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된 중장기 조세재정개혁

기재부, 감세도 증세도 선택하지 않은 세법개정안 발표… 국세수입 크게 줄어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100년 앞을 내다볼 조세재정계획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람 중심의 포용국가’를 설계하려면 대대적인 재정확장이 필요하고 세수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민·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도 이 같은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중장기적 조세재정개혁만큼은 공수표로 돌아갔다.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7월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2019년 세법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25일 기획재정부는 증세도 감세도 선택하지 않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2019년도 세법개정안을 보면 국세수입은 세법 개정 전과 비교해 향후 5년간 4680억원 감소한다. 내년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로 감면되는 금액만 5320억원이다. 대기업에 대한 세액공제가 1%에서 2%로 1%포인트 올라가면서 약 5000억원의 세수 감소 효과가 발생했다. 그 밖에 창업 중소기업 세액 감면 확대로 500억원이 감소한다. 그 결과 법인세는 향후 2024년까지 누적 5463억원이 줄어든다. 향후 5년간 대기업의 세부담이 2062억원, 중소기업은 2802억원 감소한다. 향후 5년간 법인세 감면규모만 5365억원이다.

기업 세부담 줄이고 고소득층 과세 강화

반면 소득세는 향후 5년 연속 증가해 2024년까지 누적 1046억원이 늘어난다. 전체 세수 감소규모가 법인세 감면규모보다 작은 것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를 단행해 소득세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연간 총급여가 3억6250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의 경우 지금은 소득공제에 한도액이 없지만 앞으로는 2000만원까지만 공제를 받게 된다.

기재부는 연간 소득공제 한도 2000만원에 해당하는 인원을 약 2만1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기업 임원 퇴직소득 한도를 축소해 퇴직소득에 대한 과세도 강화한다. 퇴직소득은 한도 초과분에 대해서만 과세가 되는데, 한도가 축소되면 그만큼 과세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정부는 고소득자 근로소득공제 한도 축소로 연간 640억원, 임원 퇴직소득 과세 강화로 연간 360억원 등 향후 5년간 고소득층의 세부담이 3773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세부담은 줄인 반면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세입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은 대부분 1~2년 후 일몰이 도래한다. 김병규 세제실장은 “올해 계획된 투자를 내년으로 미루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한시적인 조치”라며 “정부가 감세기조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실제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법인세나 재산세, 소득세 등의 세율은 조정하지 않았다. 당정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한 증권거래세 세율만 0.05%포인트 인하했다. 형식적으로는 감세지만 항구적·지속적인 감세로 방향을 틀지 않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기재부는 이번 세제개편에서 세수 감소 범위와 관련해 1조원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설정했다는 후문도 나온다. 기재부 세제실의 한 관계자는 “야당을 중심으로 대기업 투자세액공제율을 더 올리라는 압박이 거세지만 세수가 1조원 넘게 감소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경기부양책으로 감세가 선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법인세율을 깎는 등 감세조치를 했다. 중국도 감세로 대규모 경기부양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감세를 할 만한 재정여력이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더 늘어나고 복잡해진 비과세 종류

지방재정분권을 위해 부가가치세의 5%였던 지방소비세율을 11%로 인상하면서 중앙정부는 연간 5조1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게 됐다. 지난해 근로장려금(EITC)을 3배로 확대하면서 4조7000억원이 소요된다. 기재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재정분권은 이뤄졌는데 실제 사무분권이 이뤄지지 않아 중앙정부 부담이 예상된다. 근로장려금 확대도 재분배에는 큰 효과를 가져오지만 재정에는 부담”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경제가 확실하게 주저앉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대기업 감세를 획기적으로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도 울며 겨자먹기로 ‘생색 감세’를 한 셈이다.

비과세의 종류는 더 늘어나고 복잡해졌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인 올해 정부의 세제개편 목표는 비과세 정비였다는 점에서 정반대의 결과다. 집권 1년차에 법인세와 소득세율을 올리고, 2년차에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강화한 동시에 근로장려금을 확대했다. 3년차는 세율을 올리기보다는 다양한 비과세를 정비해 고소득층·대기업이 더 큰 혜택을 보는 역진성 문제를 해결하고 세입기반을 확충한다는 그림이었다. 근로소득자 10명 중 4명이 면세인 상황에서 비과세 정비는 지난 정권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일이다.

하지만 경기 대응 카드로 다양한 비과세를 꺼내면서 조세개혁과는 더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유세 인하 일몰, 자동차 구입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하 등에 대한 일몰 연장 등으로 부가가치세는 내년에만 793억원이 줄어든다. 주로 중산층 가입자가 많은 사적연금에 대한 세제지원 확대로 향후 5년간 440억원이 감소한다. 서민·중산층의 향후 5년간 세금 감면액은 1682억원이다. 대체로 소비에 대한 감면이다.

그러나 기재부도 효과에 대해 자신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개소세 인하만 보더라도 지난해 1~6월 국산 승용차 판매량은 63만1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으나 개소세 인하가 적용된 7~12월(66만7000대)에는 2.2% 증가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자동차 판매량은 급격히 떨어져 지난 1~4월 자동차 판매량은 41만대로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불황을 겪고 있는 자동차 업계에 떠밀려 일몰을 연장했지만 효과는 기재부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기재부는 왜 원치 않는 감세를 하고 있을까.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재정, 금융지원, 세제혜택, 규제완화 네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쉬운 수단이 세제혜택”이라고 말했다. 재정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규제완화는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이 첨예해 쉽지 않다. 금융지원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수단이지만 ‘은행의 팔을 비튼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생색을 내면서 재량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수단이 세제혜택이다. 이 관계자는 “이 중에서 가장 정책효과가 떨어지는 것 역시 세제”라고 말했다. 생산성향상투자세액공제만 하더라도 역진성과 투자효과 등을 고려해 2017년 공제율을 인하했던 정책이었다.

집권세력이 처음부터 증세 의지가 약했던 것이 근본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보유세 인상규모는 1조1000억원에 불과해 ‘콩알탄 증세’라는 비판이 있었다. 중산층에 대한 증세는 정부 차원에서 거론된 적이 없다. 집권 첫해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최상위층에 대한 과세만 강화했다. 반면 증권거래세 인하, 가업상속공제 확대 등은 여당 의원들이 중심이 돼 추진해왔다. 정권 스스로가 ‘중산층 증세’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지 못해 개혁을 힘있게 밀고나가지 못했던 상황에 때맞춰 불어닥친 경기하강과 세계경제 위축이라는 파도는 개혁의 조건을 무너뜨린 셈이다.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도 현재가 증세국면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향후 3년간은 정부가 나라빚을 감당하며 재정적자를 대폭 늘리고 성장률을 높인 뒤 증세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정치권발 감세 압박과 손쉬운 정책수단으로 감세를 선택하고픈 유혹에 굴복하면서 비과세는 계속 늘어나고 세제는 복잡해지고 있다. 훗날의 세제개편 역시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박은하 경제부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