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진 임시조치, 악법인가 진보인가

정부 “사생활 침해 방지”·시민단체 “표현의 자유 침해”… 정보 차단 놓고 대립

인터넷에 게재된 특정 정보를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차단하는 ‘임시조치’를 놓고 정부와 시민단체 간 의견 대립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관련법 개정을 통해 임시조치의 절차 등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려고 나선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임시조치는 인터넷에 게재된 정보 때문에 특정인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현행 제도에서는 명예훼손 등의 피해를 본 당사자가 정보통신제공사업자에게 피해사실을 알리면 사업자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최장 30일까지 임시로 차단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정보’는 인터넷에 게재된 글과 그림, 사진, 노래 등 내용을 담고 있는 모든 게시물을 지칭한다. 정보통신제공사업자는 통상 게시판을 운영하는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시조치의 필요성은 대부분이 인정한다. 인터넷 상의 그릇된 정보로 인해 개인이 보는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을 비방할 목적으로 작성한 거짓 게시물이나 사생활과 관련된 정보 등이 온라인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돼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임시조치를 현행보다 다듬는 게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현행 임시조치 관련 조항이 명확지 않아 포털 사업자가 자의적으로 임시조치를 남발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임시조치 필요성은 대부분이 인정
임시조치를 규정하는 법은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9일자로 임시조치 개선안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개정안에서는 임시조치의 절차와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임시조치 과정의 이의제기 등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한 여러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오픈넷 등 시민단체들은 “개정안이 임시조치를 너무 쉽게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44조 2항은 현재 ‘공개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 요청이 있으면 사업자가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임시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개정안에서 이 조항을 ‘공개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자’의 요청이 있으면 ‘임시조치해야 한다’고 고쳤다. 개정안에서 사업자가 임의적으로 정보를 삭제하지 못하도록 조항을 바꾼 것은 나름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된다.

문제는 임시조치 자체를 너무 쉽게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점이다. 현행 조항에서는 실제로 권리가 침해됐는지 여부가 삭제 및 임시조치에 중요한 단서조항이 된다. 포털 사업자들은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애매한 경우 법원 판결문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보고 결정한다. 하지만 개정안에서는 권리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만 해도 무조건 임시조치부터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픈넷은 “불법정보만을 차단하겠다는 정보통신망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조항”이라며 “언론·출판의 자유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헌법 제21조 제4항에도 반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요청이 있으면 일단 ‘무조건’ 임시조치하도록 한 것도 과도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정 부분 사업자에게 자율권을 부여해 ‘임시조치할 수 있다’ 정도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시조치가 형평성을 가지려면 정보 작성자의 반론권도 충실히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개정안은 임시조치에 대해 정보 작성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보 작성자 반론권도 보장해야
개정안에서는 자신이 작성한 정보가 임시조치를 당한 것이 부당하다고 여길 경우 ‘온라인명예훼손분쟁조정위원회’(향후 설립 예정)에 해당 정보 복원 등과 관련해 이의신청을 하도록 돼 있다. 이의신청을 안 하면 임시조치 기간이 끝나는 즉시 정보가 삭제된다.

위원회에서는 해당 정보가 권리를 침해했는지 여부 및 임시조치가 합당한지 여부 등을 판단해 정보 작성자에게 조정안을 제시한다. 조정안이 마음에 안 들 경우 정보 작성자는 15일 이내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조정안을 받아들이는 걸로 간주해 정보가 삭제된다. 정보 복원을 하려면 결국 법정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구조다.

오픈넷은 “현행 임시조치에 대한 이의제기율도 5% 수준으로 매우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보 복원을 위해 소송까지 제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이의제기를 원천적으로 무산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일단 임시조치를 당하면 정보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해 정보 작성자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높다는 것이다.

개정안에서는 사업자가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한 임시조치 등을 이행했을 경우 해당 정보 게시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도록 하고 있다. 사업자들에게 “책임지기 싫으면 적극적으로 임시조치를 하라”는 뜻과 같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임시조치에 항의하는 정보 작성자에게 좋은 ‘변명거리’도 생기는 셈이다.

이번 개정안이 중요한 이유는 향후 ‘잊혀질 권리’ 도입 문제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잊혀질 권리 역시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 삭제를 통해 권리를 지키는 것과 남용될 경우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개정안을 통해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 및 개인의 권익 보호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합의점이 일정 부분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