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죄, 사실상 무용지물

66년 동안 단 한 번도 처벌 없어… 당초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사문화

주요 대기업 총수나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피의자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기 전까지 수많은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대부분 기사는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또는 ‘익명을 요구한 검찰 주요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문장이 포함된다. 검찰의 누군가가 흘려줬고, 언론이 그대로 받아썼다는 의미다. 통상 피의자는 기소 후 확정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의 보호를 받는다. 증거가 명백히 드러나 있는 흉악범조차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하지만 검찰이 이야기해주거나 확인해줬고, 언론이 작성한 각종 혐의들은 독자나 시청자로 하여금 유죄의 심증을 갖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피의자는 재판도 받기 전에 이미 여론재판을 통해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지는 셈이다. 이후 무죄 또는 일부 무죄판결이 내려져도 검찰의 수사속보를 좇아 작성된 각종 기사만큼의 판결 보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를 막고자 만들어진 형법 조문이 ‘피의사실공표죄’다.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가 지난 2월 11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사법 농단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김창길기자

검찰은 흘려주고 언론은 익명 보도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에서 ‘직무에 관한 범죄’ 영역에 포함돼 있다. 즉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에 대한 처벌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사기관의 누구도 이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돼 처벌받은 적이 없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의원들이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된 건수에 대한 통계자료를 내놓지만 숫자만 바뀔 뿐 이 죄로 기소됐다는 검사는 없다.

올해 초 울산 고래고기 환부사건으로 한때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들을 피의사실공표죄로 조사하겠다고 나섰던 울산지검도 현재는 잠잠하다. 검찰 관계자 누구도 처음 물꼬를 트고 싶지 않은, 차라리 ‘사문화됐다’는 비판을 받는 게 나은 법이 이 피의사실공표죄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재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각종 수사 보도 자체가 이미 피의사실 공표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필연적으로 ‘언론과의 합작’이 있어야 효력을 발휘한다.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더라도 언론이 제대로 보도해주지 않으면 ‘공표’ 행위 자체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은 또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정보’에 소극적인 속성이 있다. ‘흘려주고’, ‘몰래줘야’ 더 적극적으로 보도한다는 뜻이다. 이를 놓고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피의사실공표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논문을 통해 “과열된 취재경쟁은 취재과정의 적정성과 사실 여부를 떠나 주목도를 끌 수 있다면 일단 보도하고 보자는 식이 언론의 관행이 됐다”면서 “검찰의 자의적 수사 브리핑 관행과 언론의 익명보도 관행은 피의사실공표죄를 현실적으로 무용지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60여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처벌받지 않은 이 같은 죄명을 형법 조문에 포함시켰던 이유는 무엇일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임시회의 속기록 속에 답이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7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과정에서 수정안으로 발의돼 형법에 포함됐다. 정부의 형법 초안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던 조항이 들어간 셈이다.

속기록에 따르면 조주영 당시 무소속 의원(제4대 체신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죄가 있어가지고 형의 언도를 받은 뒤에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하등 상관이 없어요. 그러나 전연 죄도 없는 사람이 죄 있는 사람이라는, 청천백일하에 이러한 누명을 쓰게 되는, 이렇게 인권이 많이 유린당하고 있는 불행이 있는 것이 올시다. 이러한 것을 시정하는 데 있어서는 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러한 조문이 더군다나 우리나라 현 실정에 있어서는 가장 긴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범죄를 수사하는 데 있어서는 기밀을 요하는 것이고, 이것을 어디든지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 상관에게 보고해야 되고 자기 동료들이 범죄를 수사하는데 서로 의논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을 못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불필요하게 신문에 발표한다든지 외부에 기밀을 폭로만 시키지 않으면 되는 것이에요. 범죄수사에 종사하는 사람이 자기의 지위에 있는 것을 요행으로 삼아가지고 남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은 보통 기밀을 누설한 것보다도 더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무분별한 보도로 인권침해 방지 목적

엄상섭 당시 법제사법위원장 대리(무소속 의원) 역시 회의에서 “때때로는 수사관이나 혹은 기타 권위있는 사람의 담화 발표로서도 나오고, 혹은 권위있는 사람의 말한 바에 의해서도 나오고, 때로는 경찰서에 한 번 잡혀갔지만 나중에 신문에만 떠들어놓고 수사한 결과 아무런 결론도 나지 못하는 형편도 있다”면서 “그러나 한 번 신문이나 소문이 퍼진 뒤에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지 못하는 결과가 나서 피해자의 처지는 대단히 곤란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이 조문을 신설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결국 혐의만 있을 뿐 확정적 유죄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피의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수사 보도로 인해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입법취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 조항은 당시 재적위원 92명 중 66명이 찬성해 가결됐다. 반대표는 없었다.

그러나 당초 입법자들이 상정한 법의 취지와 달리 이 법은 66년간 ‘식물 상태’로 존재했다. 존재하나 기능하지 못했다. 2010년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주기식 ‘논두렁 시계’ 흘리기와 언론의 받아쓰기 논란 이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반성과 제도개선 노력이 있었지만 큰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경마식 피의사실 공표 보도’가 반복됐다.

무엇보다 1953년과 2019년의 언론지형은 너무나 다르다. 당시는 주요 몇 개 신문사(방송사는 주요 언론에 포함되지도 않았다)만 통제하면 수사기관의 언론 보도를 막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언론산업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종이신문매체 1429개, 방송매체 51개, 인터넷매체 2796개로 총 4295개의 보도매체가 존재한다. 여기에 언론사 구독자보다 더 많은 지지층을 갖고 소셜미디어(SNS)를 운영하는 유명인사나 유튜버들까지 앞다퉈 각종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결국 피의사실공표죄를 통해 수사기관의 입을 전부 틀어막아도 언론이나 SNS 매체 등을 통한 피의사실 공표는 막을 수 없는 상황까지 온 셈이다(심지어 언론은 해당 범죄의 처벌대상도 아니다).

그렇다면 60년이 넘게 여태껏 처벌한 적 없는 피의사실공표죄를 탓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은 법학자나 실무자는 없다.

언론과 검찰이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거나, 공개범위를 매번 심의위원회를 거쳐 수위를 정해야 한다는 등의 각종 대안은 제시돼 왔지만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형식의 검찰 수사 보도는 결국 ‘흘려진’ 정보를 통해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대안 마련 명확한 해법도 어려워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현재 발생하고 있는 각종 경마식 보도, 수사속보에 목을 매는 보도를 근절하고 추스르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철학자는 전세계적으로도 나오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과 CNN, NBC 등 주요 매체들이 매일 ‘페이크(가짜) 뉴스’라며 떠들고 있다. 미국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의 입을 막아도 언론 보도는 막을 수 없고,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대책 마련 역시 어렵다. 엄청나게 어려운 시절을 거쳐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상섭 법제사법위원장 대리는 1953년 법전편찬위원회 회의 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먼저 하나 생각해 둘 것은 이 형법이라는 것도 법률의 하나로서 이 법률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하는 것… 즉 다시 말하면 사회도 개조(改造)하고 혹은 도의관념도 확립시키고, 사회악도 모두 제거하고, 그런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이 형법에다가 지워가지고는 도저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형법에다가 지나친 부담을 가했다가는 혹은 뿔을 고치다가 소를 잡는다는 것과 같은 결과에 돌아갈 것입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잘못이 없다.

“언론과 검찰의 공생이 만든 합작품”

“그래서, 피의사실공표죄는 없애는 것이 맞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조국 법무부 장관 및 그 가족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소위 ‘경마식’ 피의사실 공표는 틀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및 최순실,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는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애초에 검사가 기소하기 전 피의자에 대한 범죄혐의를 피의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표하고, 언론이 이를 받아쓰는 ‘관행’은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지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장(58·한국헌법학회장)은 일관되게 피의사실공표죄의 위헌성을 주장해온 학자다. 문 원장은 시대를 막론하고 검찰발 기사가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행태에 대해 “이상한 형태로 발전해온 언론과 이상한 형태로 발전한 검찰이 공생하면서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25일 문 원장의 집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위헌이라는 주장을 해오셨다.

“애초에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기 대등의 원칙은 법정에서 보통 이야기하지만 일방적으로 많은 수사정보를 갖고 있는 검찰이 언론을 통해 수사과정이나 혐의사실을 공표할 때 반대편에 있는 피의자는 발언권 측면에서 검찰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검찰이 ‘이러이러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했을 때 피의자 역시 그렇지 않다는 반박을 동일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검찰발 정보를 언론이 피의자에 대한 반론권 보장 없이 일방적으로 보도하면서 재판도 받기 전에 피의자에게 유죄가 확정돼 버리는 것 자체가 힘의 불균형 때문에 벌어진다는 말이다. 양쪽에서 자유롭게 떠들 수 있고 언론이 받아쓰는 상황, 즉 언론이 펼쳐놓은 공론의 장에 양쪽 스피커가 대등하면 피의사실 공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역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피해자로 볼 수는 없을까.

“조국 장관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검찰에 피의사실공표죄가 적용돼서는 안 되는 예다. 조 장관은 검찰과 힘의 우위를 놓고 봤을 때 대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계속 조 장관이나 가족들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검찰 수사의 문제점, 각종 혐의에 대한 반박을 하고 있고 그것을 또 언론이 받아쓰고 있지 않나. 피의사실공표죄는 검찰의 수사 결과 누설 또는 발표로 인해 일방적으로 당하는 피의자에 대한 문제로 놓고 봐야 한다. 검찰은 주요 인물에 대한 수사를 하게 되면 발표를 할 수밖에 없다. 또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면 언론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국가관에 따라 사실관계를 취사선택해 임의로 보도하게 될 것 아닌가. 언론은 결국 쓴다는 속성을 갖고 있고, 검찰이 발표하지 않아도 어차피 언론은 보도를 할 것이다.”

-무기 대등은 법정에서의 검찰과 피고인에 대한 관점이고, 기소 전 혐의사실에 대한 무기 대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 같지 않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들은 무기 대등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 거기에 대응해 반박할 경로가 충분히 확보돼 있다. 문제는 일반인인데 결국 보도의 형식에 달려 있다고 본다. 보도는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단정적인 형식으로 보도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독자로 하여금 유죄의 심증을 갖도록 만드는 형식의 보도를 하는 것. 즉 언론의 보도행태 문제도 굉장히 크다.”

-현실적으로 검찰이 주요 혐의 외에 ‘망신주기식’ 흘리기를 하고, 언론이 무분별하게 받아쓰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언론 보도의 중심축이 검찰이 아닌 법원, 특히 공판 중심으로 넘어가야 한다. 거기서는 양측이 공방을 하고, 그 안에서 각종 증거 제시와 반박이 일어나지 않나. 그걸 보도해야 한다. 또 현실적으로 이것은 ‘돈’ 문제다. 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무죄판결을 받으면 사후에라도 정정보도 청구 및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없는 사람은 손해배상 청구를 해본들 변호사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여기서 징벌적 손해배상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언론이 보도할 권리와 자유는 넓게 보장하되 개인의 반론권이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정 선’을 넘어간 보도를 했을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해 큰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a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