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대한민국 대표 예언서 ① 정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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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상을 꿈꾸는 민초들의 희망

정감록 활자본(위)과 필사본(아래).

정감록 활자본(위)과 필사본(아래).

이문열의 대표소설, <황제를 위하여>의 소재는 <정감록>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정감록>에서 예언한 정진인(鄭眞人)이다. 소설적 배경은 정감록의 이상향인 ‘남조선’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정감록>에서 예언한 ‘초인’이나 ‘메시아’가 아니다. 자신을 정진인으로 믿는 시대착오적 몽상가다. ‘남조선’ 역시 몽상가가 그려내는 환상의 세계다. 주인공은 자신을 정진인이라 믿는 타협 불가한 허구에 종속된 채 황폐한 삶을 살아간다. 주인공에게 <정감록>의 예언은 현실보다 더 확고한 믿음의 대상이다. 첨단과학과 고도의 기술 등 현대문명을 거부하는 주인공은 사실 피폐한 조선 후기를 살아가면서 새 나라를 꿈꾸는 한 명의 백성이다. 이 소설은 천지개벽에 대한 조선 민중의 희망은 <정감록>을 결속시키는 아교였음을 보여준다.

<정감록>은 조선 중기 이후 백성 속에 유포된 국가의 운명과 백성의 앞날에 대한 예언서로 알려져 있다. <정감록>이라는 단어가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나타나는 건 영조 때다. <정감록>이 활자본으로 처음 출간된 때는 1923년이다. 무려 100여 년 동안 필사와 구전으로 전해내려온 것이다. <정감록-새 세상을 꿈꾸는 민중의 예언서>의 저자인 김탁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은 “정감록은 단일 책자가 아니다”면서 “구전되어오던 40~50개의 작은 예언서를 집대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40~50개 작은 예언서 집대성
그 내용은 조선의 조상이라는 이심(李沁)과 정감(鄭鑑)의 대화 형식으로 조선 이후의 흥망대세를 논하는 것이다. 조선 이후 정씨의 계룡산, 범씨의 완산, 왕씨의 송악왕국 창업을 예언했다. 이들 왕조는 백성에게 새 나라고 희망이 있는 내일이다. <정감록>은 예언의 형식을 띠었지만 조선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맞서 평민 지식인들이 준비한 대항 이데올로기라는 얘기다.

한학자인 정무연씨도 “조선 백성의 바람은 곧 <정감록>에 담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이라면서 “메시지의 핵심은 홍익인간 정신을 결합시켜 행복한 우리 민족의 이화세계이며 정진인은 조선의 기득세력에 대한 가상의 저항 지도자”라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정감록>에 대한 접근방식은 단순한 구조의 해석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역사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백승종 서강대 교수도 “<정감록>은 한국 근대사의 젖줄”이라고 말했다. <정감록>이 조선개혁운동의 한 획을 그은 동학운동은 물론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민족종교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선 <정감록>의 핵심인 참위(讖緯·나라의 운명을 예측함)는 오간 데 없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사심을 앞세운 자가당착적 해석을 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두미재전(頭尾在田)’이라는 부분만 발췌, 자신이 이름의 앞과 뒤에 ‘전(田)’자가 들어간다며 대통령이 될 운명이라고 홍보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정감록>에서 ‘진인이 남해의 섬에서 출현한다’(남조선사상)고 예언했다”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고인이 된 정주영 국민당 총재도 자신을 ‘정도령’이라고 주장했고, 논산이 고향인 이인제 의원은 계룡산의 정기를 받았다고 선전했다. ‘왕조적 사고’를 벗어버리지 못했던 전근대적 예언록인 <정감록>이 현대의 정치인들에겐 신기로운 효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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