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인물]‘전재희의 18년’ 무너뜨린 이언주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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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18년’을 이겼다. 3월 5일 민주통합당은 경기 광명을에 이언주 변호사를 전략공천했다. 상대는 3선의 새누리당 전재희 의원이었다. 전 의원은 1994년 광명시장이 된 뒤로 쭉 이 지역에서 경력을 쌓아온 ‘거물’이다. 공천받은 지 한 달을 조금 넘은 정치신인인 이 변호사는 예상을 뒤엎고 4·11 총선에서 전 의원을 누르며 당선자가 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변화를 열망한 유권자들의 승리이고, 저는 다만 그 변화에 불을 지핀 것뿐이죠.” 이 당선자는 자신의 당선을 담담하게 평했다. “거물을 상대하는 만큼 상대후보가 하는 방식을 따라가면 밀릴 수밖에 없어 내 스타일대로 가기로 했다”는 그는 “행사에 참석할 때도 영향력 있는 내빈들보다는 평범한 청중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기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인지도가 낮은 신인이 거물급인 전 의원과 상대하려면 집중적으로 공략할 대상을 한정하는 전략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언주

‘OUT! MB정권 4년 전재희 18년’이란 문구를 내세운 현수막도 정치신인인 이 당선자가 택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당선자는 “‘18년’이란 표현의 어감 때문에 비교적 연세가 있는 분들은 거부감을 느낀 것 같지만 (전 의원이) 오랜 기간 이 지역에서 일해왔는데도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이렇게나 오래 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전 의원이 18년이란 기간을 자기 입으로 언급한 적도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김용민 노원갑 후보의 ‘막말’ 파문이 커지던 상황이라 이 당선자 역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당선자가 던진 승부수가 주효한 셈이 됐다.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 당선자는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주로 기업 변호사로 일해 오면서 국내 대기업 최연소 여성임원이 되기도 했다. 전형적인 엘리트로 보이는 그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는지를 묻자 그는 “IMF 전부터 가세가 기울면서 결국 아버지 회사가 부도났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학습지 교사, 호프집 종업원 같은 일로 돈도 벌어야 했다. 일은 실컷 하고도 월급을 떼이는 힘든 경험도 겪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을 앞세운 데에는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는 이 당선자는 “청년들의 취업·결혼 문제, 젊은 엄마들의 보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중소기업을 지원해 대기업만 독식하는 경제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민주당 박영선·박선숙 의원, 강금실 전 장관 등 여성정치인들의 제안과 격려가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은 관록 있는 정치인에 맞설 전문직의 젊은 여성후보가 필요했고 이 당선자는 이 필요에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이 당선자는 “남편 최원재 경희대 교수가 선거운동 기간 중 모든 일정을 함께하며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해줘 고맙다”면서 “남편이 50·60대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아 선거에 큰 도움이 됐지만 ‘다음 선거엔 공천을 두고 부부가 다투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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