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y@Life]비즈니스 충전소 '세리CEO'

지난 10월 22일 오전 7시 30분. 아직 새벽기운이 가시지 않은 신라호텔에 3백여 대의 검은색 고급승용차가 줄을 이어 진입하고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운영하는 사이트인 세리CEO(www.sericeo.org)가 매월 회원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조찬세미나에 참석하려는 CEO들의 차량이다. 출근시간 전이었지만 이들 차량 때문에 주변 도로는 잠시 체증을 겪기도 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회원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신한캐피탈 이동걸 사장, 한국후지제록스 정광은 사장,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 등 국내 유수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는 물론 임원급 회원 350여명이 자리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이곳 세미나장에 폭탄이라도 하나 터진다면 국내 경제가 당장 마비될 것"이라며 웃었다. 경제 월간지 [포브스]는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회원들을 위해 원래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책을 찍어냈다. 강연에 나선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부사장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경제세미나 하겠다고 3백명이 넘는 최고경영자가 모이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회비 1백만원에도 가입 급증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최고경영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세리CEO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세리CEO는 2001년 9월 출범했다. 처음에는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의 보고서를 동영상과 파워포인트 파일로 브리핑하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세리CEO를 향한 각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삼성그룹 임원들에게만 공개된다는 비밀스러움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연회비가 1백만원이나 하는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과연 어떤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런 관심은 2002년 2월 일반 공개 이후 회원 급증이라는 뜨거운 열기로 이어졌다. 현재 세리CEO에는 이름만 대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최고경영자와 고위 임원 4천2백여명이 가입돼 있다. 회원 비중을 살펴보면 일반 회원이 그룹사 회원보다 3배나 많다. 대한민국의 30만 최고경영자 가운데 1%만 회원으로 가입시키겠다던 목표는 이미 초과달성한 상태다.

세리CEO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실장 강신장 상무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시간이 부족한 CEO들에게 정보의 핵심만 골라서 보여준다는 개념이 좋게 평가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리CEO 회원인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도 "토막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간단하게 시장 동향이 파악되는 점이 좋다"고 평가했다.

세리CEO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CEO들의 '시테크'를 도와준다는 마케팅 포인트에 맞게 설계됐다. 5분에서 길어야 7분 정도의 동영상 브리핑을 인터넷으로 보고 상세한 내용을 담은 파워포인트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챙길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잦은 회의와 출장 등으로 이동이 잦은 CEO들이 차 안에서도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이다.

건강-문화 정보 컨텐츠에 만족감

실제 회원들도 전문지식의 습득보다는 새로운 트렌드 해석이나 건강-문화정보 등의 컨텐츠에 큰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4천여건에 이르는 동영상 리포트 가운데 미술가 산책-골프 클리닉-즐거운 와인타임-Book Review 등은 특히 인기있는 코너다.

세리CEO가 유료 사이트이기는 하지만 유료 ID판매를 담당하는 영업사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마케팅 부서가 있지만 개별 영업을 나가지는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기획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편이다. 이른바 '큰 그림'만 그리는 부서인 셈이다. 좋은 컨텐츠만 많이 확보한다면 회원들은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실제 지금 회원 대부분이 입소문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찾아왔다. 세상의 다양한 마케팅 기법 가운데 '입소문' 마케팅이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세리CEO의 성공은 인터넷 업계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컨텐츠를 이용하는 회원들의 회원가입비만으로 한해 90억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것도 유료화 모델로는 전무후무한 사례다. 세리CEO는 인터넷 기업의 커다란 화두의 하나였던 B2B 시장에서도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등 몇몇 기업의 인트라넷에 세리CEO의 컨텐츠들이 서비스되고 있다. 지식경영의 첨병이자 멀티미디어 환경의 새로운 경영도구로 인정받는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모바일이나 위성DMB에 세리CEO의 컨텐츠를 판매하자는 제안도 있지만 당분간 '외도'는 생각지 않고 있다. 이동성이 좋은 새로운 매체에 비해 유선 인터넷 환경이 제한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무실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보는 것만큼 '약발'을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자체 스튜디오서 제작

세리CEO의 컨텐츠는 일주일 단위로 기획되는 편성표에 따라 제작된다. 중요한 이슈가 있을 경우에는 적어도 다음날 아침에는 상세한 분석을 브리핑할 수 있도록 밤샘 제작도 한다.

매주 화요일 오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팀장들이 배석한 가운데 기획회의가 열리는데 여기서 일주일동안 회원들에게 제공될 정보가 걸러진다. 협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원들과 외부 강사들이 선정되면 즉시 원고가 작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 디자이너들이 파워포인트 제작을 담당한다.

촬영과 편집 등 제작실무를 담당하는 인원은 PD-작가-디자이너를 합쳐 10명선. 촬영은 지난 2월 새롭게 단장한 자체 스튜디오에서 진행된다. 방송국 수준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매일 4편 이상의 새로운 컨텐츠를 제작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