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비포 미드나잇 - 쉽게 결별하지 않는 이유 ‘보유효과’

“더는 당신 사랑 안 해.”

셀린느(줄리 델피 분)가 뛰쳐나간다. 한동안 텅빈 호텔방을 돌아다보는 제시(에단 호크 분). 둘만의 아름다운 밤을 위해 준비했던 와인과 포근한 침대는 주인을 잃은 채 나뒹굴고 있다.

잠시 뒤 제시는 야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는 셀린느를 찾아가 장난을 건다. 셀린느는 정색한다. 제시가 말한다. “당신이야말로 동화 속에서 살고 있군. 난 풀려고 애쓰고 있어.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면 이게 맞아. 완벽하진 않지만 실제 삶이니까.”

어느 낯선 이국의 여행지에서 단번에 마음이 통하는 멋진 이성을 만난다면? <비포 선라이즈>(1995) 개봉 9년 뒤인 2004년 <비포 선 셋>이 나왔고, 또 9년이 흐른 2013년 <비포 미드나잇>이 개봉됐다. 18년의 세월을 따라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도 같이 늙어간다.

미국 청년과 프랑스 숙녀는 이제 한 가정을 이뤘다. 사랑은 더 이상 ‘로맨틱’하지 않다. ‘리얼’이다. <비포 선 셋>에서 유부남이었던 제시는 이혼을 하고 셀린느와 재혼한다. 제시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헨리는 그리스에서 휴가를 마치고 미국으로 되돌아간다.

제시가 아들 헨리를 자꾸 마음에 걸려 하자 셀린느는 불편하다. 제시와 셀린느 사이에도 쌍둥이 딸이 있다. 소설가의 감성에 젖은 제시와 소신 있는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셀린느는 때때로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던 두 사람. 마침내 호텔에서 충돌한다. 말싸움은 “다른 사람과 잔 적은 없느냐”로 이어진다.

두 사람은 다시 보지 않을 듯 싸우지만 결국은 한 테이블에 앉는다. 영화는 셀린느가 “환상적인 밤이 기다리고 있겠네”라고 화해를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이들은 왜 대화를 하기로 했을까.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유효과’(Endowment effect)로 설명된다. 보유효과란 어떤 사물을 소유하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물에 대한 애착이 생겨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장 쉬운 예가 주택 거래다. 통상 집을 파는 사람은 집 가격을 높게 부르고 사려는 사람은 낮게 부른다. 그래서 매매 가격은 집주인 요구 가격인 호가보다 낮게 형성된다.

크네시와 신덴은 이런 심리를 머그컵과 초콜릿으로 실험해봤다. A그룹에게 머그컵을 먼저 주고 가격이 비슷한 초콜릿과 바꿔주겠다고 했다. B그룹은 초콜릿을 먼저 주고 머그컵을 바꿔주겠다고 했다. C그룹은 머그컵과 초콜릿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A그룹의 89%가 머그컵을 그대로 갖겠다고 했다. B그룹은 90%가 초콜릿을 그대로 선택했다. C그룹은 거의 반반이었다. 실제 가치와 보유하면서 높아진 심리적 가치 사이에는 정서적 자본이 형성돼 있다.

실제 5달러짜리 머그컵을 나눠준 뒤 “얼마면 되팔겠느냐”고 물었을 때 머그컵 소유자들은 평균 9달러를 불렀다는 실험도 있다. 차액 4달러가 정서적 자본이다.

미분양 주택을 2년 동안 써본 뒤 구매를 결정하라는 ‘애프터 리빙’은 보유효과를 기대하고 만든 마케팅 방법이다. 과거 페르시아 카펫 상인들이 많이 썼던 상술이라고 한다. 3자가 보기에 제시는 찌질해 보이고, 셀린느는 드세게 보인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서적으로 서로를 소유해왔던 제시와 셀린느에게 서로서로는 3자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가 형성돼 있다. 그것이 쉽게 결별을 선언하지 않는 이유다.

<비포 선라이즈>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 <비포 선셋>은 프랑스 수도 파리가 무대였다. <비포 미드나잇>은 그리스 남부의 펠레폰네소스다. 전작과 같은 로맨틱 도시가 아닌 역사적인 유적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속 경제

아마도 그리스신화 이래 영원히 반복돼온 삶과 사랑에 대한 본질을 꼬집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는지. 사랑이 지나면 현실이 오지만, 그 또한 지나보면 한순간이라는 극중 한 그리스 노인의 충고는 그래서 여운을 남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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