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박원순 소통행정의 싱크탱크 이창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표지이야기]“시민과의 소통이 정책 타당성 높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사석에서 한 말이 기억난다. 청계천 사업과 버스중앙차로제가 자신의 기획과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고백이었다. 서울시정과 관련한 좋은 연구 결과물이 상당히 축적돼 있었고, 그 가운데서 그 두 가지를 선택해서 추진했을 뿐이라는 게 이 대통령의 말이었다. 세간의 칭송에 대해 겸양하는 태도를 보이면서도, 아이디어보다 실천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추진력을 자랑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5년 전 이 대통령이 한 말이 다시 떠오른 것은 정책 아이디어와 추진력의 함수관계를 재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대통령이 인정한 서울시의 막강한 정책연구 기능에 자꾸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 지하철 9호선과 우면산 터널의 민자유치 과정이라든가, 정치권 스캔들로 비화하고 있는 파이시티 문제 등에 서울시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이름이 직·간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6개월을 맞으면서 시정 평가와 비전에 대한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박 시장이 서울의 미래를 디자인하고 그 구체적인 설계도를 만드는 데는 정책연구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지난 2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13대 원장에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가 취임한 것도 무척 흥미롭다. 박 시장이 경제학자나 관료 출신이 아닌 언론학자를 원장에 기용한 것부터가 정치권과 서울시 주변에서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원장은 소통 전문가로서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 등 다양한 분야와 활발하게 소통해 왔다. 지난 4월 26일 서울 서초동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박원순 소통행정의 싱크탱크 이창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원장에 임명된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랬죠? 저도 놀랐어요.(웃음) 그런데 시정개발연구원(이하 연구원)원장을 꼭 토목 박사나 교통 박사만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오히려 다양하게 해보고 도시와 인간과의 소통이라든가 도시와 환경과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느냐, 그렇게 얘기하시니까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이더라고요.”

3년 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취임 3주년 평가 토론회에 참석해서 “보여주기에 치중했고 환경·문화 분야는 퇴보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이 자리에 올 줄 몰랐습니까.
“생각하지 못했지만…(웃음) 서울시와 관련한 토론회는 그게 처음이었던 같고요. 크게 봐서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서울 시민과 얼마나 소통했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의 자연환경과 얼마나 소통했느냐예요. 사람과 잘 소통했다면 용산사태 같은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한강운하라든가 북한산 밑에 거대한 콘도미니엄을 추진한 것은 자연과 소통하지 못한 결과에 해당하고요.”

이 원장은 평소에도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100%가 아닌 그 이상의 답을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전화로 코멘트를 받을 때면 물어보기도 전에 미리 답을 내놓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언론학자로서 언론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의 소통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소통 전도사를 자처하지만 그 스스로 ‘소통의 달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원이 전임 시장의 전시행정이라든가 현 시장의 소통행정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까. 오히려 시장이 연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라고 보지 않습니까.
“그게 전문적이어서요. 각자 분야별로 일대 일 대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전체 서울시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미래전략이나 정말 서울시민이 행복한가에 대한 정책수요 조사 또는 만족도 조사 같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종합적인 판단 없이 프로젝트 베이스로 연구만 해왔던 측면이 있어요.”

앞으로 연구원은 전문적인 연구는 이전처럼 계속하되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설계하고 거기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는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는 게 이 원장의 말이다. 개발과 성장의 패러다임 시대를 마감하고 성장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는 연구원이라는 의미에서 ‘서울연구원’으로 명칭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이 부분도 다음 질문으로 준비한 것인데, 미리 ‘알아서’ 답변해주었다.)

아, 결정이 났구먼요.
“결정이 났다고 하면 안 되고요. 시의회에서 6월에 상정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두 가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데, 정명(正名)과 정견(正見)입니다. 이름을 바로 하고 서울의 미래를 제대로 보자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연구원을 변화시키는 것이 제가 원장에 있는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취임하면서 ‘소통의 정책기구’로 만들겠다고 했잖습니까. 행정에서 소통이라면 알 듯한데, 연구에서 소통이라고 하니까 구체적으로 안 와 닿는군요.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실까요.
“용산 재개발 정책에는 거기에 있는 세입자 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세입자가 없는 거죠. 시 정책 연구를 위탁하는 사람과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만 있지 시민은 빠져 있다는 얘기죠. 전문가와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 시민과의 소통이 정책의 타당성을 높입니다. 자연과의 소통도 마찬가지죠. 아라뱃길이라든가 북한산 콘도미니엄….”

잠깐, 예전에 오 전 시장이 서울시 비전을 설명하는 걸 들어본 적 있습니까.
“들어봤습니다.”

한강 고층건물은 수변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것이고, 서울의 자연환경과 관련해서도 녹지축을 연결해 북한산 다람쥐가 한강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잖습니까.
“모든 개발의 청사진은 화려합니다. 프로젝트 자체는 멋진 것이죠. 그것이 누구의 소유가 되고 누구를 위한 경관이 되느냐는 것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또 하나는 고층화라든가 시설을 계속 만드는 문제입니다. 지금 서울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젊은 층 인구가 감소하고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고요. 또 4인 가족 비중이 줄고 1인 가구가 급증합니다. 다리 놓고 지하도 뚫고 아파트 올리면 무조건 좋은 시대는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오 전 시장은 아마 그런 개발과 성장 패러다임의 마지막 지점, 말하자면 터닝포인트에 계셨던 시장이 아닌가 싶어요. 박원순 시장이 와서 바뀌어야 한다기보다 이처럼 도시의 그랜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떠한 시장이 와도 이런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 거죠.”

연구원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이를테면 지금 시대에 과연 개발이라는 게 유효한 건지 내부 소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소통으로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지금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지하철 9호선이라든가 우면산 터널은 사실 연구원 연구진이 참여한 사안입니다. 그 당시에는 우면산 터널을 뚫으면 너무나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러한 시대적 의사가 반영된 거예요. 지하철 9호선도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자사업 유치로 확장됐던 것 같습니다. 저희들이 성찰해야 될 부분이 있고요. 그런 성찰 측면에서 내부 소통이 이뤄지는 거죠. 도시를 어떻게 개념 규정하고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소통 결과 연구진도 패러다임 변화를 인식하고 공감한다는 걸 확인했습니까.
“더 이상 성장과 개발의 담론만으로는 서울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생각을 공유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뒤로 돌아가보면, 연구원이 지하철 9호선과 우면산 터널이라든가 이명박 전 시장 시절의 한반도 대운하 용역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권력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이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은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요구형 연구라고 할까요, 연구원이 그런 연구를 해왔던 건 사실이고요. 구조적 측면과 인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시장의 철학입니다. 시장이 연구원을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 생산공장으로 이해한다면 미래는 없는 거죠. 박 시장은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자신의 정책에 ‘노’라고 할 수 있는 연구 결과도 좋다고 했어요. 다음달(5월)에 서울공공투자관리센터가 문을 엽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박 시장께서 와서 한 말이 있어요. 자기도 부탁 때문에, 또는 시민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행해야 하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정책을 여기서 객관적으로 ‘노’라고 해주면 자기도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거죠. 파이시티 건도 보면 심의를 해야 되는데 그냥 자문으로 끝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 시장은 이 대통령의 ‘청계천’이나 오 전 시장의 ‘디자인서울’처럼 시정의 성과를 보여주는 가시적인 상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서울시민이 깜짝 놀랄 일은 임기 중에 하기 않겠다”고 하는데….
“대단히 큰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런 걸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독일 베를린에 유태인 학살 추념비가 있는데, 서서히 가라앉아 나중에는 없어진다고 해요. 용산공원 개발도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공원이다 국제공원이다 해서 끊임없이 뭘 채울 게 아니라 비워서 시민에게 여유와 여백을 제공하는 정책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박 시장께서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전임자의 업적이나 정책을 모조리 뒤집는 것도 좋지 않겠지요. 박 시장이 적극 계승·발전시켜야 할 정책은 없습니까.
“예컨대 이 대통령의 버스공영제죠. 오 전 시장의 ‘여행(女幸)도시’라든지 대기 질 향상 등이 그렇고요. 디자인도 저는 좋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시가 세계 도시의 트렌드에 비춰서 기본적으로 가야 하는 방향이 존재합니다. 그런 방향의 연속성은 충분히 담보돼야 하는 게 당연하죠.”

연구원은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공교롭게 주간경향도 창립 20주년이다.) 이 원장은 “성년을 맞아 연구원이 서울의 또다른 미래를 제시하는 청사진을 만들겠다”며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서울의 미래와 그 속에서 시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서울이야말로 참여형 도시가 됐습니다. 박 시장을 만들면서 시장은 ‘시민시장’, 시민은 ‘참여시민’이 된 겁니다. 저는 이게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전 세계 도시에서 이런 시민시장, 참여시민의 시대가 있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11 총선을 보면 서울과 지방의 표심이 다르지 않습니까. 시민시장과 참여시민이 만들어 내놓은 새로운 아이콘이 미친 영향력이라고 봅니다. 서울시민은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거예요. 내가 찍으니까 서울시가 바뀌더라는 거죠.”

서울의 변화는 다른 도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원장은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연구원으로 구성된 전국시도연구원협의회 회장이기도 하다. 협의회는 지난 4월 19일 모임을 갖고 ‘지역상생, 가치함께’ 선언식을 가졌다. ‘지역상생연구포럼’도 구성했다.

“다들 놀라더라고요. 왜 서울에서 지역상생을 하느냐, 무슨 꿍꿍이냐는 거죠. 그건 아니다, 지역상생을 안 하면 서울도 살기 힘들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대선국면에서 박 시장의 행보는 끊임없이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대선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얘기로군요.
“그러니까요!(함께 웃음) 그렇게 이해를 하더라고요.”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출마 선언을 하니까 박 시장도 나와야 되는 게 아니냐, 또는 나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있을 텐데요.
“박 시장은 보궐선거로 오셨기 때문에 출마할 가능성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또 서울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치상황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 않습니까. 박 시장도 그런 급변하는 정국 속에서 뜻하지 않게 시장이 됐잖습니까.
“그래서 되게 로프로파일(low-profile·주목을 거의 안 받도록 하는 태도)로 나가시잖아요. 원래 성품도 그렇고요. 가급적 이번 대선국면에서는 서울시정에 집중하겠다는 것이죠.”

역대 연구원장을 보니 임기(3년)를 다 채운 분이 거의 없더군요. 그만큼 정치적인 자리라는 뜻이 아닌가요.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시장 임기가 도중에 끝나면 원장도 같이 나가게 되고, 공무원이나 정치인은 (다음 자리를 위해) 거쳐 가는 자리가 돼 왔더라고요. 그러니까 독립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없었던 거죠. 저야 뭐가 문젭니까. 3년 있다가 (학교로) 돌아가면 되니까 그런 인사상의 자유로움이 독립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