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특위’가 뭐하는 곳이더라?

부동산 과세 정부와 엇박자… “굳이 왜 만들었나” 무용론만 비등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주목되는 정책은 ‘세금’ 정책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도입하면서 ‘세금 폭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이제는 자산에 대한 과세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발맞춰 부동산 보유세를 어떻게 강화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재정개혁특별위원회라는 자문기구를 구성해 부동산 보유세 등 세금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재정개혁특위는 부동산에 대한 과세를 바로잡을지 다수의 기대를 안고 올 초 출범했다. 지난 7월 3일 재정개혁특위는 종부세를 ‘찔끔’ 올리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강화하는 ‘자그마한’ 결과물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틀 뒤에 공식적으로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이 때문에 “단 며칠 만에 마음에 드는 건 받아들이고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특위를 뭐하러 만들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월 6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종부세 찔끔 인상, 금융소득종합과세 거부

종부세는 고액의 부동산을 가진 이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조세부담 형평성을 높이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현행법상 종부세는 주택의 시장가격에 바로 부과하지 않는다.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을 따로 계산한다.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금액(과세표준)은 공시가격에서 6억원(1주택자는 9억원, 부부 공동명의는 12억원)을 빼고 공정시장가액 비율(현재 80%)을 곱한다. 이렇다보니 실제 과세표준은 실거래가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재정개혁특위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매년 5%포인트씩 올려 2022년 100%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높이는 부분은 수용했으나 2020년 90%까지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100%까지 더 올릴지는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미뤘다. 또한 별도합산토지에 대해 특위는 전 구간 세율을 0.2%포인트씩 인상하는 방안을 권고했으나 기재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도합산토지란 상가·빌딩·공장부지 등 80억원 이상 사업용 토지에 부과되는 토지로서 특위에서는 ‘대기업 보유 토지에 과세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정부는 그러나 임대료 전가, 제품 원가 상승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현행대로 유지한다고 했다.

정부가 특위의 권고안보다 강화한 부분도 있다. 과표 주택가격 6억원 초과 12억원 이하 구간에서 세율 인상폭을 특위 권고안(0.05%)보다 높은 0.1%포인트로 인상했다. 과세표준 6억원을 초과하는 3주택 이상 보유자(시가 합계 19억원)에게도 0.3%포인트를 추가 과세한다. 이 부분은 다주택자의 세부담을 강화하라는 특위의 소수 의견을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은 종부세를 ‘찔끔’ 올리는 데 그쳤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과세를 강화한 ‘과표 6억원 초과 12억원 이하 구간’에 포함되려면 시가 기준 1주택자는 약 23억~33억원, 다주택자는 약 19억~29억원 수준은 되어야 한다.

기재부가 종부세 부담을 추산해보니, 시가 17억1000만원인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가 부담해야 할 세금은 5만원(농어촌특별세 포함)에 불과하다. 3주택자의 세금 부담도 9만원 느는 데 그친다. 시가 23억6000만원짜리 주택 보유자를 따져봐도 1주택자는 28만원, 3주택자는 173만원 늘어난다. 시가 34억3000만원짜리 1주택 보유자가 159만원의 세금을 더 내고, 3주택자라면 568만원의 부담이 증가한다.

재정개혁특위 권고안 중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정부가 거부한 점도 논란거리다. 당초 특위는 현행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부는 특위 발표가 있은 바로 다음날 이를 거부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6일 “부동산시장으로의 자금이동 우려, 고령 은퇴자에게 미치는 영향, 신고 인원의 급증에 따른 행정비용 증가 등을 감안했다”며 세제개편안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출’ 계획 없이 ‘수입’을 짜려니

정부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강화하면 시중의 자금이 금융투자 쪽이 아니라 오히려 부동산투자로 흘러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특위는 이 부분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 양측의 입장 차이가 명확했다.

문재인 정부가 재정개혁특위를 만들면서 내세운 큰 목표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재정개혁의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큰 목표 하에 조세 및 예산분야 전문가 26명과 기획재정부의 재정관리관, 세제실장 등 정부 측 인사 2명을 포함, 총 28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였다. 물론 재정개혁특위는 자문기구이며 과세권은 정부에 있고, 최종적으로 입법부 소관이지만 하루만에 특위가 머리 싸매 회의한 내용을 뒤집자 세금 인상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양측에서 모두 ‘특위 무용론’이 나오는 상황이 됐다. 세금 인상이 불편한 쪽에서는 ‘특위가 사회적 공감대 없이 마음대로 인상해 혼란만 자초했다’고 비난하는가 하면, 여당 내부에서도 “마음에 드는 내용만 골라서 수용할 거였다면 굳이 특위를 만들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재정개혁특위가 하반기에 다시 논의를 시작할 ‘동력’이 있겠느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편에서는 국가 전체적으로 앞으로 복지에 얼마의 재원이 필요한지 등 ‘지출’ 부분에서 계획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출’을 알아야 ‘수입(세금)’의 로드맵을 짤 수 있는데 복지부문 로드맵 없이 하다보니 ‘핀셋’ 방식으로 몇 개만 찔끔 올리고 만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복지에 대한 큰 그림 없이 재정개혁특위를 진행하다보니 핀셋 증세밖에 할 수 없고, 그마저도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 상황에서는 재정개혁특위가 앞으로 추상적인 계획밖에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