호 3. 이용자의 주소 4. 이용자의 전화번호 5. 아이디 6. 이용자의 가입 또는 해지 일자다. 즉 ‘통신자료’에 해당하는 정보는 수사상 필요에 의해 영장 없이 얼마든지 청구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NHN과 다음 측 관계자는 “법무팀에 문의한 결과 전기통신사업법 54조 통신자료제출 의무 규정 때문에 요청하면 응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포털 ‘밖’의 설명은 달랐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관련법에는 ‘응할 수 있다’라고만 돼 있지, ‘응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실제 진보네트워크에도 과거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협조 요청을 보내온 적 있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 활동가는 “(Weekly경향이 입수한 자료로) 드러난 구체적 실상은 충격적이다”면서 “오·남용 방지를 위한 제도적 대책을 국회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팀장급 포털 업계 종사자는 “운동단체의 경우 비교적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포털의 경우 꼼짝할 수 없는 게 현실 아니냐”라고 하소연했다. 이 관계자는 “다음 ‘아고라’가 촛불시위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특히 정부 당국의 다음에 대한 압박 강도가 높았다”고 덧붙였다. 실제 촛불시위가 촉발한 지난 5월 한 달간 경찰은 포털 다음의 본부장급 관계자를 여러 차례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Weekly경향의 사실 확인 요청에 경찰관계자는 “5월에 수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촛불시위가 한창인 6월에는 혹 정치적 보복 이야기가 나올까봐 명예훼손 사건을 제외하고 일체 다음 측 관계자를 소환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다음’이다.

포털 다음은 7월 7일자로 아고라 토론방을 개편했다. 이 개편은 모든 게시글의 IP를 부분 공개하는 한편, 실시간 논쟁글의 신설과 토론방 베스트 글을 찬성 순과 반대 순을 나눠 보여주는 형태로 바꾸는 것이 골자였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책을 펴낸 ‘아고라 폐인’채수범씨는 “아고라가 자꾸 주목받은 것에 부담을 느낀 다음 측이 형식적 형평성을 염두에 두고 내놓은 개편안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즉 예를 들어 촛불시위가 이슈라면,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을 나눠 각각을 부각시켜 산술적 형평성을 획득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고라에 모인 누리꾼은 다음의 ‘의도’를 무력화시켰다. 글의 말미에 ‘이 글은 반대를 눌러주십시오’하는 식의 글을 덧붙여 찬성·반대 모두 촛불시위와 관련한 찬성 글로 채우게 했던 것. 그리고 10월 10일, 다음은 다시 아고라를 개편했다. 한 사람이 올릴 수 있는 게시글을 20개로 제한하는 한편, 찬성·반대 베스트 글 위치를 목록 뒤로 이동시켰다. 의제설정 혹은 누리꾼 스스로에 의한 온·오프 행동 공지 성격을 갖던 공간이 아고라 토론방의 초기화면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음 측은 베스트 위치 이동 관련 공지에서 “더 많은 게시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고라 누리꾼은 “정치적 눈치 보기 아니냐”며 성토하는 분위기다. 아고라 누리꾼은 ‘개편 반대 청원’까지 발의했다.

“정부가 헌법적 자유 유린 가능성”
다음 관계자는 “아직 평가하긴 이르다”면서 “이번 개편은 열린사용자위원회 등 다양한 사용자에게서 나온 비판과 지적을 반영한 것”라고 주장했다. 다음 열린사용자위원회는 이번 개편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사용자 위원들에 따르면 이번 개편안과 관련 위원회 회의가 열린 것은 9월 19일. 김용철 열린사용자위원회 부위원장·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사용자들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일방적으로 터트리는’문화다 보니 부작용도 발생한다”면서 “개편이 모든 사용자를 100%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다음도 앞으로 새로운 개선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사용자위원은 “다음은 결국 수익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기업”이라면서 “다음의 정책 결정엔 소비자의 권리보다 결국 정부와 사용자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는 것이 덜 손해냐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때 닉네임 외에 가입 아이디의 일부를 공개하는 안이 추진되었는데 사용자 위원회 회의에서도 ‘정부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미리 알아서 맞추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 철회됐다”고 덧붙였다.

최진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정작 개편 방향이나 내용은 공론장 역할을 기대하던 이용자들의 관점과 배치된 방향으로 갔다는 점에서 다음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라면서 “포털 플랫폼이 중요하고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하면 할수록 포털 서비스의 궁극적 위상이나 역할은 결국 통제 중심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근본적으로 포털사업자가 지나치게 개인 신상 정보를 많이 보유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개인 정보·사생활 침해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헌법적 자유를 유린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결국 누리꾼으로선 결국 ‘탈아고라·탈포털’이라는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