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한국으로 연수 오는 일본 벤처기업

(주)덴산 설립자 고노 회장, 매년 우수사원들 한국 연수시켜

<경향신문>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는 마치 고추와 와사비를 먹을 때의 한국인과 일본인의 표정과 같습니다. 매운 고추를 먹은 일본인의 반응은 즉각적이지는 않습니다. 약간 뜸을 들인다고 할까요. 와사비가 많이 든 초밥을 먹은 한국 사람은 곧 코를 쥐면서 힘들어 합니다. 일종의 감정 표현의 차이도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10월 15일 저녁 8시 중앙대학교 법학관 15503호 강의실. 노신사가 ‘한일 우호 관계와 IT비즈니스’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코와 입을 틀어쥐는 시늉을 하면서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한국은 짧은 기간에 돈을 들이지 않는 방법으로 일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한국은 어떤 에러가 생기기 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죠. 일본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완전하고 완벽한 제품을 납품하는 게 일본 시스템입니다. 그것은 개발 능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양국의 문화 차이입니다. 일본에 한국 IT산업의 스피드가 필요하다면 한국에는 일본의 완벽성이 요구됩니다.”

“젓가락 사용하는 국민에 동질감”
특강의 연사는 일본 최초의 벤처기업, (주)덴산(電算) 설립자인 고노 다케호코(71·河野健比古) 회장이다. 그는 2005년부터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일본비즈니스 최고위과정(JAMP)에서 1년에 두 차례씩 특강을 하고 있다. 고노 회장은 친한파나 지한파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한국을 지극히 사랑하는 ‘애한파(愛韓派)’ CE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문화 교류를 자신의 중요한 일로 여기고 있다. 강연료도 받지 않으면서 자비를 들여 특강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정도다.

그뿐 아니다. 그는 또 매년 5년차 우수사원을 한국으로 연수를 보낸다. 벌써 3년째다. 재일 한국유학생회장을 지낸 임상빈 JAMP 주임교수와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됐다. 연례적으로 대규모 연수생을 한국에 파견하는 일본 회사는 (주)덴산이 거의 유일하다. 2006년과 2007년 각각 20여 명씩 한국을 다녀갔지만 올해는 바쁜 회사 사정 때문에 15명(임원 포함)이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온 일반 사원 10명은 2박3일(10월12~14일) 동안 생활의 현장에서 한국 IT파워를 경험하고 경복궁과 수원성 등을 둘러보는 문화체험을 했다.

고노 회장이 한국과 문화 교류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 일본과 같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이 좋다”고 말했다. 왜 하필 동질감을 젓가락에서 찾는 것일까. 한국 젓가락의 끝이 납작한 반면 일본 것은 뾰족하다. 한국은 금속으로 젓가락을 만든다. 내구성을 고려한 탓이다. 젓가락 끝이 납작한 것은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한 탓이다. 일본은 금속성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칠기나 나무로 만든다. 또 끝이 뾰족한 것은 가시가 많은 어류와 국수를 즐긴 것과 관계가 깊다. 한국은 밥상 위에 젓가락을 세로로 놓는 반면 일본은 가로로 놓는다. 밥상 높이가 낮기 때문에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가로로 놓는다는 게 정설이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그 쓰임새나 사용 예절이 무척 다르다”면서 “문화 교류란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한 것 그리고 결코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_한국에 연수 온 직원들과 삼겹살로 만찬을 즐기는 고노 회장. 아래_고노 회장은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경향신문>

젓가락은 음식문화 속 하나의 도구다. 유사한 도구를 다르게 사용하는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때 교류의 의미가 더해질 뿐 아니라 서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고노 회장은 연수를 온 직원에게 “문화적 차이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우라”고 주문했다. 연수사원은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연수 과정에서 보고 느낀 체험담과 경험담을 담은 리포트를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고노 회장은 연수 일정을 직원과 함께 하면서 직원들이 사람을 접하고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는 그들이 간부로 성장할 수 있는지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다소 ‘부담스러운’ 연수지만 한국에 온 직원들의 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라고 한다. 유라가시(有良佳史) 덴산 IT사업본부장은 “한국을 다녀간 직원의 80%가 한국 연수에 만족감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연수직원인 야마모토(여)씨는 “이번에 온 사원 중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이번 연수에서 만난 한국 사람은 매우 친절하다. 비록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들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1967년 일본 최초 벤처기업 설립
고노 회장은 1967년 직원 8명, 자본금 100만 엔으로 일본 최초의 벤처기업인 (주)덴산을 설립했다. 컴퓨터라는 용어조차 생소했고 컴퓨터가 계산기라는 의미로 통했던 시절, 종합정보처리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초창기엔 주로 데이터 입력 수탁 업무를 했다. 덴산과 같은 일본 벤처기업 1세대는 거의 사라지고 현재 4~5개만 남아 있다. 덴산은 40년 동안 한 번도 적자를 낸 일이 없다. 법인세 45%를 꼬박꼬박 내고 나머지 수익금은 전부 재투자했다. 고노 회장은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으면서 회사를 키워 지금은 매출액이 300억 엔이나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 정보 입력 및 분석, 여론조사, 인력 파견 등 사업다각화에 성공했으며, 여전히 일본 최고의 종합정보처리회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덴산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웃음으로 커뮤니케이션하자 ▲‘고객의 고객’까지 만족시키자 ▲고객의 만족이 곧 우리의 만족이다라는 3가지 경영이념을 철저히 현장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고노 회장은 한국과 맺은 인연을 사업과 연결시키고 있다. 고노 회장이 한국과 최초로 인연을 맺은 때는 노태우 정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척관계에 있는 사람의 소개로 한국의 한 기업과 사업을 제휴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관심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중앙대 JAMP다. 현재는 유니온정보시스템(최인용 대표)과 제휴, dDEms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종전에도 한국 기업 두 곳과 같이 일을 했다고 한다. 특히 유니온정보시스템 최인용 대표와는 사업파트너를 넘어 인간적으로도 관계가 깊다. (주)한셈 최양하 부회장 등 한국의 수많은 재계 인사와도 교류가 잦다.

전용욱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원장은 “미국 금융 위기로 아시아 경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일 교류는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JAMP와 덴산이 그 의미를 더욱 확대 재생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