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신임 이병순 KBS 사장은 누구인가

경제기자로 성장 자회사 사장 역임

"대체 누구야?”
지난 8월 25일 KBS이사회가 KBS비즈니스 이병순 사장을 KBS 사장 후보로 임명제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미디어를 맡고 있는 기자들이 내뱉은 말이다. 그만큼 이병순 신임사장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어떤 정치색을 가지고 있는지, 또 인맥은 누구인지 등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KBS 사장으로 임명된 셈이다.

그의 간단한 프로필부터 살펴보자. 그는 1949년 경남 거창 출신으로 경북고와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7년 KBS 공채 4기로 보도국에 입사한 후 경제부 차장, 파리·독일 특파원, 기동취재부장, 전국부장, 경제부장 등을 거쳐 KBS미디어 사장(2004), KBS비즈니스 사장(2005)을 역임했다. 1984년 기자 시설에는 ‘경제특집-세계는 무역전쟁’이라는 프로그램으로 한국방송대상 문공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1985년에는 ‘경제특집-총 점검 한국의 국제경쟁력’으로 방송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이병순 사장을 ‘경제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부분 기자생활을 이처럼 경제 관련 분야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강재섭 전대표와 경북고 동기동창
이 사장의 대표적인 인맥으로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전 KBS 이사였던 김인규씨가 꼽힌다. 강재섭 전 대표와는 경북고 동기동창이다.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김인규씨가 뉴미디어본부장을 할 때 이 사장은 국장으로 일했다. 이번 사장 임명 과정에서 강재섭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박재완 수석은 월간지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KBS는 정부 산하기관이므로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정치적인 색깔을 뚜렷하게 내비친 인물이 아니지만 보수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KBS 내부 구성원들의 평가도 좋은 편은 아니다. “이 사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한다”라거나 “출세 지향적인 사람이다” “간섭을 심하게 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 힘들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KBS비즈니스의 한 직원은 “본인에게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냉정하다는 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이 사장 취임식 후 사내 게시판에는 이 사장을 ‘철두철미 그 자체’라고 평가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만큼 일을 할 때 작은 것 하나까지 직접 챙기려는 스타일이다. 그의 별명이 왜 ‘독일 병정’인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8월 27일 이병순 사장은 100여 명의 청원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사장 취임식장으로 들어갔다. KBS ‘사원행동’ 소속 구성원 50여 명이 ‘관제사장 물러가라’ 등을 외치며 격렬하게 취임식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KBS 사상 처음으로 KBS 내부 인사가 사장이 됐지만, 앞으로 그의 행보가 그리 순탄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이 사장은 취임 전부터는 물론, 취임하고 나서도 한계가 있는 사장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KBS 사장 공모가 완료되기 전부터 “KBS 사장 1순위는 김인규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인규씨는 이명박 대선캠프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낙하산’ 시비로 반대 의견이 강력해지자 “KBS 사장 공모에 응하지 않겠다”면서 꿈을 접었다. 이후 2순위로 나온 인물이 전 KBS 이사 출신인 김은구씨다. 그는 ‘조선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을 거쳐 1973년 KBS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겨 경영본부장 등을 지냈다. 현재 KBS 사우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로 김인규 카드를 대신하는 강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김은구씨가 지난 8월 1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등과 함께 대책회의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하면서 청와대는 김은구 카드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3순위로 거론된 이병순 사장이 ‘어부지리’로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력한 구조조정 추진 전망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원래 밀었던 카드가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 이병순 카드는 KBS 노조도 받아들일 수 있는 무난한 인사였다”면서 “하지만 이번 카드는 KBS 내부의 구질구질한 일을 해결해야 하는 폼나지 않은 역할이다”고 평가했다. 언론 관련 인사들은 이 사장을 ‘반쪽 사장’이라고 말한다. 정연주 전 사장의 나머지 임기만 채우면 청와대가 밀었던 김인규씨나 김은구씨에게 사장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자연스럽게 청와대가 원하는 KBS의 내부 문제, 즉 구조조정이나 프로그램 개편 등의 악역을 맡아야만 할 것이다.

이 사장은 이런 예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취임사를 통해 KBS의 강력한 변화를 천명했다. 취임사에는 KBS의 행보가 험난할 것임을 보여주는 문구가 많이 들어 있다. ‘사전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게이트 키핑(데스크가 뉴스를 취사 선택하는 것)이 이뤄지는 제도를 마련하겠다’ ‘선정성이나 특정 이념에 여과 없이 노출되는 실수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사후 심의제도를 철저히 운영한다’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온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은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한다’ ‘KBS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뼈를 깎는 고통 분담도 마다하지 않겠다’ ‘제작비의 거품을 걷어내 제작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 등의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장의 취임식이 있고 난 후 그동안 보수언론에 비판받아온 ‘시사투나잇’과 ‘미디어포커스’ 등의 프로그램이 폐지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강력한 구조조정도 예상된다. 이 사장은 KBS미디어 사장 시절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은 전례도 있다. 이 사장으로서는 정연주 전 사장이 해임된 이유가 방만한 경영과 적자 경영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신의 정당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셈이다.

취임사가 발표된 후 언론 관련 시민단체와 KBS 사원행동 등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코드 맞추기”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에 반해 KBS 박승규 노조위원장은 “이 사장의 취임사를 듣고 특별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면서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물론 반대하지만 효율적인 재배치나 고통 분담은 노조도 요구해왔던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또 “제작진의 자율성은 책임이 따르는 자율성일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면서 프로그램 개편 의도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다.

이병순 사장은 취임식 이후 KBS 사원행동이 벌이고 있는 ‘출근저지운동’ 때문에 청원경찰의 도움을 받으면서 출근하고 있다. KBS 인사 출신의 사장으로는 치욕적일 수 있는 장면이다. 내부 구성원 역시 그런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이병순 사장은 내부 구성원의 반대를 이겨내야 하고, 이명박 정부가 자신에게 바라는 일도 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