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통상교섭본부 ‘견제받지 않는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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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위의 정부’로 사회경제 구조 결정 좌지우지

관료집단은 국가 운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적 자원이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료집단 없이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관료집단은 국민의 뜻을 이행하는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있다. 관료들이 한 국가의 사회·경제 구조를 결정하는 중요한 제도들을 관료집단 자신과 우리 사회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위해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그 핵심에는 통상관료와 경제관료가 있다.

지난 11월 8일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왼쪽 가운데)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오른쪽 맨위)가 한·미 FTA 관련 쟁점을 논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11월 8일 서울 외교통상부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왼쪽 가운데)과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오른쪽 맨위)가 한·미 FTA 관련 쟁점을 논의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부상한 것은 통상관료들이다. 요즘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는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린다. 통상교섭본부장은 ‘관료 위의 관료’다.

통상교섭본부의 힘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있다. 지난 4월 29일의 일이다. 이날 임시국회 법사위 회의장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등장했다. 법사위는 당시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심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 본부장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 가맹사업에 대해 전면개방을 했기 때문에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이보다 이틀 전에 여야는 두 법안을 동시처리하기로 합의한 뒤 소관 상임위를 통과시켰지만, 김 본부장의 발언이 있고 난 후 법안 동시처리는 유보됐다.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 지경위 전문위원실, 법무공단에서 상생법이 WTO 협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았지만 김 본부장의 말 한 마디가 더 힘이 셌다.

FTA 추진하면서 권한·규모 커져
통상교섭본부는 1998년 3월 단행된 정부 조직개편에 따라 각 정부 부처들의 통상교섭 기능이 통합돼 외교통상부로 개편되면서 외교부 내에 통상협상 전담조직으로 설립됐다. 1995년 WTO 체제가 탄생하면서 통상문제 전담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 계기가 됐다.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인 통상교섭본부장 아래 통상교섭조정관과 FTA 교섭대표, 5국 17과를 두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FTA가 추진되면서 통상교섭본부의 규모는 크게 증가했다. 1998년 출범 당시 90여명 규모였던 통상교섭본부 인력은 2006년 말 190여명으로까지 불어났다.

통상관료의 힘은 한국 시장이 선진국들의 개방 압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통상교섭본부의 힘이 이렇게 강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WTO 제4차 각료회의가 채택한 도하개발어젠다(DDA)에 따라 진행된 쌀협상 과정을 주도한 것은 쌀 관련 정책 주무부처였던 당시 농림부였다. 통상교섭본부의 힘이 결정적으로 강화된 것은 참여정부 당시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부터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거 개별 부처들이 갖고 있던 교섭 권한이 통상교섭본부에 집중됐고, 이후 교섭본부가 개별 부처와 관련된 통상정책을 광범위하게 제어하는 컨트롤 타워가 됐다”고 말했다.

통상교섭본부는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해영 한신대 교수)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는 통상정책 결정 과정에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통상협상 체결 이전과 협상 과정, 협상 체결 이후에 국회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초기 국민경제 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경제평론가는 통상관료의 힘을 지나치게 키운 원인 제공자로 참여정부를 지목했다. “한·미 FTA를 서둘러 추진하면서 대통령이 당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전권을 넘겨줬다. 김현종 본부장은 미국과 FTA 체결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경제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일을 처리했다. 2006년 8월에는 결정적인 독소조항인 투자자-국가 제소 건이 문제가 됐다. 법무부와 재경부가 다 반대했지만 통상교섭본부는 이를 무시하고 추진했다. 예전 같으면 법무부와 재경부가 반대하는 사안을 그렇게 밀어붙일 수 없었다.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주변 참모나 당시 열린우리당 정치인들도 동조하면서 통상교섭본부가 전권을 행사하게 됐다.”

지난 11월 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미 FTA 전면 재검토 촉구 시국선언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11월 3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미 FTA 전면 재검토 촉구 시국선언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최근 한·미 FTA 재협상 논란과 관련해 터져나오고 있는 통상협상의 일방주의와 비밀주의는 기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상교섭본부의 비밀주의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것은 지난 2007년 당시 17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와 한·미 FTA특위 위원들을 상대로 협정문을 공개했을 때다. 그러나 공개된 협정문은 전체 1000여쪽 가운데 절반을 조금 넘는 600여쪽에 불과했다. 

의원들은 한국어 번역본 없이 영어로만 제공된 수백쪽의 문서를 컴퓨터 모니터로만 볼 수 있었고 필사도 금지됐다. 그나마 서비스 투자 유보안, 품목별 원산지 기준 등에 관련된 부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협정문 전문은 그해 5월 말에 공개됐다. 반면 협상 대상인 미국은 4월 초부터 민간자문위원회 소속 700여명의 전문가들이 평가 및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통상협상 일방주의·기밀주의 문제
견제 받지 않는다는 점 못지 않게 문제라고 지적되는 것은 통상관료들의 전문성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통상교섭본부는 기본적으로 외교부 산하의 관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국내 산업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협상 전문가들이다. 이들이 국내 산업정책의 틀을 짜는 대외협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경우에는 다년간 통상업무를 맡았던 전문가들이 협상을 진행한다. 업무 순환제에 따라 통상교섭본부에서 일하는 관료들이 그만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FTA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통상관료들의 일방주의와 비밀주의는 진보성향 정권에서든 보수성향 정권에서든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반면 경제관료들의 기득권 지향성과 친재벌적 성향은 진보성향 정권의 개혁정책들을 좌초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참여정부 시절 금산법 개정 과정에서 터져나온 논란이 대표적이다. 2005년 9월, 청와대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삼성 봐주기’ 의혹이 제기된 금산법 개정안 작성 경위를 내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일제히 나왔다. 내사 대상은 당시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였다. 그 전해 11월 입법예고된 개정안에서는 없었던 부칙 4개항이 포함됐는데, 이것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금산법 개정 이전 위법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6월 26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한·미 FTA 협의 결과를 브리핑하던 도중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박민규 기자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6월 26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한·미 FTA 협의 결과를 브리핑하던 도중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박민규 기자

그러나 10월 7일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입법 협의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는 있었지만 정부안은 선택가능한 정책 중 하나로 선택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 행정적으로 책임질 사안이나 정실 등 다른 의도는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주의조치를 하는 것으로 내사를 종결했다. 개정안은 2006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소급적용을 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로부터 에버랜드를 고리로 한 삼성의 계열사 지배구조를 승인해준 모양새가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재정부와 금감위가 개정안을 의도적으로 삼성에 유리하게 만들었는지 여부는 가려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금산 분리, 부동산 규제, 보험업법 등과 관련해 참여정부가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대기업에 유리하게 나아가게 된 데는 경제관료들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록 개혁성향 정권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관료들의 기득권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정권의 자체적인 정책 역량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고, 기존 관료체제가 워낙 강고한 탓이기도 하다. 김상조 소장은 “두 가지 모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참여정부의 경우에는 정권 자체의 정책 역량이 너무나 허약했다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면서 “경제적인 사안에 대한 집권세력의 준비가 부족했던 탓에 관료의 주도권을 극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관료의 무기는 정보와 네트워크다. 거시적인 정책은 집권세력에 참여한 몇몇 학자들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관료들이 갖고 있는 상세한 수준의 정보가 없으면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 집권 경험이 적은 집권세력은 관료와 국책연구기관이 만들어내는 수치와 정보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정태인 경제평론가는 “소수의 개혁성향 인사들이 청와대나 각료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경제관료 출신 비서관이나 장관들에게 포위된다. 가령 참여정부 초기에 이정우 교수가 정책실장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시 경제부총리는 경제관료 출신인 김진표씨였고, 이정우 실장 아래 경제수석도 경제관료 출신인 권오규씨였다. 당시 재경부의 어느 인사는 1년 안에 쫓아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만만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관료의 힘을 견제하려면 어떤 수단이 필요할까. 김상조 소장은 “한국의 경우 재벌, 관료, 보수정당의 삼각동맹이 지닌 힘이 워낙 커서 쉽지 않다”면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시민사회의 정책연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 경제연구소나 국책연구소의 정책 역량을 넘어설 수 있도록 시민사회 싱크탱크가 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구조를 깨야 한다. 시민사회의 싱크탱크가 연구를 수행하려 해도 정보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당장 현재 감세논란과 관련해서도 제대로 된 비판을 하려면 국세청이 갖고 있는 과세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기 때문에 세금 관련 논의에서 한쪽에서는 폭탄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자감세라고 하는 선정적 구호만 있을 뿐 제대로 된 논쟁이 안 된다.”

관료 기득권 개혁정권도 넘기 어려워
이해영 교수는 경제관료의 주도권이 통상관료에게로 넘어간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관료의 나라다.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국가 주도 모델을 견인했던 기존 경제관료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힘이 약화됐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글로벌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통상관료다. 시민사회와 야당의 정책 능력을 동반상승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이 정책을 만들어주고 관료들이 그것을 받아쓰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한·미 FTA가 보여주듯, 통상 및 경제정책이 국경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틀을 바꿀 수도 있는 시점에서 매우 시급한 문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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