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지오스톰>-안전 도모할수록 위험 커지는 ‘펠츠만 효과’

연초부터 전세계에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북미는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한파가 몰아쳤고,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는 눈이 내렸다. 반면 호주는 기온이 47도까지 올라가며 아스팔트가 녹아내렸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울 때마다 인류가 입어야 할 인적·경제적 손실은 크다. 기상을 조작할 수는 없을까.

딘 데블린 감독이 연출한 <지오스톰>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가까운 미래, 인류가 공동으로 날씨를 통제할 수 있는 위성시스템 ‘더치보이’를 개발한다. 운영권은 미국이 갖지만 조만간 세계정부연합으로 이관된다. 어느 날 아프가니스탄 사막에 있는 마을이 혹한에 얼어붙는다. 홍콩에는 용암이 분출하고 두바이에는 쓰나미가 밀어닥친다. 모스크바에는 폭염이, 리우의 해변에는 살인한파가 급습한다. 미국은 더치보이의 개발자 로손을 더치보이 통제센터가 있는 우주정거장으로 보낸다. 알고보니 누군가가 더치보이에 바이러스를 심었고, 이 때문에 의도적인 오작동이 일어났다.

[영화 속 경제]<지오스톰>-안전 도모할수록 위험 커지는 ‘펠츠만 효과’

<지오스톰>은 미군이 알래스카에 설치했다는 고주파 실험시설인 하프(HAARP) 음모론을 떠올리게 한다. 하프는 강력한 고주파를 발생시킬 수 있는 안테나 시설이다. 여기서 고주파를 쏴 대기 상층부의 전리층을 달구면 대기 순환이 인위적으로 조절되고, 이로 인해 지진이나 쓰나미, 회오리 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는 리스크를 싫어한다. 화재·부상·교통사고 등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보험을 만들었고, 금융상품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파생상품을 만들었다. 이중삼중의 방어막을 치면 과연 안전해질까. 그런데 반드시 그렇지 않다. 안전을 도모할수록 되레 위험도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이른바 ‘펠츠만 효과(Feltsman effect)’다.

1976년 시카고대학 경제학자인 샘 펠츠만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안전벨트, 에어백 같은 새로운 안전기술을 새로운 차들에 장착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했지만 그 후에도 도로는 전혀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안전장치가 도입된 이후에 사고당 사망률은 낮아졌지만 사고가 급증하면서 전체 자동차사고와 사망자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원인은 차량 속도였다. 펠츠만은 “비용(사고위험)이 감소하면서 편익(고속주행)을 늘리려는 운전자의 합리적인 경제행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전의 역설’이다.

1907년 극심한 금융공황을 맞았던 미국은 1913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를 설립했다. 연방준비제도가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금융위기 따위는 다시 오지 않을 것으로 미국인들은 굳게 믿었다. 미국 은행들은 방만경영을 계속했고, 이는 1929년 자본주의 역사에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이어진다.

2008년 금융위기도 믿었던 파생상품의 배신이었다. 금융인들은 슈퍼컴퓨터와 수학자들을 동원해 만든 파생상품은 위험을 완전히 헤지했다고 믿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파생상품을 팔다 전세계가 함께 망할 뻔했다.

영화 속 경제

기상을 통제할 수 있는 ‘더치보이’와 같은 시스템이 있다면 인류는 더 이상 기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줄어든 만큼 잠재적인 위험은 어딘가에서 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든 오작동을 할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준 기회는 인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