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지역일수록 건강할 권리 못누려… 지자체 후보들 대책 적극 마련해야
2013년 5월 29일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았다. 경남 진주시를 비롯해 인근 서부경남지역의 거점 공공병원 역할을 해왔던 곳이지만 적자 누적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폐쇄를 강행했다. 설립 및 운영 주체인 경상남도가 지방자치단체 고유의 권한으로 지역의 공공보건의료사업을 일임했던 지방의료원을 폐쇄하자 다른 시·도의 지방의료원까지 연이어 폐쇄나 구조조정을 검토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자체의 지방의료원 폐쇄 사태는 아직까지 경남 진주의료원의 경우만으로 끝났지만 그 여파는 서서히 나타났다. 가뜩이나 경남 안에서도 동부지역보다 낙후된 서부경남지역의 주민 건강권이 전국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몰린 것이다.
연령표준화사망률 높아진 경남
대표적인 것이 경남의 연령표준화사망률 순위가 높아진 점이다. 통계청의 연령표준화사망률 통계를 보면 진주의료원이 폐쇄된 2013년에는 전체 시·도 중 8위(10만명당 397.6명)였던 경남의 표준화사망률은 2014년에는 4위(384.6명), 2015년에는 2위(381.8명)까지 올랐다. 2016년에는 5위(364.4명)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전국 평균(337.2명)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각 지자체별로 인구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연령구조가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을 제거해 사망률을 비교한 수치다.
경남 전체에는 종합병원이 모두 24곳이다. 하지만 서부경남지역에는 진주시에만 단 3곳이 있을 뿐이다. 사천시, 하동군, 남해군, 함양군 등 다른 시·군에는 전혀 없다. 특히 이들 서부경남 군지역 주민들이 누리는 건강권은 서울이나 부산, 가까운 창원 등 대도시 지역에 비하면 크게 뒤떨어져 있다. 건강형평성학회가 2008년부터 2014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해 올해 4월 발표한 건강격차 프로파일을 보면 건강수명이 가장 짧은 10개 시·군·구 중에 경남에서는 3개 군이 목록에 올랐다. 하동군(61.09세)은 기대수명 중 건강한 삶을 유지한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이 전국에서 가장 짧았고, 남해군(61.27세), 함양군(62.45세) 등 하위 10곳에 들어간 경남의 시·군들도 모두 서부경남지역이었다. 건강수명이 가장 긴 경기 성남시 분당구(74.76세)나 서울 서초구(74.35세)에 비하면 10년 이상의 차이가 난 것이다.
낙후되고 소득이 적은 반면 평균연령대는 높은 농촌지역으로 갈수록 건강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문제는 경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도 단위로 보면 건강수명은 물론 소득에 따른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양극화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지역은 수도권이나 광역시보다는 농촌 인구가 많은 도에 집중돼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를 중심으로 다가올 6·13 지방선거에서 지역과 소득에 따라 유권자들이 겪는 건강형평성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는 정책과 공약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특히 의료 접근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도 낮은 지역일수록 주민들의 건강권이 공평하게 보장 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 광역·기초 지자체장으로 출마하는 후보들이 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정부 차원의 보건의료 정책이 나오더라도 실제 취약한 지역의 주민이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지자체 수준에서 보다 세밀하고 구체적인 보완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지방자치시대의 건강불평등,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은 “지방정부는 지역의 정치적 리더이기도 하지만 보건서비스 공급자이자 보건정책 기획자이고, 민간에 대해서도 집행과 규제를 담당하는 다중적 역할을 맡고 있으므로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며 “단순히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산발적 정책을 내놓거나 의료서비스 접근성만 높이는 식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건강한 공공정책’을 먼저 세워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평균 기대수명 북한보다 낮은 14곳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지자체에서 방치한 지역의 건강·의료문제 때문에 벌어지는 격차 수준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기대수명이 상대적으로 낮은 남성 중에서 저소득층은 지역에 따른 건강형평성 문제까지 더해져 북한보다 평균 기대수명이 낮은 곳도 14곳에 달했다. 2013년 기준 북한의 평균 기대수명 68.7세보다 남성 저소득층의 기대수명이 낮은 시·군 모두가 농촌지역이었다. 가장 낮은 경남 의령군(67.03세)을 비롯해 전남 고흥군(67.3세), 강원 고성군(67.41세) 등 13곳이 군 지역이었고 경남 사천시(68.58세)는 유일하게 시 지역 중 이 명단에 올랐다.
반면 수도권과 광역시는 대체로 평균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농촌지역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기대수명이 가장 길고 소득에 따른 기대수명 격차도 두 번째로 작은 서울도 역시 시 자체 내에서 2004~2007년에 비해 2012~2015년의 소득별 기대수명 격차가 계속해서 커지는 등 건강형평성 문제에 있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드러났다. 경기도 역시 도내에서 시·군·구 간의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격차는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박진욱 계명대 공중보건학 교수는 “기대수명이 높고 내부 격차도 작은 수도권에 비해 전남이나 강원 등은 기대수명과 소득별 격차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 지역별 특성이 극명하게 나타났다”며 “도 전체적으로는 상위권이지만 내부 격차가 큰 경기도의 예를 볼 때 광역지자체뿐만 아니라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각각의 수준에 맞게 별도의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형평성이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이는 점과 유사하게 지방선거 역시 지역 선거구의 특색에 맞춰 정책·공약 개발과 선거운동이 이뤄지는 경향이 크다. 그만큼 각각의 지방선거 후보들이 건강권 향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밑바닥 민심을 읽는 것이 전체 선거의 승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중앙당 차원에서도 선거 승리를 위해 건강형평성 문제를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각 당의 정책 전문가들은 당의 노선과 주요 후보들의 특성에 맞춰 건강형평성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다만 각 당의 성향에 따라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나타난다. 민주·진보 성향의 민주당과 정의당은 대체로 중앙당 차원의 공통공약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건강형평성 문제를 중앙과 지방정부가 유기적으로 해결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병익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국 광역지자체를 순회하며 정책투어를 진행한 결과 의료 및 건강문제에 관한 지역주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지방선거 때문이 아니더라도 건강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중앙당 차원의 전담 대응단위가 필요하고, 향후 중앙정부와 국회, 지자체 간의 정책연계를 이루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보수 성향 야당은 건강형평성 의제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재정을 고려할 때 중앙정부 중심으로 우선 현재 건강형평성이 위협 받는 상황에 대한 진단과 측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경수 여의도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선 객관적 지표를 개발하고 정확하게 건강불평등 문제를 측정하는 단계가 필요하고, 이와 함께 정부의 의지 부족과 부처 간 칸막이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며 “시·군·구 단위에서 별도의 예산을 들이는 것은 현실적 한계가 있으므로 중앙정부 차원의 거시적인 사회·경제적 대책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해결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폐업한 지역의료기관 다시 문 열어야
진주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은 아니지만 경영난으로 지난해 폐업한 부산의 침례병원 등 지역의 주요 의료기관 문을 열어 다시 운영할 것을 요구하는 지역사회의 목소리도 높다. 폐쇄 5년을 맞고 있는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요구하는가 하면, 침례병원의 건강보험공단 인수 및 공공병원으로서의 재개원을 요구하는 지역 보건의료·노동단체들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산은 광역시 가운데서는 주민 건강권이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민성 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부산이 ‘건강 최악도시’라는 오명이 오랫동안 붙었음에도 서울과의 격차는 물론 부산 내 구·군별, 동별 격차 모두 커지고 있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방향을 정하고, 특히 공공의료벨트를 조성해 모자병원과 노인병원 등을 포함하는 식의 구체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방선거 국면이 다가올수록 지역사회 안에서 표 공략에 치중한 공약은 남발되겠지만 현실적으로 건강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보다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서울의 건강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정최경희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교적 양호한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을 보여주는 서울에서도 소득 상·하위 집단 간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격차가 각각 5.9년, 10.9년이었다”며 “이 격차는 기대수명 6년을 연장하는 데 OECD 국가들에서 평균 25년이 걸린다는 사실에 비추어 매우 큰 것으로, 기대·건강수명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주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병원 확충이나 의료비 지원 등 그간 시행돼온 일부 정책에 국한해 정책을 마련하는 대신 보다 넓은 차원에서 건강권을 바라보도록 시각을 틔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명 고려대 의대 교수는 “지역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방식 중에는 병원에 쉽게 갈 수 있게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대책을 넘어 환경·사회자본 등 보다 폭넓게 삶의 질에 관련된 경로들이 있다”며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건강불평등 완화를 핵심가치로 반영하는 스웨덴의 사례 등이 시사하듯 에너지 빈곤 문제와 녹지 접근성 등을 높이는 광범위한 건강평등 정책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