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특구법’을 둘러싼 논란, 국민안전 침해·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전기가 마련됐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혁신성장과 관련해 제도적으로 굉장히 진전됐다.”(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낙연 국무총리가 1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규제개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여당이 제안한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 5법’ 중 지역특화발전특구법, 정보통신융합법, 산업융합촉진법 등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당 수뇌부는 연일 법안 통과에 의미를 부여하며 혁신성장 띄우기에 나섰다. 여당은 “아직 계류 중인 행정규제기본법과 금융혁신지원법 개정안 등 나머지 2개 법안도 조속히 처리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법안이 통과되던 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백두산에 오른 날이다. 규제 샌드박스법은 시민단체로부터 “박근혜 정부의 ‘규제 프리존법’과 같다”는 비판을 받아온 법안이다. 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규제 프리존법을 반대한 바 있다. 온국민의 시선이 백두산을 향한 사이 각종 규제를 ‘역대급’으로 풀어주는 중요 법안들이 무더기로 통과된 셈이다. 법안을 놓고 “실효성은 없고 부작용만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시민단체 “지역특구법은 규제 프리존법”
‘규제 샌드박스’라는 용어는 2014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샌드박스는 ‘모래사장’을 뜻하는 말로,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들이 모래사장에서 뛰어놀듯이 신기술이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준 일정한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지난해 7월 발간한 ‘규제 샌드박스 정책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영국에서 규제 샌드박스는 당초 뒤떨어진 금융부문의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고안됐다. 영국에서 정책이 성공을 거두자 싱가포르, 일본 등이 잇달아 유사한 모델의 규제완화책을 도입했다. 특히 일본이 적극적이었다. 보고서에서 최해옥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규제 샌드박스라는 용어를 적극 수용해서 2017년에 국가전략 차원으로 확대한 첫 번째 국가”라고 분석했다.
국회를 통과한 규제 샌드박스 3법이 모두 논란이 되는 건 아니다. 신산업 영역에서는 필요에 따라 과감한 규제혁신이 필요하다는건 시민단체들도 인정하는 바다. 가장 문제시되는 법은 바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지역특구법)’이다. 지난해 공포된 이 법은 올해 ‘규제자유특구’를 지정하고 이 특구 내에서 세제완화, 금융지원, 규제완화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추가돼 개정안이 통과됐다.
시민단체들은 지역특구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규제까지 없애는 일종의 특혜법이라는 입장이다. 민변 환경보건위원회 최재홍 변호사는 “골프장이든 난개발이든 ‘신기술’ 타이틀만 걸면 규제자유특구로 묶어 기존의 규제를 대부분 면제하도록 해놓은 게 이 법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며 “이름만 규제혁신일 뿐 공공의 이익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규제들을 일거에 해체하는 초법적인 위헌성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이 10월 10일 국회 앞에서 열린 ‘개인의료정보 상업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지역특구법 시행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진보네트워크센터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제기된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오병일 활동가는 “법에 따라 규제자유특구 내에서는 자율주행차가 수집한 비식별화된 개인정보를 수집 목적 외 자유롭게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도 제공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며 “특구 내 사물인터넷이 수집하는 개인정보, 위치정보 등도 비식별화만 하면 맘껏 이용할 수 있어 개인정보 유출과 정보인권 침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비식별화된 개인정보의 경우 특정 기술을 통해 재식별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비식별화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데 대한 사회적 합의도 완전치 않다는 것이다.
지역특구법이 박근혜 정부의 규제 프리존법을 흡수한 법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역주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에서는 규제자유특구를 규제프리존으로도 명시하고 있다. 지난 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규제 샌드박스 설명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는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규제 프리존법을 병합했다”고 밝혔다. 규제프리존은 지난 대선에서 후보 간 시각이 엇갈리며 중요 의제로 다뤄졌다. 당시 문 대통령 선거캠프의 유은혜 수석대변인(현 교육부총리)은 규제프리존을 찬성하는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규제 프리존법은 박근혜 정부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통해 입법 대가로 대기업에 돈을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기업 청부입법”이라고 논평을 냈다.
“실효성 적고 부작용 클 것” 지적도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규제혁신을 위한 ‘마이웨이’를 갈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문 대통령이 차기 경제부총리로 지명한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현 정부 들어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된 이래 줄곧 ‘규제개혁’을 외쳐 왔다. 홍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를 진두지휘한 미래창조과학부에서 1차관을 지내 규제프리존과도 익숙하다. 정부 스스로 “창조개혁과 유사하다”고 밝힌 혁신성장 기조를 이어가고 규제 프리존법을 계승한 규제 샌드박스법을 실행하기에 최적임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 기대대로 규제 샌드박스법이 신성장을 도모하고 경제위기를 탈출할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우선 재계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있었던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단의 간담회에서 회장단은 더욱 파격적인 규제개혁을 요구했다”며 “규제 샌드박스법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12일 열린 간담회에서 회장단이 제시한 5가지 제안 중 첫 번째가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개혁”이었다. 신산업을 위해 애써 만든 규제 샌드박스법이 국회를 통과해 10월 8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의결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성 장관은 “기업이 겪는 애로는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화답했다. 재계의 건의를 의식한듯 이낙연 국무총리도 15일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장관들이 직접 나서서 작은 규제도 신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론’, 박근혜 정부의 ‘손톱밑 가시론’ 등을 포함해 지난 20년간 규제개혁을 안한 적이 있나”라고 반문하며 “그런데도 늘 경제위기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혁신성장이든 뭐든 규제를 개혁하는 게 성장을 도모하는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경제부문에 있어 규제란 곧 ‘기득권’을 의미한다”며 “민간엔 대기업이, 정부엔 관료가 기득권인데 이러한 기득권을 개혁하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 없이 규제만 개혁해서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