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대중화 시대 빨라진다

스마트폰, 에어컨, TV셋톱박스, 냉장고, 자동차 등 일상에 적용… 공포의 대상서 공존의 대상으로

구글 딥마인드사가 내놓은 ‘알파고’가 프로 바둑기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전 세계에 인공지능(AI)의 진화를 세상에 알린 지 1년 가까이 지났다. 알파고는 지난해 3월 세계 최정상급 프로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에게 4승1패로 완승을 거두며 충격을 안겼으며,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세계 랭킹 1위 바둑기사인 중국의 커제 9단마저 꺾은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하사미스가 트위터에 “지난 며칠간 알파고의 새 프로토타입 버전이 비공식 온라인 대국에서 우리가 기대한 성능을 보여줬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알파고가 비공식 대국에서 혁신적이고 성공적인 경기를 펼쳤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된다”며 “(새로운 버전의) 알파고가 올해 말에는 (비공식 대국이 아닌) 공식 대국을 하길 기대한다”고 밝혀, 연내 또 한 번의 빅매치가 이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 산업의 발전, 클라우드 등 컴퓨팅 능력의 강화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축에 자리잡게 됐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고, 이를 소화하고 분석할 수 있는 컴퓨팅 능력이 뒷받침되면서 인공지능이 급속히 똑똑해지게 된 것이다. 더 많은 데이터가 더 많은 힘이 되는 만큼, 생태계를 개방해 데이터의 힘을 확보하려는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알파고’가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세상에 각인시킨 뒤, 각국와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인공지능 개발과 적용에 사활을 걸었다. 인공지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에서 피할 수 없는 공존의 대상으로 빠르게 자리 잡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인공지능이 스마트폰, 에어컨, TV셋톱박스, 냉장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할 태세를 갖췄다. 본격적인 인공지능의 대중화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열리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H&A사업본부장 송대현 사장(왼쪽)과 한국영업본부장 최상규 사장(오른쪽)이 16일 서울 여의도동 LG트윈타워에서 열린 ‘휘센 듀얼 에어컨’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휘센 듀얼 에어컨’을 소개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LG전자 ‘휘센 듀얼 에어컨’ 올해 첫 출시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적용된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LG전자는 자사의 모든 전자제품에 인공지능 적용 계획을 발표하고, 첫 타자로 ‘휘센 듀얼 에어컨’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을 적용해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을 파악한 뒤 그곳에만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주는 것이다. LG전자가 독자 개발한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인 ‘딥 씽큐(Deep ThinQTM)’를 적용했다. 에어컨 스스로 사람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인데, 50만장가량의 다양한 실내 모습을 데이터 베이스로 탑재했다. 이 제품은 새로운 장소에 설치되고 나면 일주일 동안 스스로 실내공간 데이터를 확보한다. 실내 모습을 데이터베이스와 비교·분석해 사람이 현재 있는 공간을 찾아내는 식이다. 이 같은 학습을 마치면 사람이 있는 공간에만 집중적으로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고, 거실에 사람이 한 명만 있을 경우에는 2개의 토출구 가운데 사람이 있는 방향의 토출구만 사용해 사용전력을 아낄 수 있게 됐다.

IT기술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경우도 삼성과 LG가 모두 인공지능을 심은 전략 스마트폰을 곧 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은 최근 발표한 ‘2017 첨단기술·미디어·통신산업(TMT)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판매되는 스마트폰 5대 중 1대 이상이 인공지능을 탑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용자인터페이스(UI)에서도 지난 10년을 지배했던 터치 시대가 가고 음성인식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S8’에 인공지능 탑재

삼성전자는 지난해 애플의 ‘시리’를 개발한 미국의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사 ‘비브랩스’를 인수했다. 올해 3~4월 출시할 예정인 차기 스마트폰 ‘갤럭시S8’에 인공지능 서비스 ‘빅스비’를 탑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G전자는 다음달 26일 공개할 ‘G6’에 구글의 인공지능 음성 비서 서비스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하기로 구글 본사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시장에서 출시되는 스마트폰에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되는 것은 G6가 처음이다.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되면 스마트폰 화면이 꺼진 상태에서도 이용자의 목소리만으로 전화 걸기와 일정·날씨 확인, 음악 재생 등이 가능해진다. 스스로 학습도 가능해 이용자가 선호하는 취향과 장소에 맞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사실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기기는 스피커 형태의 개인비서였다. 아마존의 ‘알렉사’가 대표적이다. 알렉사는 음성을 통해 개인비서 역할을 하고 기기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스피커 형태로 개발된 아마존 에코 등 외에도 여러 기기에 탑재해서 사용자의 음성에 따라 음악을 재생하거나 일반적인 질문에 답하고, 알람을 설정하는 등 기능을 제공한다.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많이 활용할수록 기존 대화패턴, 사용되는 단어, 개인적인 취향 등 데이터를 반영해 더욱 똑똑해질 수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는 에코에서만 제공하지 않고, 플랫폼을 개방해 무료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그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지난 5~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박람회인 ‘CES 2017’에서도 전용 부스조차 차리지 않은 알렉사가 최대 승자였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주요 전자업체들이 알렉사를 탑재한 경우가 많았던 덕분이다.

‘알렉사 보이스 서비스(Alexa Voice Service)’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통해 알렉사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여러 기기에서 쓸 수 있도록 지원한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용자 데이터들은 알렉사를 더 똑똑한 비서가 되도록 돕는다. ‘알렉사 스킬 키트(Alexa Skills Kit)’는 가전, 자동차,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관련 API와 툴, 문서, 코드샘플 등을 제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알렉사를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번 CES에서만 보더라도 화웨이는 스마트폰인 ‘메이트9’에, 유비테크는 자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링스’에 알렉사를 적용했다. LG전자는 스마트 인스타뷰 냉장고에, 월풀은 세탁기·건조기·냉장고·오븐 등에, 삼성전자는 로봇청소기에 알렉사를 도입했다. 포드가 싱크3 시스템에 알렉사를 처음 적용한 이후 현대자동차, 폴크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도 알렉사와 함께하고 있다. 자동차에 이식된 알렉사는 운전자가 내린 음성명령에 따라 엔진 시동을 걸거나 끄고, 문을 잠그거나 푸는 일, 주행 중인 도로의 위치와 집까지의 주행시간 등을 알려주는 용도로 쓰인다.

국내에서는 SK텔레콤이 지난해 8월 에코와 비슷한 음성인식 개인비서 ‘누구’를 출시한 뒤, 현재까지 4만대 이상이 팔려나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KT는 17일 음성인식이 가능한 인터넷TV(IPTV) 셋톱박스 ‘기가 지니’를 선보였다. TV 리모컨의 기능을 대부분 음성인식으로 대체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용자가 “지니야”라고 부르면 기가 지니가 깨어나 이용자가 원하는 올레TV의 드라마나 영화, KT 지니뮤직의 음악을 틀어준다. 기존의 스피커형 홈 비서 서비스와 유사하게 일정관리, 날씨 확인, 음식 배달 등의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기가 지니는 가정의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통합 제어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도어록, 홈캠, 가스밸브 등 11가지 기기와 연동돼 TV를 보다가 방문객에게 현관문을 열어주거나 가스밸브를 잠그는 것이 가능하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올해를 ‘인공지능 퍼스트’의 해로 전망했다. 한 조사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2025년이면 전 세계 인공지능 산업의 연간 매출이 약 4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 시장도 올해 6조4000억원에서 2020년 11조1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음성비서 서비스를 선봉으로 제품, 메신저, 커머스, 콘텐츠 이용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며 “사업자 간에 음성비스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 구축 전쟁이 본격화되고, 개인화·예측·셀프라는 새로운 서비스 패러다임이 주목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산업부 이윤주기자 run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