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한국에선 창의적 협업이 안 되는 까닭

미국과 유럽에서는 크라우드소싱 및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인터넷 기반의 생산적인 협업체제가 활발하다. 협업은 그 특성상 그 사회의 사회·문화적 기반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렇게 보면 미국과 유럽의 협업체제는 성공이건 실패건 그 결과를 공유하는 문화를 바탕에 깔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높은 수준의 협업을 보다 활성화시키려면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개개인의 창의적 시도가 활발해야 함은 물론이고, 다수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즉, 사회적으로 창의문화와 신뢰문화를 갖추는 게 활성화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협업을 통해 만들어지며, 또 협업을 통해 유지·발전되는 것이 바로 플랫폼과 그 플랫폼에 기반한 생태계다.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만한 창의적인 플랫폼을 발의하는 주체는 대부분 벤처기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대기업이 많은 자본과 탁월한 인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기업 특유의 관료주의적 문화 때문에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창의적인 플랫폼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추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구글, 애플과 같은 혁신적인 기업조차 벤처기업을 인수함으로써 그런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

생산적인 협업체제가 발전하기 위해선 창의성과 신뢰에 바탕을 둔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IT업체가 밀집해 있는 서울 구로디지털산업단지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지만 국내의 경우 벤처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플랫폼을 만들어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사례 또한 희박한 실정이다.

물론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의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때 삼성전자는 ‘바다’라는 모바일 운영체제로 제품을 만들었지만 현재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이후 삼성전자는 인텔, 리눅스재단 등과 함께 ‘타이젠’이라는 모바일 운영체제를 개발해 오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HP가 포기한 웹OS의 소스코드와 개발인력, 관련 문서 등을 2013년 2월 인수하고, 스마트TV에 관련 기술을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정도다.

그밖으로는 네이버의 라인, 카카오의 카카오톡 등의 사례가 있는데, 네이버 역시 이미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이고 카카오는 상당한 자본을 가진 한게임의 창업자가 만든 기업이다.

이처럼 한국은 여전히 해외의 지식강국들과 달리 크라우드소싱, 크라우드펀딩, 오픈소스, 플랫폼 및 생태계 조성 등의 여러 분야에서 생산적인 협업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산업계에는 현상에 대한 단순한 지적을 넘어서 그것의 본질적인 이유를 성찰하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문제는 문화다. 더 나은 지식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똑똑한 개인들이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도전하는 사람들을 신뢰하며 투자할 수 있는 문화 또한 갖춰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패를 인내하고 다시금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는 집단주의 문화, 불안 및 두려움의 문화로 사람들을 창의적인 협업이 아닌 소비와 엔터테인먼트로 내몰고 있다.

IT 칼럼 구독

그러한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 우리가 과연 지식사회로 도약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단기적 처방에 급급하거나 내일로 문제를 미루지 말고 이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든 풀어내야 할 시점이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