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코리아 둘레길 ‘박근혜 정부판 4대강 사업’?

문화관광산업 경쟁력 강화회의서 제안… ‘대한민국 대표 콘텐츠’로 조성 계획

“문제는 ‘코리아 둘레길’ 조성에 충청북도는 고스란히 빠져 있다는 것이다. (중략) 대한민국을 세계에 홍보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이 계획에 지역차별이 존재한다면 과연 ‘코리아’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또한 민간 중심으로 세부시행계획이 수립되는데, 충북 지역주민의 목소리가 빠진다면 진정한 의미의 소통과 참여라고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6월 21일 충북도가 낸 보도자료다. 현재 이 보도자료는 충청북도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너무 앞선 것 아니냐”는 내부 지적에 따라 문건으로 배포한 자료는 회수했다. 충북도는 보도자료에서 “기왕 대한민국 대표 콘텐츠로 걷기 길을 만들겠다면 청남대가 위치하는 대청댐을 지나 단양팔경을 거쳐 영월-태백-삼척의 백두대간 줄기를 거치는 코스, 약 360㎞의 길을 추가할 것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아예 중부내륙을 횡단하는 길을 추가해 ‘코리아 태극길’로 이름을 변경하자는 제안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충북도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까지 거둔 건 아니다”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코리아 둘레길을 조성하는 데 주민 의견을 반영해 결정한다고 해 우리 도내에도 길 전문가가 없는 것이 아니니 참여해 적극 의견을 개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코리아 둘레길. 6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관광산업 경쟁력 강화회의’에서 처음으로 제안된 사업이다. 이날 문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동해안의 해파랑길과 DMZ 지역의 평화누리길, 해안누리길 등을 연결하여 전국 규모의 걷기 여행길 네트워크를 구축해 ‘대한민국의 대표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문체부는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리아 둘레길과 연계 관광프로그램 개발로 국내·외 관광객 유치, 도보관광의 강점 활용, ‘지역에 머무르는 관광’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연간 550만명 방문, 7200억원 경제효과 기대)”

6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화관광산업 경쟁력 강화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그런데 이 ‘대한민국 대표 콘텐츠’에 대한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4500㎞ 코리아 둘레길 조성’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이다. “어떤 도둑놈 입에서 나온 아이디어일까. 4대강만큼 쓸데없는 짓 하고 있네. 외국인이 와서 걷게 만들겠다? 명동이나 외국인 등쳐먹는 업소부터 계속 단속하시길.” 댓글들을 보면 “박근혜 정부판 4대강 사업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과 비판의 글이 많다. ‘대한민국 대표 콘텐츠’ 코리아 둘레길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이날 회의의 대통령 모두발언에서 코리아 둘레길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 언급은 다음과 같다. “… 또 제주의 올레길을 비롯해서 자연과 전통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지리산과 북한산 둘레길, 쪽빛 바다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남해 바래길 등은 해외명소 못지 않은 훌륭한 여행코스입니다. 우리나라의 동·서·남해안 등에도 둘레길 코스를 개발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코리아 둘레길이 만들어진다면 박 대통령이 언급한 4개의 걷기길 중 남해 바래길만 포함될 뿐, 나머지 세 개는 포함되지 않는다.(당초 배포된 문체부 보도자료의 코리아 둘레길 이미지에는 제주 올레길도 표시되어 있었으나, 6월 23일 기자와 통화에서 문체부 관계자는 “이런 길이 있다는 예시로 표시해놨을 뿐, 코리아 둘레길에 제주 올레길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언급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날 회의 이전부터 대통령은 ‘동·서·남해안 둘레길 조성’에 대해 보고받아 큰 얼개는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앞서 보도자료에 언급된 ‘기대효과’에서 문체부는 ‘연간 550만명 방문, 7200억원 경제효과 기대’라는 구체적 수치를 밝히고 있지만 그 수치의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550만명 방문, 7200억원 효과’ 추정 근거는
‘코리아 둘레길’ 조성계획은 이날 회의에서 처음 나왔다. 6월 17일 이전 문체부가 공개하고 있는 자료나 관련보도에서 관련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나온 배경에 대해 관련 정부 연구기관 관계자는 “용역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앞서의 수치에 대한 근거를 밝히고 있는 내부 문서를 확인했다. 자료에 따르면 연간 이용객수는 553만7051명으로 추정하는데, 국내 관광여행 참가자 수(3258만6226명) 가운데 걷기여행객 추정비율 8%를 곱하고, 여기에 다시 여행자 1명당 여행횟수(3.54회)와 코리아 둘레길 방문비율(60%)을 곱해서 나온 숫자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방문비율이다. 앞서 걷기여행객 추정비율 8%는 2015년 국내여행 실태조사 중 ‘야외 위락 및 스포츠 활동’에 대답한 11.1%의 80%를 걷기여행객으로 ‘목표’한 비율이라는 나름대로의 근거 제시가 있지만, 60%라는 방문비율의 설정 근거는 무엇일까. 6월 23일 통화에서 문체부 관계자는 “면밀한 근거라기보다는 목표추정치를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희망목표치’라는 것이다.

7200억원이라는 경제효과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다시 문체부의 내부자료를 보면 7279억원 추정으로 잡힌 ‘연간 소비유발효과’는 앞서 이 연간 방문객 수에다 여행자 1회 평균지출액(13만1456원)을 곱해 나온 단순수치다. 이 역시 의문이 떠오른다. 앞서의 연간 이용객수 추정이 잘못 계산되었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沙上樓閣)이다. 여행지의 성격에 따라 지출 행태나 규모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객관성이 확보되려면 적어도 비슷한 트레일 여행에서 지출액 평균치를 사용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문체부 핵심 관계자는 “그렇게 따지면 한도 없다. 이를테면 지리산 둘레길을 방문한 경우와 해안 도보여행길을 가는 비용은 또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그렇게 한 것이니 그렇게 아시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담당사무관은 “여러 사람들의 자문을 받아 만든 추정치”라고 덧붙였다).

“사업 발표 후 제일 논란이 되었던 것은 ‘4대강 사업의 해안 버전’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예산규모를 보면 다시 이게 가능한 일이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해파랑길을 조성하고 운영했던 프로세스를 그대로 접목하면 (코리아 둘레길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윤문기 ‘한국의 길과 문화’ 사무처장의 말이다. 사단법인 한국의 길과 문화는 동해안 해파랑길을 운영하고 있는 민간단체다. 4500㎞의 코리아 둘레길 조성계획에는 부산 오륙도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해파랑길 770㎞가 포함돼 있다. ‘코리아 둘레길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윤 처장은 “‘한국의 길과 문화’가 제시한 아이디어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실제 문체부 측도 민간단체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약 2년 전부터 한반도를 크게 두르는 도보길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임시 개통된 해파랑 길을 ‘완보(完步)’한 분들로부터 감사 전화를 많이 받았다. 그분들이 꼭 덧붙이시는 말이 ‘남해안과 서해안은 언제 만들어줄 거냐’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낸 것은 4~5개월 전이다. 공무원들이 순환보직을 하기 때문에 계속 담당자들이 바뀌는데, 이번에 새로 되신 분들이 바뀌자마자 채택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담당공무원의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문체부가 밝힌 계획에는 예산규모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문체부 관계자는 “예산은 아무리 많아도 100억원 미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체부와 윤 처장의 말을 종합해보면 MB정부의 4대강 사업은 22조나 들어간 토건사업인 데 비해, 코리아 둘레길은 콘텐츠사업이고 기존에 존재하는 길을 잇는 사업이기 때문에 토목사업이 아니며 적은 예산으로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친환경사업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윤 처장은 “우리가 낸 안에는 토목공사 예산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길은 역설적으로 예산이 많이 들어가면 생명이 짧아진다. 모 탐방로의 경우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인데 주변에 좋은 정자도 많다. 그것을 데크만 2㎞를 60억인가 들여서 깔았는데, 데크를 까는 경우 시간이 지나면 교체를 해야 한다. 갈 때마다 보면 공사 중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허리가 휠 일이다. 그 길도 지속가능하려면 데크를 뜯어내고 최대한 지형을 활용해 유지·보수하기가 편한 길로 바뀌어야 한다. 해파랑길의 경우 기존의 길만 이어 만들어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안 든다.” 윤 처장에 따르면 제일 걱정되는 것은 주요 거점을 둘러가게 되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코리아 둘레길’은 9개 광역자치단체와 82개 기초자치단체를 거쳐 가게 하는데, 지역관광을 활성화시키겠다고 여기에 자꾸 다른 사업이 추가되게 된다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7월 중순쯤에 ‘코리아 둘레길 성공 추진을 위한 심포지엄’을 관련 자치단체와 민간단체, 동호회 분들이 모여서 여는데, 그 자리에서 이 사업의 의의와 추진방향에 대한 공감을 모을 생각이다.”

그런데 ‘4대강 사업’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2018년까지 만들겠다는 계획 목표 때문이기도 하다. 4대강 사업이 MB 임기 내 완수를 목표로 무리수를 둔 것처럼 박 대통령 임기 다음해까지 완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손성일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 이사장은 6월 17일 코리아 둘레길 조성계획이 발표된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3500㎞는 제안부터 완공까지 16년이 걸렸다. (저보고 만들 계획을 짜보라고 한다면) 몇 개월 조사해서 2년 동안 4500㎞를 연결할 자신이 없다”고 적었다. 그와 통화해 봤다.

“사실 지금도 전국적으로 600개, 1만8000㎞의 길이 있지만 10년 안에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많다. 왜냐. 간단하다. 예산을 안 주니까.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데가 많다. 사람들이 가지 않으면 데크를 깔아봤자 금방 풀이 자란다. 게다가 바닷가다. 쓰레기가 엄청 밀려온다. 실제 지난해 이번에 발표된 코리아 둘레길이 대부분 포함할 해안누리길 60여개 코스 1000㎞를 걸었다. 한 번 태풍 불면 다 날아간다. 리본 같은 걸로 표시하면 다 날아가는데, 그게 다시 쓰레기가 된다. 수백㎞도 유지·관리하기가 힘든데 4500㎞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미국 애팔래치아의 경우 6000~7000명이 자원봉사를 하는데, 우리는 더 있어야 한다. 지금도 다 꽁짜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그는 “제대로 된 실측이나 조사, 관리도 없이 길이 난립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문체부에서 생태탐방로 사업을 하면서 약 50㎞의 구간 심사에 참여한 적 있다. 음식이야 차 타고 다니면서 먹어보면 알 수 있지만 길은 직접 걸어봐야 할 것 아니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을 보면 교수님이나 여행작가 같은 사람들인데, 걷는 사람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은 걸어보고 길을 선정해야 하는데, 그런 식이다. 다해서 5㎞나 걸었을까, 그게 전부다.”

더 문제는 이렇게 각각 따로 따로 만들어진 길이 중복 난립된 경우다. 사실상 동일한 노선인데 중복지정되며 나타나는 문제다. 강원도 고성군에 조성된 도보길에서는 실제로 여러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동해안을 잇는 해파랑길 이외에도 ‘해안누리길’(해수부), ‘관동팔경 녹색경관길’(국토부), ‘산소길’ ‘낭만가도’(강원도), ‘고성갈래구경길’(고성군), ‘평화누리길’(행안부) 등의 이름이다. 광역단위 지자체와 기초자치단체, 그리고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도보여행길 지정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의 경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드웨어’를 지자체가 마련한 가운데 기존의 이정표에 날개의 형태로 해파랑길을 표시하는 안내판을 덧붙이는 식으로 사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깜깜이 추진이 야기한 논란, 앞으로는
‘4대강 사업’과 유사한 점은 또 하나 있다. 발표할 때까지 ‘깜깜이 사업’이었다는 점이다. 2010년 해양수산부는 ‘걷기 좋은 해안길’이라는 이름으로 해안누리길이라는 것을 선정했다. 서·남·동해안을 거쳐 53개 길을 지정해 소개하는 사업이다. 2012년에는 인천 강화군 호국돈대길, 전북 부안군 변산마실길, 전남 신안군 해넘이길, 경남 고성군 공룡화석지해변길, 부산광역시 영도구 절영해안산책로를 5대 대표 노선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위의 길들은 코리아 둘레길이 만들어지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해안누리길은 해수부 산하의 한국해양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주간경향>은 해양재단 측 담당자에게 코리아 둘레길과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문의했다. 그로부터 돌아온 답. “…말씀하셔서 지금 (문체부의 보도자료를) 열어보고 있는데, 간략하게 보기에는 흩어져 있는 길을 연결해보자는 취지인 것 같다.” 이번 발표와 관련해 담당하고 있는 해양재단 측과의 논의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것은 앞의 충북도도 마찬가지였다.

“코리아 둘레길 계획이 발표된 후 주위에서 한밤중에 축하전화를 많이 해와 당황스러웠다.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업인데….” 앞서 인용한 손성일 이사장의 말이다. 2008년부터 조사해 개척한 삼남길 600㎞에 그는 ‘코리아트레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련 사업을 추진해왔다. 코리아트레일은 2012년에 상표 출원을 해 2013년에 상표로 등록되었고, 관련 도메인도 보유 중이다. “아무래도 저 이름대로 추진되면 많은 혼동이 일어날 것 같다. 지금 구상대로 길이 만들어진다고 100% 반대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길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것을 원하고 기왕이면 이름도 같이 사용하면서 지원을 공유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체부에서는 어떻게 답할까. 이름과 관련해 문체부 핵심 관계자는 “코리아도 그렇고 트레일도 보통명사인데, 어떻게 상표 등록이 가능한지 알 수 없다”며 “정부가 이름을 만드는 데 상표권까지 신경을 쓰고 만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2018년까지 완공이 가능한지 여부, 추진과정의 불투명성 등과 관련한 지적에 대해 그는 “문체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하는 것을 지원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향후 구성될 추진위원회에서 논의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1500㎞ 산티아고 길의 3배 주장,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

한국의 도보여행 붐은 10년 전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직접 답사해 만들어낸 제주올레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진은 제주올레 1코스인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말미오름을 지나는 도보여행 참가자들.

“길이를 두고 비교하는 거, 촌스러운 것 아닌가요?” <주간경향>과 통화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말이다. 서 이사장에 따르면 ‘걷는다는 것’은 몇 ㎞를 걸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어떤 건물을 짓는다면 대부분 어떤 결과주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건물, 제일 긴 다리와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걷는다는 행위는 그런 수치 위주의 삶, 경쟁적이고 결과주의적, 업적주의적인 것을 벗어나서 사유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것인데….” 서 이사장은 “어떤 트레일과 경쟁하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걸을 권리와 함께 어떤 목적으로 만들고 접근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마음자세”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도보여행, 트레일 붐이 일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산티아고 길을 걸은 뒤 서 이사장의 구상과 답사를 통해 만들어진 제주올레가 주목을 받으면서다. 앞서 언급한 전국 600개, 1만8000㎞의 도보길들은 제주올레의 성공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서 이사장은 “사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4월부터 10년 만에 산티아고 길을 다시 한 달간 걷고 들어온 참이라서 (코리아 둘레길과 관련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잘 모른다”며 “제주올레를 하면서 제주관광을 다 바꿔놓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대효과를 이야기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얼마만큼 경제효과를 창출했다고 자랑해본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코리아 둘레길’ 조성과 관련해 가장 비판받은 부분도 이 산티아고길과 관련된 부분이다. 10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산티아고길과 비교할 만한 스토리텔링이나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 같은 숙박시설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교해 3배 더 길다와 같은 표현은 우리가 한 말이 아니며, 최초 보도한 매체가 쓴 말을 다른 매체들이 돌려 베끼는 과정에서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나온 보도자료나 회의자료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