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10년 준비하는 페이스북

모바일 메신저 ‘와츠앱’, 가상현실(VR) ‘오큘러스’, 사진·동영상 SNS ‘인스타그램’ 잇달아 인수

4월 12~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페이스북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인 ‘F8’ 행사가 열렸다. 애플이 개발자 콘퍼런스를 통해 회사의 향후 비전과 신제품 및 신기술 등을 공개한 이래 개발자 콘퍼런스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F8 콘퍼런스’에 개발자 2600여명 몰려
페이스북도 2007년을 시작으로 개발자 콘퍼런스를 개최해 오고 있다. 2014년 F8의 경우 2011년 이후 3년 만에 열리기도 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32)는 지난해야 비로소 “F8은 연례행사”라고 선언했다.

올해 F8은 어느 때보다도 ‘성대하게’ 치러졌다. 개발자 콘퍼런스에 참석하려면 595달러(68만여원)의 입장료를 내야함에도 2600여명의 개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4분기에 매출 58억4000만 달러(6조7400억원), 순이익 15억6000만 달러(1조8000억원)의 실적을 냈다. 매출은 전년도 동기 대비 52% 늘었고, 순이익은 무려 124%나 증가했다. 두둑해진 지갑 덕분인지 저커버그는 F8에 참석한 개발자 전원에게 삼성전자의 ‘갤럭시S6’와 호환 가상현실 기기인 ‘기어 VR’를 선물로 줬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수명이 10년을 넘기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20년을 넘기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국내에서도 20년을 넘긴 인터넷 기업은 1995년 설립된 ‘다음’ 정도다. 다음마저도 지난해 카카오에 인수되면서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2004년 대학생 커뮤니티로 시작한 페이스북은 2014년에 10주년을 달성했고, 또 다른 10년을 내다보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왼쪽)가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과<br />올해 2월 스페인에서 열린 갤럭시S7 공개 행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왼쪽)가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과
올해 2월 스페인에서 열린 갤럭시S7 공개 행사에서 악수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20년을 내다보는 페이스북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페이스북이 2012년 5월 뉴욕 증시에 상장될 때만 해도 페이스북의 미래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페이스북 사용자는 꾸준히 늘고 있었지만, 뚜렷한 수익모델이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최대 100조원 수준으로 평가됐던 기업가치에 대해서도 “거품이 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후 페이스북의 기업가치는 300조원을, 주가도 100달러를 넘어섰다. 상장 초기 ‘거품’으로 지적되던 수준보다도 3배 이상 기업이 성장한 셈이다. 재계에서 ‘애송이’로 평가받던 저커버그는 이제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61)의 뒤를 잇는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IT 리더로 자리잡았다.

페이스북의 성공요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쏟아진다. 확실한 것은 저커버그는 ‘돈을 쓸 줄 아는’ CEO라는 점이다. 저커버그는 늘어나는 기업가치에 기대고만 있지 않았다. 2014년 당시 세계 최대 모바일 메신저인 ‘와츠앱’ 인수에 190억 달러(21조8000여억원)를 쏟아부었다. 당시 와츠앱 기업가치(150억 달러)보다 4조원 넘게 지출한 ‘통큰 투자’였다. 미국 언론은 이를 두고 ‘오버 페이(과다 지출)’라고 지적했지만, 당시 5억명 미만이던 와츠앱 사용자는 현재 10억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저커버그는 올 1월 와츠앱 사용료(연간 1달러)도 폐지하면서 세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같은 해 페이스북은 가상현실(VR) 기기 개발업체인 미국의 ‘오큘러스’를 23억 달러(2조6400억원)에 인수하며 다시 한 번 ‘큰손’의 위용을 자랑했다. 오큘러스 인수 역시 오버 페이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2년이 지난 현재 VR는 정체된 모바일 기기 시장의 최대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구글과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VR에 사활을 건 투자를 하고 있고, 올해 세계 최대 이동통신전시회인 ‘MWC 2016’에서도 온통 VR가 최대 화제였다. 오큘러스는 VR 업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기어 VR’도 오큘러스 제품이다.

이보다 앞선 2012년 사진·동영상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인수 역시 ‘신의 한 수’로 꼽힌다. 페이스북의 최대 단점은 PC 웹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라는 점이었다. 모바일에 특화되지 못한 탓에 서비스 확대에 한계가 있으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저커버그는 모바일 기반 SNS인 인스타그램을 10억 달러(1조1500억원)에 인수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과 동영상에 특화된 서비스로 전 세계 10~20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대박’을 냈다. 4억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인스타그램은 자체 기업가치만 현재 40조원에 달해 이미 트위터 기업가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인스타그램의 노하우를 활용해 페이스북에 사진과 동영상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제 페이스북의 동영상 서비스의 경우 막대한 광고수익을 창출해 지난해 4분기 깜짝 실적을 주도했다.

올해 F8에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향후 10년 로드맵을 공개했다. 로드맵은 그간 인수해온 기업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짜여졌다. 과감한 투자로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저커버그는 ‘돈을 쓸 줄 아는’ CEO
저커버그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향후 3년간 페이스북 및 페이스북 플랫폼과 관련된 생태계 지원에 집중한다. 이후 5년째까지는 메신저, 왓츠앱, 인스타그램과 같은 차세대 서비스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한다. 이후 10년째까지는 인공지능, VR 등 사람들이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

미래를 설계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서비스들도 계속 선보이고 있다. 앞선 준비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다. 저커버그는 올해 F8에서 곧 선보일 서비스로 ‘메신저 봇(Messenger Bot)’을 공개했다. 이 서비스는 ‘페이스북 메신저’에 추가될 하나의 기능이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기업들이 고객 응대나 마케팅, 홍보 등의 용도로 쓸 수 있는 플랫폼으로 쓰도록 밀고 있다. 여기에 ‘봇’ 기능이 추가되는 것이다.

‘봇’은 쉽게는 일종의 ‘자동응대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은 소비자와 소통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데, 봇이 그 소통을 대신해 비용과 시간을 절감토록 하는 게 봇 개발의 목적이다.

봇 서비스 개발에 필수적인 게 인공지능(AI)이다. AI가 높은 봇일수록 고차원적인 응대가 가능해진다. 저커버그가 10년 로드맵에서 인공지능을 언급한 이유다. 물론 AI의 기술이 아직까지는 한계가 있고, 다양한 소비자들의 요구와 실시간 발생하는 모든 변수에 봇이 대응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는 제한적인 용도로만 봇이 활용되고 있지만, ‘알파고’ 사례에서 보여지듯 AI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덕분에 봇이 향후 전도유망한 서비스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저커버그는 이날 선보인 봇이 날씨나 교통상황 등에 대한 내용에서부터 영수증이나 배송 안내, 실시간 자동 상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예컨대 소비자가 기상청 페이스북 채팅창에 ‘오늘 날씨는’이라고 물어보면 자동으로 봇이 ‘맑음, 기온 20도’ 등과 같은 방식으로 자동응답해주는 방식이다. 저커버그는 “CNN 페이스북에서는 채팅창에 ‘주요 기사’라고 입력하면 실시간으로 주요 기사들을 전송해준다”고 설명했다. “꽃 배달을 주문할 때도 메신저로 주문과 발송할 메시지 작성까지 가능하다”고 저커버그는 덧붙였다.

저커버그는 360도 카메라인 ‘서라운드’도 공개했다. 이 제품은 360도 영상을 3차원 입체영상(3D)으로 촬영할 수 있다. 17개의 카메라로부터 녹화한 영상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저장한다. VR와 함께 페이스북 동영상 서비스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페이스북은 “360도 동영상 콘텐츠 생태계의 발전과 혁신이 보다 빠르게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