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와 문화]‘평범한’ 것으론 안되는 우리 음악계

파격적 가사가 뜬다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의 백지영.

얼마 전 장기하와 얼굴들이란 그룹이 화제로 떠올랐다. 원인은 가사에 있었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누구나 이렇게 진한 페이소스가 담긴 코믹 송을 듣고 있으면 한 번쯤 크게 웃어볼 만하다. 노래의 주인공은 국내 최고 엘리트 코스인 ‘서울대’를 나왔다. ‘눈뜨고 코베인’이란 인디 밴드에 소속되어 있던 그는 2008년 3월 장기하와 얼굴들을 결성하고, 안무 팀 미미 시스터즈를 대동하고 데뷔했다. 지금 이들의 인기는 웬만한 메이저급 신인에 못지않다.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출연한 이후 일간지 인터뷰, 관련 기사도 봇물이다. 홍대 앞에 간만에 ‘스타’가 탄생했다.

가사로 성공한 비슷한 예가 또 있다. 바로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다. “총 맞은 것처럼?” 얼핏 들으면 군대에서 선임병에게 듣던 “야, 너 대XX에 총 맞았냐?” 소리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로 그런 의미를 담은 제목은 아니다. 노래가 실제로 지칭하는 ‘총 맞았다’는 말은, 마치 총 맞은 것처럼 가슴에 구멍이 나 사랑과 추억이 줄줄 새고 있다는 뜻이다. 직접 가사를 들어보면 왜 굳이 제목을 이렇게 지었는지 수긍이 된다. “구멍 난 가슴에 우리 추억이 넘쳐흘러/ 잡아 보려 해도 가슴을 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실연의 아픔을 겪는 것과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상황을 기가 막히게 잘 연결시켰다. 제목을 보았을 때 일어나는 호기심과 실제로 들었을 때 공감되는 기발함이 합쳐져 <총 맞은 것처럼>은 지금 숱한 아이돌 경쟁 속에서도 유일하게 발라드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사랑 안 해> 이후로 잠시 주춤하던 백지영의 인기도 단숨에 정상을 탈환했다.

올해 하반기엔 유독 가사와 관련한 이슈가 많다. 장기하의 웃음 유발, 백지영의 파격적 제목, 비의 선정성 논란에 이르기까지, 올해 전반기가 ‘1990년대 스타들의 귀환’으로 뜨거웠다면, 올 하반기에는 배를 잡게 웃기는 가사, 낯 뜨거운 가사, 파격적인 가사,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가사로 이슈가 북적댄다. 비는 가사 중 ‘Magic stick’이란 단어가 남성의 성기인지 지팡이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고, 휘성의 <별이 지다>는 이것이 실화냐 아니냐를 두고 오해와 해명이 오갔다. 개그우먼 김신영은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노가리’로 바꿔 불러 큰 웃음을 주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는 확실히 우리 음악계가 ‘평범한’ 것으론 더 이상 승부가 안 나는 게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순한 성격에 그저 보고만 있으면 도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떻게 해서든 웃기고, 자극하고,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겨우 듣는 시대에 왔다.

시사와 문화

표현이 더 선정적이고 직설적이 되는 것은 대중문화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계속 심화해 온 것이니 고루하게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진 말자. 우리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섹시 콘셉트의 범람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만 이 변화의 근저에 놓인 정황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더욱더 깊어진 이러한 자극은 분명 개혁이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생존과 필요에 따른 적응일 뿐이다.

이대화<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