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악화되는 청년실업률… 주거·교육·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안전망 미비

지난해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한모씨(24)는 이번 추석 연휴를 거의 ‘노량진’과 ‘편의점’에서 혼자 보내다시피 했다. 낮에는 학원에서 추석 연휴 ‘공시’ 특강을 듣고, 밤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추석 연휴를 거의 다 보냈다. 국문과생인 한씨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었던 지난해 대기업·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사무직에 여러 차례 지원서를 제출해봤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한씨는 올 상반기 기업 공채 시즌이 끝나자 기업 원서 넣기를 접고 7급 공무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씨는 “남들은 연휴라며 놀러가는데 나만 학원과 편의점을 전전하는 것 같아 우울함이 밀려왔다”면서도 “한편으론 뭐하느냐고 묻는 친척들 얼굴 안 봐서 속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금융권 공동 채용박람회에 5000여명의 청년들이 서류를 들고 방문했다. 지원자들은 최소 3시간 이상 기다려야 면접을 볼 수 있었다. / 이준헌 기자

입맛·건강 포기하고 편의점서 끼니 때워

지난 8월 청년실업률이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8월(10.7%) 이후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의 실업률이 9.4%를 기록했다. 청년층 41만7000명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단기 아르바이트생, 구직을 아예 포기한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 등을 모두 합해 추산하는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2.5%(114만3000명)에 이른다. 청년 5명 중 1명은 백수라는 뜻이다.

특히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가 가능한 2000년 이후로 청년실업률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2000년 8.1% 이후로 2002년 7.0%로 떨어졌으나 2012년 7.5%를 찍고 나서는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9월 말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추석의 서민 및 청년 경제고통지수의 변화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청년들의 경제고통지수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경제고통지수란 청년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으로, 청년과 서민층의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한 지수이다. 2015년 8월에는 23.2%에서 지난해 8월 22.1%로 하락했으나 올해 8월 24.9%까지 상승했다. 이는 높아진 청년실업률 때문이다.

극심한 취업난을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은 신조어다. ‘사망년’은 대학교 3학년때 이미 스펙 준비를 완료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광탈절’은 빠르게 탈락하는 날을 뜻한다. ‘호모인턴스’는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인턴을 맴도는 이들을 말한다. 입학 전부터 취업을 설계해 대학생활을 하는 아키텍(건축을 뜻하는 architecture의 줄임말) 대학생을 비롯해 아예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입시를 포기하거나 대학입시와 동시에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는 극단적 세태를 반영해 ‘공딩족’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문제는 청년실업률이 장기화되고 갈수록 악화되는데 정부의 대책은 헛돌고 있다는 점이다. 긴 안목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데 단기간 보여주기식 성과에 급급하다보니 돈은 돈대로 쓰고 효과는 보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한 예가 박근혜 정부의 ‘고용 디딤돌 프로그램’이다. 청년실업 대책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직업훈련과 인턴십을 제공받고 실제 취업으로 이어지도록 하자는 취지의 이 사업은 수백억 원대의 지원금을 들였지만 실제 고용효과는 저조했다. 취업을 하더라도 저임금 일자리에 불과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공개한 고용노동부의 ‘2016년 고용디딤돌 사업 기업별 세부 지원내역’ 등 자료를 보면, 이 사업에 참여한 청년은 7692명이었지만 정규직으로 채용돼 올해 8월 말까지 ‘고용 유지’ 상태인 인원은 2953명(38.4%)에 불과했다. 전체 인원 중 6984명이 주요 대기업·공공기관 33곳에서 1~3개월 정도 직업훈련을 마쳤고, 5045명(72.2%)이 해당기관이 알선한 협력업체나 관련 중소기업에서 2~6개월가량 인턴으로 일했다. 정부는 디딤돌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에 홍보·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총 143억원을 지원했다. 협력업체에도 130억원의 인턴 지원금이 들어갔다.

이 같은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해 경제의 전반적인 신규 일자리 창출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대다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청년층에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년의 문제를 일자리만의 문제로만 한정짓지 말고 주거·교육·건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 안전망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9월 말 취업준비생 1228명을 대상으로 ‘취업준비 애로사항’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복수응답)를 보면, 이들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취업 준비에 들이는 시간을 일부 포기하고 알바 병행’(44.7%), ‘여행과 취미생활 포기’(44.5%)가 1·2위를 차지했다. ‘입맛·건강을 포기하고 컵밥·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 때운다’가 33.8%나 차지했다. 이밖에 ‘데이트·연애(22.0%)’, ‘건강검진·병원 진료 등 건강관리(11.5%)’도 포기하는 항목으로 꼽혔다.

청년참여연대, 청년기본법 제정 캠페인

청년참여연대를 비롯해 39개 청년단체들은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 10월 1일 고향 내려가는 길목인 서울역에서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캠페인을 열었다. 청년단체들은 “청년의 문제가 일자리·소득의 영역을 넘어서 자산·주거·교육·문화·건강 등 다층적인 영역에서 격차가 벌어져 회복 불가능한 단계로 접어들었다”면서 “종합적인 청년정책 수립을 위한 ‘청년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김해영·박주민·박홍근 의원과 청년단체 연대회의 등이 주최한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전효관 서울시 청년정책 서울혁신기획관은 “청년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 않을 경우 이런 사회는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된 기득권 사회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일자리 제공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을 개선해달라는 청년들의 목소리에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