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한국 원양어업 ‘망신살’ 뻗치다

EU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한국 지정… 불법어업 경고 무시하다 ‘괘씸죄’ 걸려

“관련 법률이 통과된 이후에도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우리나라의 어선들이 지속적으로 불법 원양어업을 벌인 것이 원인 중 하나다.”
_해양수산부 윤진숙 장관

“어선위치추적장치(VMS)와 조업감시센터 가동을 6개월 미룬 것을 문제시했다.”
_해양수산부 공식 브리핑

한국 원양어업과 외교가 국제망신을 당했다. 유럽연합(EU)이 11월 26일 한국을 예비 불법(IUU)어업국으로 지정했다. 국제사회가 한국의 불법어업에 대해 본격적으로 성토한 지 3년 만이다. 유럽은 2010년께부터 한국 원양업계의 불법어업에 대해 경고를 보내왔다.

EU 다마나키 해양수산 집행위원은 브리핑에서 한국과 함께 가나, 퀴라소 등 3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전날까지만 해도 해수부는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지난 10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해양수산부 국정감사에서 윤진숙 장관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년까지 한국이 유럽연합의 요구사항을 개선하지 못하면 불법어업국으로 공식 지정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모든 수산물과 수산가공품의 수출이 금지된다. 또 한국 국적 어선은 EU 내 항구를 이용하지 못한다.

국제무대서 한국 제 목소리 내기 힘들어
외교가와 수산업계는 EU의 이번 결정에 대해 “망신살이 뻗쳤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들겠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EU가 지정한 국가들의 면면을 보자. EU는 지난해 8개국, 올해 3개국 등 11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지정된 8개국은 벨리즈, 캄보디아, 피지, 기니, 파나마, 스리랑카, 토고, 바누아투 등이다. 올해는 한국, 가나, 퀴라소 등이다. 대부분이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저개발국가다. 퀴라소는 카리브해에 있는 네덜란드령의 섬나라다. 경제규모가 한국과 비슷한 나라는 아예 없다.

해수부는 “예비 단계일 뿐이어서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향후 한국 원양수산업계의 목소리가 국제무대에서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불법어업을 저지르는 나라가 국제회의에서 정당성을 갖고 의견을 개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중국의 원근해 불법어업에 대해서도 비난할 명분이 없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시각으로 보면 대만이나 중국의 불법어업이 우리보다 심한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비난하겠느냐”며 “국제기구 유치나 국제기준 마련 때 한국이 배제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이 왜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됐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분석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해수부 공식 브리핑에서는 어선위치추적장치와 조업감시센터가 원인으로 제시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유럽연합은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한 주된 이유로 즉각적으로 어선위치추적장치를 어선에 달지 않은 점과 조업감시센터 가동을 연기한 점을 문제시 삼았다”고 말했다.

해수부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은 유럽연합측의 요구를 충분히 이행했다. 유럽의 당초 요구는 불법어업 행위에 대한 징벌 강화였다. 당초 법은 불법어업을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과태료 500만원을 물렸다.

한국은 올 1월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과태료를 2000만원으로 올리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유럽연합이 “통제력이 약하다”며 거부했다. 4월 해수부는 재개정안을 마련했다.

재개정안은 ‘3년 이하의 징역 도는 불법 수산물 가액의 3배 이하의 벌금’으로 징벌을 강화했다. 이 법은 7월 국회에서 긴급 통과됐다. 그런데 이후 유럽연합이 어선위치추적장치와 조업감시센터 문제를 들고 나왔다.

재개정안을 보면 어선위치추적장치를 의무적으로 원양어선에 다는 내용은 법 시행 이후 6개월 유예기간을 뒀다. 2014년 1월 법 시행이니까 7월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어선위치추적장치로부터 송신된 정보를 가지고 선박들을 감시하는 조업감시센터도 내년부터 운영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통상 다른 법들도 시행에는 업계가 대응할 시간을 주기 위해 6개월 정도 유예기간을 주는 것 아니냐”며 “그간 관례를 보나, 예산 마련 시점을 보나 6개월 유예는 당연하다고 봤는데 유럽연합이 별안간 이 점을 문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징벌 강화를 요구했고, 그 점을 이행하자 어선위치추적장치로 꼬투리를 삼았다는 얘기다. 해양수산개발원의 한 관계자는 “유럽연합의 움직임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며 “통상적인 측면에서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와 정부는 특히 스페인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한국 원양업계는 서아프리카로 활발히 진출했는데 스페인이 이를 견제했다는 것이다. 윤진숙 장관도 11월 26일 국회 답변에서 “스페인이 우리나라 업체들과 함께 아프리카 서안을 공유하고 있는데, EU 수산총국에서는 스페인의 입김이 강하다. (EU가 억지를 부린다는) 그런 감도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 오판 땐 최악의 상황 올 수도
해수부의 이 같은 시각에 대해 “해수부가 정세판단을 잘못한 책임을 감추기 위한 변명이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린피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유럽연합이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한 이면에는 우리 어선들의 계속되는 불법어업의 영향이 컸다. 10월에도 한국 국적의 선박이 시에라리온에서 불법어업을 한 혐의로 유럽연합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국제환경운동단체인 EJF는 “한국이 불법어업에 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EU로부터 무역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6월에는 유럽연합 녹색위원회가 “유럽연합은 서아프리카에서 반복적으로 불법조업, 인권침해를 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을 블랙리스트에 반드시 등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원양어선의 위치추적장치 설치를 6개월 연기한 것을 문제시한 것은 명분일 뿐 실제는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말이다. 또 서아프리카 해역의 불법조업에 대해 유럽연합의 관심이 우리 측 생각보다 훨씬 더 민감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아프리가 불법어업으로 어자원이 줄어들자 이를 식량으로 하는 아프리카 연안국에 기아가 발생했고, 난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이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장관도 이를 모르고 있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관련 법률이 통과된 이후에도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우리나라의 어선들이 지속적으로 불법 원양어업을 한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인정했다. 때문에 해수부가 우리 원양업계의 불법어업 문제를 공식 브리핑에서 거론하지 않은 것은 불법어업 관리 실패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문제는 해수부가 어선위치추적장치에만 매달리다보면 1년 뒤 진짜로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수부 측은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이후 개선사항이 있으면 불법어업국 지정까지는 가지 않는다”며 “내년 7월이면 어선위치추적장치가 모든 원양어선에 달리고, 감시센터가 가동되므로 예비국 지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린피스 박지현 활동가는 “한국이 불법조업 근절을 위한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안만 통과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해수부의 말을 믿었다”며 “결과적으로 보면 해수부가 뭔가를 크게 오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