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사태가 우리 사회에 일깨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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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쇼핑·택시호출·기프티콘 ‘전방위 먹통’

미국·유럽 수준 입법, 징벌적 손배 도입 시급

강원도 동해에서 알찬수산을 운영하는 이선희씨는 카카오 채널을 주요 판매 창구로 활용한다. 러시아 박달대게와 독도홍게, 킹크랩 등 신선 수산물을 채널에서 광고하고, 판매도 한다. 지난 10월 15일 경기도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이 멈춘 사이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이씨는 전화통화에서 “카카오톡 채널로 주문을 많이 받는데, 지난 주말 사이 주문을 많이 못 받았다”면서 “기존 단골들이 전화로 주문하는 것 외엔 판매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쇼핑라이브’로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자들은 카카오톡 먹통으로 방송을 할 수 없었다. 정해진 시간이 있어 때에 맞춰 스튜디오와 장비를 빌리고, 쇼호스트 출연료도 지급했지만 모두 허사가 됐다.

카카오 캐릭터 인형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 서 있다. / 연합뉴스

카카오 캐릭터 인형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 서 있다. / 연합뉴스

카카오모빌리티의 카카오T 택시호출 서비스도 10월 15일 오후부터 16일까지 중단됐다. 법인택시 노동자들은 사납금을 못 채워 주말 택시운행을 일찌감치 접거나 대로변을 돌아다니며 손님을 태우는 이른바 ‘길빵’에 나서야 했다. 생일 선물을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많이 주고받는 요즘, 카톡이 멈추면서 소상공인은 판매 기회를 상실해 매출 피해를 입고, 이용자들은 기프티콘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다.

카카오의 주요 서비스가 데이터센터 화재로 일순간에 마비되면서 국민은 거대 플랫폼 기업에 일상을 의존할 경우의 위험성을 깨닫게 됐다. 카카오의 서비스는 대부분 정상화됐지만 피해 보상과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여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의 인프라 강화라는 시설의 문제를 넘어 피해를 확산시킨 플랫폼 독점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다.

비상재해복구 시스템 허점 드러나

카카오의 남궁훈·홍은택 각자대표는 지난 10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장애를 사과했다. 남궁 대표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날 오전부터 서비스 장애 피해사례를 접수하는 채널도 열었다. 피해 보상책은 유료 이용자뿐만 아니라 모든 이용자를 포함해 마련하겠다고 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비상재해복구(DR·Disaster Recovery)’ 인프라 투자도 약속했다.

화재가 발단이지만 주요 서비스 복구까지 30시간 넘게 걸린 이유는 카카오의 DR 시스템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카오도 이날 회견에서 이를 인정했다. 홍 대표는 “그동안 카카오톡의 트래픽이 몰리는 경우를 대비한 모의훈련은 수시로 해왔지만, 이번처럼 데이터센터 셧다운(전원 차단)을 대비한 훈련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서버에 데이터를 분산 보관하는 ‘이중화 작업’을 했지만, 개발자 운영 도구가 이중화돼 있지 않아 복구가 지연됐다고 했다. 카카오는 총 9만대에 달하는 서버를 4개의 데이터센터에 분산시켰지만 ‘운영자 서버’는 판교 데이터센터에만 있었다. 카카오 관계자는 “서버를 정상화할 수 있는 개발자 도구는 판교 데이터센터에 있는데 불이 나는 바람에 바로 영향을 받아서 서버 전환에 시간이 걸렸다”면서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과 함께 두 달 안에 개발자 도구도 이중화해 셧다운이 됐을 때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SK C&C 측이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화재가 발생한 전기실에 할론가스가 충분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봤다. 할론가스는 순식간에 산소를 빨아들여 불을 끄는 소화 약제다. 김 교수는 “초반엔 배터리 하나에서 불이 나 그렇게 큰 화재가 아니었는데 할론가스로 불이 안 꺼지니 소방차가 왔고, 물을 뿌려야 하니 누전을 막기 위해 (소방당국이) 전원을 내려달라고 해서 내리게 된 것”이라면서 “일차적 원인은 SK C&C가 제공했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 업계 관계자 역시 “무정전 전원공급장치(UPS)로 리튬이온배터리 대신 납축전지나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썼다면 화재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UPS도 이중화가 됐을 텐데 모두 전원을 내린 것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기실 내 소화 시설 역시 충분했는지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셧다운 상태에서 빠르게 백업 센터를 가동하지 못한 건 카카오의 책임이다. 김 교수는 “주요 시스템과 데이터를 이원화했지만, 결정적으로 비상시 데이터를 옮길 수 있는 작업을 하는 컴퓨터가 SK C&C 데이터센터 안에 있었고, 전원이 꺼지면서 그 작업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복구에 시간이 걸렸다”면서 “백업시스템 구축에서 카카오의 상상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체 데이터센터가 없다는 건 부차적인 문제로, 그게 문제라면 아마존웹서비스 등 남의 데이터센터를 쓰는 건 다 문제라는 논리가 된다”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집단소송 활성화해야

이번 사태가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불러온 건 카카오라는 특정 서비스에 사회가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는 카카오만이 아니라 네이버, 페이스북, 구글, 쿠팡 등 여러 유형의 플랫폼 기업에 모두 해당하는 문제다. 김 교수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면서 단순히 설비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면서 “사이버안보 태스크포스를 꾸릴 때가 아니라 반독점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응징과 억제를 위해 실손해 이상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제도다. 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들이 검토해 기업의 조치가 최선이었는지 따져보고, 소홀했다면 엄청난 규모의 배상금을 물도록 한다”면서 “설비 규정에만 집착할 경우 법에서 상정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오히려 불가항력이었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될 수 있다. 개인정보 침해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이 손해배상을 잘 받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면, 굳이 법에 규정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사전에 사고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집단소송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집단소송제도는 피해자 중 일부가 제기한 소송으로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집단소송제도가 없는 우리의 경우 피해를 본 이용자들이 일일이 소송을 걸어 자신의 손실 금액을 입증해야 한다. 법무법인 지향의 이은우 변호사는 “카톡의 경우 전체 피해액이 1500억원이라고 해도, 국민 한 사람으로 치면 3000원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손해배상액이 이렇게 작은데 누가 힘든 소송을 하겠는가. 집단소송제도 도입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가 무료 이용자를 대상으로도 피해보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카카오톡이라는 서비스를 무료라고 보는 시각 자체가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랫폼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수집해 이를 수익화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비록 현금으로 요금을 내진 않지만, 데이터라는 ‘현물’로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미국이나 유럽은 개인정보를 이용해 수익화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무료서비스로 보지 않는다”면서 “IT 기업들이 기업공개를 할 때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기 위해 가입자 수나 활성사용자 수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개인정보를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원천으로 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내 개인정보를 활용해 여러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면 당연히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유럽 수준의 플랫폼 반독점법 도입해야

플랫폼은 이용자 수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고, 기존 사용자의 이탈이 어려워지는 특징이 있다. 그렇게 장벽을 쌓은 후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러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기업 규모를 키운다. 그 과정에서 자기 사업 영역과 겹치는 기존 사업자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거나, 자기 플랫폼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불공정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술력이 있는 잠재적 경쟁자들을 인수·합병(M&A)하는 이른바 ‘킬러 M&A’로 몸집을 키우고,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기도 한다.

플랫폼 기업의 모델 자체가 독점을 증폭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그리고 독점적 지위에 오른 플랫폼의 서비스가 중단될 경우 피해가 커진다는 점에서 ‘반독점(을 위한) 규제’가 요구된다. 카카오의 경우 국내에서 134개(해외 포함 18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중요한 건 계열사 숫자보다 카카오톡 등 개별 서비스가 누리는 독점적 지위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는 “카카오가 벌어들인 돈을 재난대비 인프라 투자보다는 사업 확장을 위한 M&A에 주로 쓴 게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개별 사업 분야에서 독과점된 영향이 더 크다”면서 “그런 점에서 공정위가 M&A 심사기준을 개정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경쟁제한행위 심사지침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해보인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이 멈추면서 라인과 텔레그램으로 이용자 일부가 이동했다고는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 교수는 “기업 평판에 심각한 영향을 줄 만한 일이 터지면 이용자들이 카카오 모빌리티나 카카오톡을 떠나 기업 이윤과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정도의 패널티가 뒤따라야 하는데 카카오톡 같은 대형 기업이 개별시장에서 독과점이 되면서 소비자가 (다른 서비스로는)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독과점 기업들이 그걸(소비자들의 이탈을) 무서워했다면 왜 미리 데이터센터 이중화에 투자하지 않았겠냐. 시장 자율에 맡긴다고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처방일 뿐”이라면서 “개별 비즈니스에서의 경쟁 제한 행위를 막는 제도를 마련해야 독과점 지위에 안주해 시설 투자와 연구 개발을 게을리하는 기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 1월 경쟁제한행위 심사지침을 마련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 택시회사에 콜을 몰아주거나 쇼핑 플랫폼에서 계열사 상품을 맨 앞에 노출하는 등의) ‘자사 우대’와 (자사 플랫폼에 입점한 식당·상인에게 타 플랫폼보다 더 싼 가격에 팔라고 요구하는) ‘최혜 대우’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지난 정부에서 행정 예고까지 마쳤지만 새 정부가 ‘플랫폼 자율규제’로 방향을 잡으면서 심사지침 제정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 유럽과 미국은 플랫폼·빅테크 기업의 독점을 막기 위한 규제를 속속 준비 중이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서비스법(DSA)에서 온라인플랫폼 서비스에 ‘다크 패턴’(구독 해지 절차 등을 찾기 어려운 곳에 감추거나 매진 임박, 오늘 하루만 할인 판매 등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등 사용자 기만적인 인터페이스) 금지, 콘텐츠 추천시스템 투명성 보장, 위험평가 실시, 프로파일링이 아닌 사용자 선택에 따른 추천 옵션 제공 등을 규정하고 있다. 디지털 시장법(DMA)에선 취득한 개인정보를 자사의 다른 서비스에서 취득한 개인정보 또는 제3자 서비스에서 취득한 개인정보와 결합하는 걸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개인 간 통신서비스를 다른 개인 간 통신서비스와 상호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도 포함한다. 국내에서 이런 조항을 도입하면 카카오톡에서 라인이나 텔레그램 같은 다른 메신저로 쉽게 갈아탈 수 있게 된다.

미국도 자사 우대나 최혜 대우 금지를 규정한 ‘온라인 혁신 및 선택 법안’과 함께 DMA와 비슷한 ‘서비스 전환의 용이를 통한 호환성 및 경쟁 증진법’, 거대 온라인플랫폼의 인수합병을 제한하는 ‘플랫폼 경쟁 및 기회법’ 등을 마련 중이다. 이은우 변호사는 “특히 소위 주목경제, 감시자본주의로 불리는 플랫폼 기업들은 이용자들을 붙잡기 위해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면서 “유럽의 경우 데이터 기업들이 서비스를 할 때 영향평가를 해 그 결과를 공개토록 하고, 데이터도 정부와 학계 연구진에게 공개하도록 했다. 카카오 사태를 계기로 우리도 플랫폼 독점을 해소할 근본적인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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