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판사 죽음에 관한 보고서, 살인적인 업무량으로 재판의 부실화 우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의 방한 사흘째이던 지난 8월 5일. 대법원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강연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현재 추진 중인 상고법원에 대한 지지를 받아낼 심산이었고, 판사들의 질문 내용과 순서까지 선정했다. 상고법원 방안은 대법원이 과다한 업무 때문에 이정표가 되는 판결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상고심을 나눠 하는 법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여든두 살의 긴즈버그는 꼿꼿한 자세로 감탄을 자아냈다.
인권에 관한 획기적 판결 꿈도 못 꿔
이날 같은 시각 서울남부지법 이모 판사가 영등포구 집에서 숨을 내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쓰러졌다. 남편이 119구급대를 불러 근처 이대목동병원에 옮겼지만 이 판사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검찰은 병원의 의학적 판단을 바탕으로 과로에 의한 급성심장사로 결론 냈다. 서른일곱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아이가 순식간에 엄마를 잃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판사실에는 블라우스와 법복, 도장자국이 가득한 인주, 메모를 위한 뾰족한 연필과 지우개, ‘눈에 좋은 비타민’ 한 통이 남았다.
대법원에서 오후 5시에 시작된 강연에는 판사들이, 특히 여성 판사들이 많이 몰렸다. 유대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이중의 장벽을 뛰어넘은 세계적인 법조인에 대한 선망이었다. “공부할 때는 육아를 통해 머리를 식힐 수 있었고, 육아가 힘들면 공부를 통해 휴식했다”는 등의 얘기로 그의 지난날을 설명했다. 로스쿨 교수와 변호사로서 경력을 시작한 긴즈버그였고, 육아에 대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도 달랐다. 그 자리를 지킨 한국 판사들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 설명이었다. 그때 판사들의 카카오톡이 진동했다. ‘서울남부지법 이○○ 판사 과로로 사망.’ 판사들의 얼굴이 굳어졌고, 대강당 밖으로 나가는 이도 있었다.

이모 판사가 과로사한 뒤 서울남부지법 그의 판사실에 주인을 잃은 기록과 도장자국이 가득한 인주, 메모를 위한 뾰족한 연필과 지우개, ‘눈에 좋은 비타민’ 한 통이 남았다. / 독자 제공
긴즈버그는 연방대법원의 역사적인 동성애 결혼 합헌 결정은 하급심에서 충분한 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연방대법원 이전에 동성애자에 대한 주거·고용차별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국민 인식이 바뀌었다.” 판사들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건을 가장 빠른 시간에 기계처럼 처리하면서, 사건의 진척도를 보여주는 통계표를 안고 사는데, 무슨 인권을 생각하는 획기적인 판결을 쓰나. 대법원 판례 따라가기도 벅찬 게 우리다.”
이날 이후 서울남부지법 판사들은 집단적인 우울상태에 빠져 있다.
“(이 판사가 숨지기 이틀 전) 오전에 남편이 법원에 전화해서 병가를 냈다. 사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판사가 갑자기 병가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가족이 전화를 할 때는 이미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같은 법원 동료 판사의 설명이다.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돌려보자. 이번에는 연수원 동기인 다른 판사의 말이다. “친한 친구이고 같은 법원에 있는데도 두 달에 한 번 같이 밥 먹기가 힘들었다. 7월 초에 겨우 만났는데 유난히 몸이 안 좋다고 했다. 법원이 재판을 쉬는 7월 말~8월 초 휴정기에 검진을 받아봐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판사는 끝까지 기록을 붙잡고 있다가 실려서야 병원에 갔고, 돌아오지 못했다.
“판사들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다는 말이 어디 나오겠느냐? 직장에 다니든 장사를 하든 모두가 고단하고 힘들다. 한국 사회가 비정상이다. 괜히 ‘그래도 너희들은 판사잖냐. 일하기 싫으면 개업해서 돈 벌어라. 시켜만 주면 판사 할 사람 많다.’ 이런 소리나 들을 거다.” 판사들은 아무 말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7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로스쿨 출신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이 선서하고 있다. 이들 37명은 8개월에 걸친 장기 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를 위해 현직판사 120여명이 동원돼 있다. 이 때문에 해당 판사들의 업무량도 크게 늘어난 상태다. / 서성일 기자
전국 판사 1인당 사건 연간 579건
판사들의 업무강도를 밖에서는 알기 힘들다. 비교대상도 없어 수치로 표현하기도 어렵다. 법원행정처 인사 담당자의 설명이다. “재판이 보기에는 험하지도 않고, 줄곧 사무실에만 있으니 건강하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상황을 보자면 이렇다. 전국의 판사 2800여명 가운데 40대 이하 젊은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도 여기저기에서 사고가 난다. 얼마 전에도 지방에서 부장판사가 과로로 숨졌고, 또 다른 부장판사는 뇌출혈로 투병 중이다. 연구관 가운데 입원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지금도 암 같은 병을 얻어 모금을 하는 법원이 있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경력에 장애가 될까봐 말 안하고 참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전국 판사의 1인당 한 해 사건 처리건수는 2013년 기준으로 579건이다.
판사들의 살인적인 업무량은 재판의 부실화와 시각의 보수화로 이어진다.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다수결로 선출하지 않는다. 이유는 다수가 대변하지 않는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건 처리에 급급해서는 소수 보호에 대한 철학을 갖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가지고 있는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불만을 가진 당사자들은 2심과 3심으로 상소하는 것을 당연시하게 된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업무량에 시달리는 판사는 노동사건에서 보수적으로 바뀐다.” 서울남부지법 판사들의 설명이다. 결국 판사들의 과로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경제적·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편이다.
판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산더미 같은 업무들을 묵묵히 처리하고 있을까. 이들이라고 통조림 같은 판결문을 찍어내려고 청춘을 바쳐 법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 판사들은 어려서부터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게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러니 공부도 잘하고 했던 것이다. 남들과 비교해 조금이라도 뒤떨어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배석판사 시절에는 아무리 선고 건수가 많아도 판결문을 미처 못 썼다는 소리를 못한다. 부장에게 선고 연기를 하자고 말하면 무능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단독판사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통계를 보면서 남들과 비슷하게 가려고 한다. 해오던 속도가 있는데 이제 와서 늦출 수도 없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해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을 최상위권으로 수료한 현직판사의 이야기다. “대학입시 준비, 사법시험 공부, 사법연수원 시험을 거쳐 왔다. 돌이켜보면 지금 판사 시절이 가장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등학교 3학년 때보다 강도가 높다. 지금 법원의 재판은 머리가 아주 좋고, 체력이 충분히 강하고, 일처리가 성실한 사람을 기준으로 가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모자라면 바로 뒤처지는 구조다.” 법원에 다양한 사람이 들어가기도 힘들고, 들어간다고 해도 버티기 힘든 이유다. “쳇바퀴 돌 듯 사건을 처리한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심지어 이런 시스템에서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하기 어렵다. (남들이 뭐라고들 하는지 알지만) 변호사 개업도 어렵게 됐지 않느냐. 그냥 우리 나름의 소명으로 사는 것이다.”
박봉을 떼어 에누리 없이 세금을 치르는 시민으로서 이런 피로에 찌든 재판을 받는 것은 부당하고 위헌적이다. 현재 하급심 재판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은 이미 판사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나온 것이다. 얼마 전 법원 내부게시판에서 한 판사는 “판사가 사망하거나 건강문제를 가질 정도의 상황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사건 나름의 진지한 고민을 담기보다는 신속한 처리를 위한 사무적 처리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늘 겪고, 해마다 나아지는 상황이 아니라면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썼다. 이번 취재에 응한 많은 판사들은 “판사수를 늘리는 데 절대로 반대하지 않는다. 아마 전국 대부분의 판사들이 마찬가지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진지한 고민보다는 사무적 처리로”
숨진 이 판사의 단짝 동료인 여성 판사의 이야기다. “며칠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판사는 나만의 양심과 노력으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판단하는 일이다. 그것이 주어진 소명이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짐이거나 스트레스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 일에 치여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 법관은, 재판은 죽을 정도로 과하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가 판사로서 행복하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잘 모르겠다. 그렇게 이판사를 보내고 만 것은 못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판사들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대법원은 대법관들의 업무가 과중해 시급히 상고법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일선의 판사들은 해마다 병을 얻어 법원을 떠나거나 숨을 거두고 있다. 숨진 이 판사는 기록을 가지고 퇴근하기 위해 배낭을 메고 다녔다. 더 이상은 그 무거운 기록들을 어깨에 올려놓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법관으로서의 소명도 끝이 났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