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북 원자로 재가동, 중국 반응 초미의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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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지낸 크리스토퍼 힐 미국 현지 인터뷰

북한이 영변의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초 영변 원자로의 재가동 준비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했고 8월 말부터 재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미국 덴버대 교수)는 9월 26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영변 원자로의 재가동에 대해 “우리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본다”면서 “중국이 대화 프로세스에서 원자로 재가동을 적대적인 행동으로 간주할 것인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힐 전 차관보는 9월 26일 워싱턴타임스 재단과 천주평화연합이 미국 워싱턴에서 공동 주최한 ‘한반도 로드맵’이라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날 세미나에 앞서 미국 워싱턴 유니버시티 클럽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힐 전 차관보는 영화 ‘그라운드호그 데이’, 시험 선택지, 사전 요리 등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북한 핵협상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직 외교관답게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 같은 예민한 질문에는 “한국 국민이 선택해야 할 문제”라며 피해갔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북한이 8월 말부터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2007년 북·미협상 때 주역으로 북한의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절차를 밟도록 한 성과를 거뒀는데, 재가동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는 어떠한가.
“개인적으로 매우 실망스럽다. 혹자는 북한에서 ‘대화를 하자’고 나오기 때문에 전향적인 자세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대화(talk)는 대화이고 행동(action)은 행동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대화 부분은 조금 나아졌지만 행동 부분은 예전보다 더 악화됐다. 대화와 연관지어 볼 때 (원자로 재가동은) 매우 적대적인 행위라고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지금 초미의 관심은 중국이 북한의 이번 조치(원자로 재가동)를 대화 프로세스에 적대적인 행동으로 간주할 것인지 여부다.”

미국의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이 9월 23일(현지시간)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같은 날 국가안보회의 이름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히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입장이라고 생각하나.
“북한을 절대로 핵국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고 지론이다. 하지만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진다. 하나는 극단적인 실용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절차나 대화를 절대적으로 무시하는 또 다른 극단주의자들이다. 이 두 부류는 세계가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게 하는 데 북한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북한이 자체적으로 언젠가는 핵국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지속적으로 갖게 하고, 또한 그들이 전 세계가 언젠가는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해줄 것이라는 과대망상적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나.
“북한 핵문제는 선택지가 여러 개 있는 시험문제에 비유할 수 있다. 첫 번째 선택지는 협상을 통해서 무장 해제를 유도해야 하고, 두 번째는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하고, 세 번째는 모든 제재 방법을 통해 ‘무장을 해제하지 않으면 점점 힘들어지는구나’라는 압박을 북한 정권에 지속적으로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선택지를 다 골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하지만 동시에 그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한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2012년의 2·29 합의에 플러스 알파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정부만 응하면 6자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 한반도의 현재의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입장이 오히려 북한 핵 보유에 대한 시간을 벌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

“북한이 애용하는 문구가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하자.’ 말은 미사여구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화만 하자는 것이다. 지난 4~5년 동안 이뤄진 조처들을 부인하면서 다시 대화만 하자는 것이다. 6자회담을 통해서 우리들이 나이가 많이 들었고 흰머리도 늘었다. 우리들의 흰머리가 이제 수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화를 하고 진전이 된 다음엔 또 부인하면서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한국에서 ‘사랑의 블랙홀’로 소개됨)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에게 날마다 똑같은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북한이 말하는 ‘아무런 조건 없는’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대화를 하자고 할 때마다 이 영화와 같은 상황이 된다. 북한이 다른 어떤 일반적인 나라처럼 진정성을 갖고 협상에 임한다면 우리도 협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요리를 한다고 할 때 사전 요리를 하는 경우와 같다. 조금만 요리하면 음식이 나오도록 준비가 되어야 한다. 요리를 할 때 어느 정도 입장을 다 정리하고 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입장을 주고 받고 해서 좋은 음식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 그들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늘 물어봐야 하는 것은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다. 이제까지 이런 신호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나.
“아니다. 문은 계속 열어둬야 한다. 북한은 정말로 대화를 원한다면 어떻게 대화를 재개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물론 대외적으로 북한이 갖고 있는 입장을 바꿔가면서까지 대화를 하자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 아무 조건 없이 대화를 하자고 해놓고 조건을 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대화를 재개하고자 하면 구체적인 제안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05년 9·19 합의로 하자든지 2007년 2·13 합의로 하자든지, 그 합의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회담을 재개하고 회담이 끝날 때쯤에는 회담에서 나온 모든 요구를 수용할 준비를 갖추겠다는 것이다. 이런 게 제안이다. 단순히 ‘아무런 조건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제안이 아니다.”

북한의 시간 벌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북한이 시간 벌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간을 벌어서 북한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전 세계에서 핵국가로 인정받는 것이다. 대화가 재개되지 않더라도 제재를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북한을 움직일 필요가 있다.”

북한이 앞으로 중대한 제의를 할 것이라고 보나. 아니면 비관적으로 보나.
“글쎄. 나는 회의론자도 긍정론자도 아니다. 내가 논리적으로 생각하기로는 북한은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 북한이 비핵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의 지도자들은 이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하고 있다. 두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의 정치에 대해 아무리 잘 아는 전문가라고 해도 (이들 대북정책에 대해) 성적표를 줄 수는 없다. 한국의 국민들이 지도자에 대해 성적을 매겨야 할 것 같다. 우선 개성을 국제화한다는 것은 매우 상상이 풍부한 접근이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이 어느날 갑자기 정상적인 국가가 되겠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여전히 개성에서 일하는 엔지니어, 노동자라든가 실무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중국이 일전에 미국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중국과 미국이 상하이 협약을 맺고 나서, 중국의 베이징에 미국이 사무국을 냈다. 그것을 통해서 양국의 관계가 좀 더 진전이 될 수 있었고 나중에 정상화가 됐다. 중국이 제안했는데, 북한에 이런 식으로, 1단계 걸음마 수준으로 우선 평양에 사무국을 내자는 것이었다. 이것을 통해 언젠가는 비핵화가 된 북한과 국교 정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런데 북한은 1단계 걸음마조차 하지 않겠다고 우리에게 알려왔다. 우리가 보기에 북한은 고립되기를 좋아하는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신뢰를 갖고 대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지 북·미, 남북관계에서 어느 정도 신뢰가 있어야 진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북외교를 ‘협상가의 무덤’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북문제에 엮이게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는지.
“북한문제는 정말 까다로운 이슈다. 난제였다. 정말 일을 많이 했다. 북한문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한국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됐고, 한국인에게 친근감을 얻게 됐다. 한국 국민들에게 심정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다루게 되다보니까, 한국인들을 이해하게 됐다. 대사로 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 가면 마치 고향에 가는 느낌이 든다.”

한반도 로드맵 국제세미나 평양에서 열릴까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유니버시티 클럽에서 열린 ‘한반도 로드맵을 향해’ 세미나는 워싱턴타임스 재단과 천주평화연합이 일본과 한국에 이어 세 번째 연 국제 세미나다. 동북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로드맵 구축을 주제로 한 이 국제 세미나는 특히 미국 행정부가 위치한 워싱턴에서 열린 데다, 미 행정부 출신의 동북아 전문가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유니버시티 클럽에서 ‘한반도 로드맵을 향해’ 국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유니버시티 클럽에서 ‘한반도 로드맵을 향해’ 국제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는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가비확산센터 소장,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한미연구소 초빙연구원 등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를 논의했다.

양창식 워싱턴타임스 재단 이사장은 세미나가 열리기 전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워싱턴 세미나는 그동안 한반도 평화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던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서거 1주기를 맞아 열렸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면서 “도쿄, 서울, 워싱턴에서만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베이징, 모스크바, 심지어 평양을 비롯해 제네바와 오슬로까지 회의 개최지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 이사장은 세미나에서도 기조연설을 통해 같은 발언을 했다. 워싱턴타임스 재단과 천주평화연합의 향후 계획은 평양에 방점이 찍혀 있다. 평양에서 한반도 평화 로드맵을 논의한다면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타임스 재단과 천주평화연합의 한 관계자는 “평양에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계획이겠지만, 베이징에서 열리는 국제 세미나에서 북한측 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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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