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아이리시맨> 노조 연기금을 마피아에 빌려준 ‘대체투자’

“영화를 공부할 때 가슴에 새긴 말이 있는데 (당신이 말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것.”

영화 <아이리시맨>은 가난한 이민 노동자에서 이탈리안 마피아 조직의 거물이자, 미국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화물운송노조의 핵심 간부가 된 지미 호파의 실종 사건을 소재로 한다./유니버설 픽처스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보낸 경의는 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작품상을 놓고 <기생충>과 경쟁했던 작품이 <아이리시맨>이다. 러닝타임 약 3시간 30분에 이 영화는 1975년 실종된 미국의 노동운동가 지미 호파를 다룬다. 지미 호파는 230만 명에 이르는 전미트럭운전사노조(IBT) 위원장으로 ‘1950년대의 엘비스보다, 1960년대의 비틀스보다 유명했던’ 인물이다.

2000년대 초, 요양원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80대 노인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 분)이 회상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1955년 트럭운전사 시런은 고장 난 차를 고치기 위해 고속도로변 텍사코 주유소에 주차한다. 이때 뜻하지 않게 도움을 준 사람이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 분). 알고 보니 그는 이탈리아계 마피아로, 지미 호파(알 파치노 분)와 막역한 관계다. 시런은 버팔리노와 호파를 위해 청부살인을 하는 ‘페인트공’이 된다. 승승장구하던 노조위원장 호파는 J.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는 대선 경쟁자였던 닉슨을 지지했던 호파를 조사해 구속한다.

부하인 피츠에게 자리를 물려준 호파는 석방된 뒤 노조위원장 복귀를 꿈꾼다. 하지만 피츠는 이미 마피아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마피아는 왜 지미 호파를 버렸을까? 답은 ‘노조의 연기금’이었다. 피츠는 마피아가 마음대로 연기금을 대출받아 쓸 수 있도록 눈을 감았다. 마피아는 그 돈으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등 각종 개발사업에 투자했다. 반면 호파는 위원장이 될 경우 그간 나간 대출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했다.

연기금이란 연금기금을 줄인 말로 향후 노조원들에게 노후자금인 연금을 주기 위해 모은 자금을 말한다. 국민연금기금·공무원연금기금·사학연금기금·군인연금기금 등이 대표적인 국내 연기금이다. 해외에서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기금·캐나다연금기금·일본공적연금기금·노르웨이정부연금기금 등이 유명하다.

구성원들에게 연금을 주기 위해서는 기금을 투자해서 수익을 내야 한다. 연기금은 주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해 왔지만 최근에는 부동산·인프라·사모펀드 등 대체투자에도 눈을 돌리고 노조가 마피아에 연기금을 대출해 부동산 개발에 투자한 것도 대체투자로 분류된다. 대체투자는 경기가 좋을 때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금융시장이 침체를 겪을 때는 대규모 손실을 볼 수도 있다.

노조위원장이 주물렀던 IBT의 연기금 관리는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부패 수사 이후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노던트러스트 등 투자은행(IB)에 위탁됐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투자했던 부동산과 파생상품, 주식이 반토막나며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워치>는 2016년 ‘IBT의 연금은 어떻게 마피아보다 월스트리트에 의해 사라지게 됐을까’라는 기사를 통해 수탁자 문제를 집중 다뤘다.

영화 속 경제

변호사 출신 작가 찰스 브랜튼은 논픽션 <아이리시맨>에서 아일랜드계 마피아 조직원이었던 시런이 호파를 죽였다고 밝혔다. 영화의 원작이 된 이 작품의 원제는 <당신이 페인트칠을 한다고 들었다(I heard you paint houses)>이다. 이는 호파와 시런이 처음으로 통화하면서 했던 말이다. ‘페인트를 칠하다’는 마피아의 언어로 살해할 때 튄 피가 벽이나 마루를 적시는 것을 뜻한다.

<박병률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