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하는 왈가닥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1970년대는 스웨덴 소녀인 삐삐가, 1980년대는 하니였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자두다. ‘안녕?자두야!!!’는 1997년 순정만화 잡지 ‘파티’로 데뷔했다. 그러니까 나온 지 벌써 19년째다. 주인공 ‘최자두’는 원작자 이빈의 자전적 캐릭터다. 1970년대 후반 작가가 겪은 성장기의 추억을 토대로 탄생했다. 자두네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두 명의 동생이 있다. 현재까지 23권의 단행본이 나왔고, 100만부 이상 팔렸다. 2011년부터는 TV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돼 투니버스에서 ‘시즌3’가 방영되고 있다. 올 어린이날을 맞아 극장판이 나왔다.
<극장판 안녕 자두야>는 명작동화 속으로 빨려들어간 자두의 이야기다. 어린이날을 맞아 자두네 가족은 놀이공원 ‘꿈의 랜드’로 놀러간다. 재미없는 놀이기구라며 구시렁대던 자두는 화장실을 찾다가 우연히 2층 기념품판매장에 들어간다. 자두는 책꽂이에서 <신데렐라> 동화책을 꺼내드는데, 책을 펼치는 순간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돌연 ‘자두렐라’가 된 자두는 새엄마와 이복언니들로부터 구박을 당한다. 왕자가 연 무도회에 초청된 자두렐라는 천방지축 모험을 벌인다. 신데렐라 책속에서 빠져나온 자두는 현실의 가족을 다시 만난다. 그때 동생들이 ‘헨델과 그레텔’ 동화책을 펴자 가족이 모두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자두와 두 명의 동생은 마녀에게 강금당한다. 자두는 탈출하기 위해 마녀와 싸운다. 이제 이야기는 ‘자두와 그레텔’이 됐다.
<극장판 안녕 자두야>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분위기를 많이 풍긴다. 자두는 기념품판매장에서 토끼인형을 쓴 듯한 판매원 아저씨를 만난다. 자두는 “책을 사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토끼아저씨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며 답한다. “여기선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말이다. 그냥 구경만 하게 되지는 않을 거다.”
아저씨는 알고 있었다. 자두가 책에 빨려들어가면서 스토리를 소비하는 소비자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른바 ‘스토리슈머(storysumer)’다. 스토리슈머란 이야기(Stor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이야기를 찾는 소비자’라는 뜻이다. 스토리를 이용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을 ‘스토리슈머 마케팅’이라고 한다.
스토리슈머 마케팅은 제품에 이야기를 덧씌워 소비자가 상품을 찾도록 한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본 중국인 관광객을 위해 인천 월미도에서 연 ‘치맥파티’는 스토리슈머 마케팅의 전형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뜨자 서울시와 농림축산식품부는 방한한 중국인 8000명에게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먹었던 삼계탕을 제공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먹은 칼국수’, ‘박지성이 들른 식당’ 등도 스토리슈머를 겨냥한 마케팅이다.
스토리슈머는 소비자들이 상품에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입힌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2002년 덴마크 보험회사인 탑덴마크 보험회사는 ‘살면서 가장 운이 좋았던 경험’을 공유하는 캠페인을 실시해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장기적인 불황과 치열한 경쟁 속에 지쳐 있는 소비자들은 따뜻한 이야기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제대로 먹힌 스토리슈머 마케팅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스토리슈머 마케팅은 개념이 점차 확장돼 드라마 형식으로 만든 광고, 상품과 관련된 스토리를 강조하는 마케팅까지 포괄하게 됐다. 2014년 월드컵을 앞두고 외계인과 지구대표팀이 축구대결을 벌이는 삼성전자의 ‘갤럭시 11’ 광고나 초코파이의 ‘정’ 마케팅을 생각하면 쉽다. 시중에는 시계, 인형, 추잉검, 가방, 유모차 등 자두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이 많이 나와 있다. 어린 소비자들은 어른 소비자보다 이야기를 더 잘 소비하는 특별한 ‘스토리슈머’인 까닭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