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생발전 모델, ‘사회적 기업’

SK 최태원 회장, 사회적 기업 설립·지원 나서

19대 국회의 화두 중 하나는 ‘경제 민주화’다. 정치권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과 공존을 주장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요건 강화’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방안’ 등을 발표하며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한다’ 등의 논리로 맞서고 있다. 6월 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의 정책토론회를 열고 경제 민주화를 성토했다. 재계의 분위기를 대변한 것이다. 정치권과 재계가 경제 민주화를 두고 가파르게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MRO 사업 수익 일부 사회환원 계획
이런 분위기 속에서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Co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적극 실천에 나서고 있다. 최 회장은 4월 26일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상하이포럼에 참석해 “SK그룹은 사회적 가치를 제고할 대안으로 사회적기업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면서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가치와 기업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우수 인재들이 이 시장에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SK그룹과 한국경영학회가 공동 주최한 ‘2012년 사회적기업 포럼-공생발전을 위한 협력적 기업가 정신’에서 사회적기업가 육성방안에 대해 참석 패널과 토론하고 있다. | SK제공

최 회장의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은 여러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SK그룹은 ‘행복도시락’ ‘행복한학교’ ‘행복한도서관’ 등 70여개의 사회적기업에 대해 설립과 지원을 하고 있다. 행복도시락은 결식아동과 저소득층 노인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고 있는데, 취약계층 중에서 조리원과 배달원을 고용하는 방식이다. 일자리 창출과 함께 약자에 대한 돌봄을 함께 하는 셈이다.

2008년 설립된 행복도시락은 지금까지 결식아동 6000여명에게 도시락 20만개를 제공했다. 2010년 1월 서울시와 공동으로 설립한 행복한학교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교사 자격증 소지자 중 일자리가 없는 이를 고용해 초등학교 수업 이후 양질의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취약계층의 학생을 지원하는 효과가 입증되면서 부산, 대구, 울산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사회적 비판이 거셌던 대기업의 MRO(소모성자재구매대행) 사업도 사회적기업으로 바꿨다. SK그룹의 MRO사업체였던 ‘MRO코리아’는 지난해 최 회장의 지시로 사회적기업 ‘행복나래’로 탈바꿈했다. 사회적기업 우선 구매액을 확대하고, 수익금의 3분의 2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중소 MRO업체와 진정으로 공생발전하기 위해서 MRO사업을 사회적기업으로 바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법무부와 손을 잡고 출소자의 자립과 사회복귀를 돕는 ‘행복한뉴라이프재단’의 설립, 새터민과 저소득층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메자닌아이팩’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기업에 대한 설립과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SK의 사회적기업 설립과 지원으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6000여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2013년까지 4000여개의 일자리를 더 만들 예정이다. SK는 이를 위해 5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한 상태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은 수년 전부터 단순기부 형태의 전통적인 사회공헌 활동으로는 사회적인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봤다”면서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사회적기업의 설립과 지원,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최태원식 CSR 활동의 핵심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12월 SK 해피뮤지컬스쿨 교육생들이 1년간의 뮤지컬 전문 배우 교육을 마친 뒤 졸업공연을 하고 있다. | SK제공

사회책임경영 전문가 양성 돕기로
학계와 재계,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은 사회적기업이 늘어나기 위해서 인재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분석한다. 4월 말 SK와 한국경영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공생발전을 위한 협력적 기업가 정신’이라는 주제의 포럼에서 인재 확보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최 회장도 이 포럼에 참석해 사회적기업가 양성을 공언했다. 그 결과물이 국내 최초의 ‘사회적기업 MBA’다.

5월 30일 SK그룹과 KAIST는 사회적기업가 MBA를 개설하는 내용을 담은 MOU를 체결했다. KAIST는 내년 2월부터 사회적기업가 MBA를 개설해 25명의 학생을 사회적기업 인재로 육성할 계획이다. 25명 중 20명은 사회적기업 창업을 목표로 하는 ‘코어(Core) 그룹’으로, 영리기업에서 3~5년의 근무경험이 있는 이들이 대상이다. 나머지 5명은 ‘서브(Sub) 그룹’으로, 향후 사회적기업 관련 NGO나 공공기관에서 근무할 지원자가 대상이다. 코어 그룹 학생의 경우 졸업 후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게 되면 MBA 2년 동안 내야 하는 수업료 4800만원을 면제받게 된다. 일부 학생은 생활비도 보조받는다.

수업은 현장체험 위주로 커리큘럼이 구성되어 졸업 후 사회적기업을 창업할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48학점을 이수하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인증하는 정식 석사학위를 받게 된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실무능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사회적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는 등의 현장체험 기회도 주어진다. SK그룹은 KAIST 홍릉캠퍼스에 ‘SK 사회적기업가 센터’를 만들어 사회적기업 창업 인큐베이팅을 지원하고, 사회적기업가 교육을 위한 학술활동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최근 포럼에서 제시한 세 가지 비전 가운데 첫 번째인 사회적기업 인재 양성 사관학교를 만드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SK그룹은 사회적기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