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시대마다 위기가 있었다. 미·소냉전이 한창 진행되던 20세기 후반 인류는 핵겨울(nuclear winter)을 염려한 적이 있다. 핵겨울은 미국의 과학자 칼 세이건이 1980년대 초에 제기한 인류 종말의 시나리오다. 만약 미·소 간에 핵전쟁이 일어나 대량의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초전에 대량 살상이 일어날 것이나, 종내는 하늘을 덮을 핵구름이 햇볕을 차단함으로써 지구 기온이 급격히 낮아져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극지방에서와 같이 삼라만상이 얼어붙는 빙하기를 맞을 것이다. 다행히 인류는 지금까지 핵전쟁을 피했고 따라서 핵겨울도 없었다.
그런데 21세기의 인류는 핵겨울 대신 탄소여름(carbon summer)을 두려워하게 됐다. 탄소여름이란 용어는 미국의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지난해 12월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사용한 말로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를 의미한다. 인류가 땅 속에 묻힌 화석연료를 꺼내어 사용함으로써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온실 효과로 기후가 변화한다는 미래 예측이다.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될 당시만 해도 화석연료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는 가설에 대한 회의론이 과학계에서조차 만만치 않았다. 이런 회의론에 편승하여 미국의 부시 정부는 2001년 취임과 함께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던 것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도 2005년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화석연료와 지구 온난화의 관계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온난화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환경주의자와 과학자들이 이를 실제보다 과대 포장하여 인류를 불안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겨울 미국과 중국에 폭설이 내리고 추위가 기승을 부리자 온난화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때를 만난 듯 반론을 제기했다. 특히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다큐영화 ‘불편한 진실’을 제작하고 그 공로로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고어가 이 영화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과장했다는 논란을 불러왔다.
예를 들면 기상학자이자 미국 일기예보 전문회사 ‘웨더채널’의 설립자인 존 콜만은 얼마 전 앨 고어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콜만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매년 발표하는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 기록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했다. 즉 가장 더웠던 10위까지의 해 중 1990년대는 3차례, 21세기 이후에는 단 한 차례밖에 없었는데, 인간이 지속적으로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CNN 진행자 글렌 벡도 고어를 공격하며 “지구 온난화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는 온난화에 회의를 제기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대변한다. 그는 “기상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직장에서 해고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침묵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어의 ‘불편한 진실’은 영국 법정에도 과장됐다는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영국 고등법원의 마이클 버튼 판사는 “영화가 지구 온난화를 다루는 데 9가지 잘못된 점이 있고, 이 중 상당수는 고어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기 위해 과장됐으며 비관적인 맥락에서 표현됐다”며 “이 영화를 중등학교에서 교육 자료의 일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방적인 관점을 상쇄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버튼 판사가 제시한 오류 중에는 2005년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구 온난화로 발생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되었다.
이렇게 지구 온난화의 위험이 과장됐다는 논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지구 온난화 현상은 비선형으로 움직이는 복잡계에 속한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태양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고 이 에너지가 해양과 대기와 땅의 미묘한 상호관계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개별적인 과학자나 환경주의자의 가설과 주장에는 오류와 과장이 있을 수 있다. 특히 환경운동가들이 위험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연구기관이라고 해도 지구 온난화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기상예보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남극 빙하 속의 공기 기포 분석과 인공위성으로 측정해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후 변화의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합의다. 문제는 현재의 이산화탄소 증가 추세가 지구 온난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이냐 하는 점이다. 2007년 측정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381ppm이다. 공기 입자 100만 개 중 이산화탄소 분자가 381개라는 뜻이다. 산업혁명 당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약 280ppm이었으니 인류가 땅 속에 묻힌 화석연료를 쓰면서 그 농도를 36%나 올려놓은 것이다. 과거 수십 만 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렇게 높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가 서슴없이 그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 세계 110여 개국의 과학자와 전문가 2000여 명으로 구성된 유엔 산하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IPCC)’가 2007년 2월 2일 제4차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구 온난화는 인간활동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 현재와 같은 추세로 간다면 2100년 안에 지구의 평균기온은 최소 섭씨 1.8℃에서 최고 4℃까지 상승하며, 바다 수위는 18~58㎝ 높아질 것 같다. 고위도 지역에는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저위도 건조 지역에는 가뭄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조정된 것이기 때문에 매우 보수적인 예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세기 중 최고 섭씨 4℃의 가공할 평균기온 상승을 예측하고 있다. 한두 해 어느 특정지역에 한파가 몰아친다고 온난화 추세가 꺾이는 것은 아니다.
환경문제에서는 현재 나타난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을 인식하는 안목이 더 중요하다. 몸의 질병을 치료할 때 예방이 최선이고, 조기 발견이 차선이며, 증세가 악화한 후 치료에 나서는 것은 최악이다.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는 논쟁보다 지옥이 있다는 믿음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가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는 문제에도 원용될 수 있다.
“입춘 (봄의 기운)은 가장 추운 때에 이미 시작된다.” 고대 동양의 현인들은 절기를 나누면서 이런 우주의 이치를 깨달았다. 지금은 이런 선각적 지혜의 눈이 필요한 때다.
김수종<전 한국일보 주필>
| 김수종 1947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1974년 한국일보 입사 후 뉴욕 특파원, 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하고, 2005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를 지냈다. 현재 자유칼럼 공동대표. 기후변화센터 기획위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0.6도’(2003), ‘지구 온난화의 부메랑’(2007, 공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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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국민이 바뀌란 소리냐?
대통령 말씀에 또 답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