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세대란 ‘주범’은 뉴타운사업

재개발·재건축 인한 이주 급증… 서울지역 신규 아파트는 감소

한 시민이 지난 6일 서울 잠실에서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시세판을 바라보고 있다. 매매 물건은 많지만 최근의 전세난을 반영하듯 전세로 나와 있는 아파트는 별로 없다.

"집주인이 갑자기 집을 팔겠다며 이사가라고 하네요. 오늘 하루종일 걸어다니며 부동산을 다녀봤지만 한 아파트에 전세물건이 하나 있을까 말까 하더라고요. 그것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보지도 못하고….정말 세입자로선 앞이 막막하네요.” 요즘 인터넷 부동산 관련 카페에는 이런 종류의 글이 넘쳐난다. 추석이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다가오자 싸늘해진 바람만큼이나 차가운 바람이 집 없는 서민들의 가슴에도 불고 있다.

최근 전세를 새로 구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공인중개사무소를 찾은 ㄱ씨는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방을 하나씩 주고 싶은 생각에 큰 맘 먹고 33평형 아파트 전셋돈을 물어보니 4억원이라는 답이 돌아온 것이다. 그나마 집주인이 싸게 내놓은 물건이고, 매물이 없어 빨리 계약하지 않으면 근처에서 전세매물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인중개사의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졌다. 잠실지역의 33평형 아파트 전세는 지난해 약 2억5000만원이면 얻을 수 있었지만 불과 1년여 만에 1억5000만원이 상승했다.

지난 해 입주를 시작한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전셋돈도 천정부지로 뛰었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는 “34평형(115㎡)의 경우 올해 초 전셋돈이 3억원대였으나 지금은 4억5000만원을 훌쩍 넘었다”면서 “어차피 매물이 없으니 힘들게 돌아다니지 말고 부동산에서 매물 나왔다고 전화 오면 바로 보러 가고, 마음에 들면 곧바로 계약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최근 전세시장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다.

전세 부족 체감도 2003년 이후 최악
셋방을 전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전셋돈 상승이다. 전셋돈이 너무 뛰어 월세로 돌리자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고, 외곽 지역으로 옮기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출발한 전셋돈 상승 여파가 수도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중소형 아파트 위주의 전세가격 상승세가 지난 8월 들어서는 경기, 인천 등지 중소형 아파트로까지 옮아갔다. 강남 전셋돈이 크게 오르자 강남에서 밀려난 전세 수요자들이 강북이나 수도권으로 눈을 돌리면서 이들 지역 전세시장까지 불안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서울 강남권(서초·강남·송파구)에서부터 시작된 전셋돈 상승세는 부동산 거래 비수기인 여름 내내 강세를 보여 30주째 상승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승세가 다가오는 가을 이사철과 결혼 시즌까지 맞물리면 전세대란은 필연적이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의 서울 아파트 전셋돈은 2.7% 상승(지난해 3.8% 하락)해 반등이 확연해졌다. 송파구는 올해 들어 무려 11%나 올랐으며 강동구, 광진구, 서초구, 노원구 등지도 크게 오르고 있다.

이 정도면 ‘전세대란’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아파트 전세공급량 부족에 대한 체감도도 2003년 이래 최악이다. 국민은행 부동산연구소가 발표한 전세수급동향 자료를 보면 공급부족 지수는 전국 77.2로, 관련 통계 조사가 시작된 2003년 5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 동향은 국민은행이 전국 1만6000개 중개업소를 표본으로 조사했으며, 공급부족 지수가 77은 100개 업소 가운데 77개 업소가 전세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왜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전세물량의 부족 원인은 가을철 이사수요의 증가, 주택 공급 물량의 감소, 재개발·뉴타운 사업 이주 수요의 증가 등 여러 복합적 원인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세대란의 주요인은 강북권을 중심으로 뉴타운 사업 등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는 것이라는 것이 부동산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이주 증가가 고스란히 전세수요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셋돈 상승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도 전세시장 안정 대책(8·24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전셋돈 안정을 위한 주요 정책은 주택기금에서 저리로 지원되는 전세자금을 5조원으로 늘리고, 전세대출 보증한도확대와 도시형 생활주택 및 오피스텔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정도이다. 주택금융공사도 특별보증 지원 방안을 내놓아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 같은 단기정책으로 이미 달아오를 만큼 달아오른 부동산시장을 식혀줄 지는 미지수이다. 정부의 이 같은 전세자금 대출확대 정책이 한정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숨통은 트여줄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재개발 조정 전세수요 분산시켜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월 초 취임 6개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부동산 시장에 일부 이상 징후가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정상화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이라면서도 “일부 전셋돈 상승이 걱정스럽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0월8일 최근 서울 지역에 불고 있는 전세대란 조짐과 관련해 “내년과 내후년이 더 염려된다”고 고백했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는 전세대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일부 지역에서 조짐이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오 시장이 나서서 고백한 전세대란의 주범은 물론 ‘뉴타운’이다.

뉴타운사업이 필연적으로 전세대란과 아파트값 상승을 불러오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실례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등지의 ‘제2차 뉴타운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주민들이 동시다발로 이사했고, 이로 인해 강북 지역은 어김없이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뉴타운 재개발은 전면 철거형 속도전의 양상을 보이고있다. 그것도 한두 개 동네가 아니라 서울시내 곳곳에서 동시에 공사판을 벌이는 마구잡이 개발이 됐다. 그러니 당연히 셋방을 구하려는 사람은 넘치는데 이사 갈 곳은 없고, 그 결과 전·월셋돈은 뛰게 된 것이다.

올 6월 말 기준으로 서울시가 작성한 ‘주택재개발사업 추진실적’에는 재개발 사업지 가운데 올해에만 67곳, 최소 3만1000가구가 이주 및 철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내년까지 뉴타운사업에 따라 이주해야 할 가구수는 뉴타운 전체의 30%인 4만9500가구에 달한다. 주택멸실 규모도 최대 9만8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서울시는 추정하고 있어 최악의 ‘전세대란’은 이미 코앞에 다가와 있다. 현재 서울에서 추진되는 뉴타운과 재개발, 재건축 사업은 247개 지역 23만 가구가 넘는다. 서울시는 2010~ 2011년에만 최대 13만 가구가 멸실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이주 수요가 급증하지만 서울 지역에 공급되는 신규 아파트는 줄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스피드뱅크가 집계한 결과 지난해 서울 지역에 입주한 아파트 물량은 4만9000가구였으나 올해는 3만 가구로 줄었으며, 내년에는 다시 2만8000가구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입주 물량은 2만 가구 미만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대란 예방책은 뉴타운 재개발 계획의 전면적인 수정이다. 늦출 수 있는 동네는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시기를 조정해 한꺼번에 몰리는 전세수요를 분산시켜야 최악의 전세대란에 대한 예방책이 될 것”이라면서 “부동산정책은 시기와 속도가 중요하다. 전세대란도 결국 인재(人災)다”라고 강조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