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칼럼]규제 중독 국가와 창조 강요 사회

2013년 취임한 박근혜 정부는 경제공약 모델로 ‘창조경제’를 제시했다. 일단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 창조경제란 창조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와 시장을 창출하고, 세계와 함께 하는 창조경제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며, 창의성이 존중되고 마음껏 발현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창조경제는 안녕하신가.

먼저 창조경제의 주역이 되어야 할 정보통신산업은 여전히 불편하다. 정부는 게임 중독이 사회적 문제라 강조하며 새로운 규제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나, 그보다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는 정부의 규제 중독은 새 정부 들어서도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 인터넷을 가장 불편한 인터넷 중 하나로 만든 주범인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강제 제도의 개혁은 오픈넷을 비롯한 시민단체의 지적과 인터넷 기업들의 불만 토로에도 불구하고 난항 중이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2013년 12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창조경제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인터넷에서 사소한 결제 하나 하려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플러그인을 설치해야 하고, 공인인증서가 특정 운영체제 하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선택권도 제한하는 이 보안 시스템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의 디지털 라이프에 체증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구체제가 존속하는 가운데, 새로운 규제 역시 싹을 틔우고 있다.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규제를 사회적 검증 없이 양산하는 인터넷 규제 트렌드는 현 정부에서도 이어진다. 또 다른 갈라파고스 규제로 비판을 받아온 공인전자주소 ‘샵메일’ 역시 계속해서 추진된다.

관련 업체인 한국정보인증은 2013년 11월부터 샵메일 홍보에 본격 돌입해, 서울 서대문구·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전자문서유통센터 등 기관에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웹사이트에서 예의 공인인증서로 본인 인증을 거친 후에야 이용이 가능한 이 서비스는 한국 인터넷 규제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합리적 규제가 진정한 IT 강국의 첫걸음이란 걸 감안할 때, 이런 실정은 첫술부터 불안하다.

나아가 ‘규제 중독’만이 문제가 아니다. 창조의 미래 역시 밝지만은 않다. 2013년 12월 20일 창조경제 주관 부처인 미래부는 창조경제를 견인할 ‘미래형’ 인재 양성의 본격적 추진을 위해 관련 부서를 실에서 국으로 승격시키고, ‘과학기술과 ICT 융합형 인재양성’을 적극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2010년 아이폰 쇼크 이후 한국 사회 내에 줄곧 회자됐던 질문이 “왜 우리에겐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인재가 없느냐”였단 걸 감안했을 때, 이런 정책적 자원 배분은 예상된 일이다. 또한 정부의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비 몰아주기 행적 등을 생각하면 이렇듯 정의조차 애매한 미래형 인재 양성의 적극적 추진이 이뤄질 방식 역시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는 국가가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애초부터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는 정부나 부모의 강요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 청년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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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자신들이 미치고 싶은 걸 탐색할 수 있는 자유와, 열정의 대상에 몰입할 수 있는 시기,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미래형 인재의 핵심인 스스로의 개척 정신을 강조하는 기업가 정신을 공장에서 제품 만들 듯 제조할 수 있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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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창조경제를 원한다면 멀리 있는 실리콘밸리를 어설프게 모방하는 것에 앞서서 가까이 있는 우리 현실을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창조경제를 원한다면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사소한 규제라도 이용자를 불편하게 한다면 개정하고, 강제가 아니라 자율을 통해서 개인이 자신의 삶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돕는다면, 그때엔 창조경제의 달성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재연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