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의 ‘오바마 인맥’ 어디 없소

정치권 미국 민주당 인맥 상대적 취약…
재계서도 ‘인연의 끈’ 찾기 분주

제 44대 미국 대통령에 흑인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당선했다. 언론은 연일 오바마의 당선으로 232년의 미국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난리지만 미국 밖의 나라들은 초강대국 미국의 새로운 리더와 인맥찾기에 부산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오바마 당선자가 한국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대북정책 등에서 부시 행정부와 명확하게 다른 노선을 취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오바마 당선자의 인맥을 찾는 데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특히 한나라당을 배경으로 현정부는 미국 공화당과 지난 8년간 공식, 비공식 라인이 비교적 두텁게 형성돼 있는 반면, 민주당과는 인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오히려 야당인 민주당이 오바마와 인맥이 두터운 형국이다. 이에 따라 여권은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당과 교류했던 의원을 중심으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정도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오바마 당선자는 연방상원 의원으로 4년밖에 활동하지 않는 등 중앙 정치 무대 경력이 짧아 한국의 정·관계 인사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취약해 더더욱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밝혔다.

재계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바마 당선자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한국과 체결한 FTA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바마가 지금까지 미국 중앙정치무대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갑자기 부상한 인물인데다 국내 재계와 교류도 없어 사실상 인맥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면서 “앞으로 FTA 등 국내 산업계에 적지않은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이지만 큰 틀은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민주당이 더 밀접

2005년에 열린 한국 하버드 총동문회.

정치권에서 오바마 인맥은 거의 전무한 가운데 박진·황진하 의원 등이 그나마 인연이 닿을 뿐 사실상 오바마 당선자 측과 연결될 만한 창구가 거의 없다. 최근 8년간 미 집권세력인 공화당과 민주당 주류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쪽에 외교력을 집중한 탓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오바마와 부인 미셸이 모두 하버드대 로스쿨 을 나왔지만 변호사 생활을 대부분 시카고 지역 소규모 민간단체에서 했다”면서 “한국 인사들과 교류할 만한 기회가 사실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LA에 있는 옥시덴탈 칼리지를 다니다 동부의 명문인 컬럼비아대에 편입해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지역사회 운동가로 일하다가 ‘하버드대 로스쿨’을 수료했다.

한국 하버드총동창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동창회에 등록된 전체 한국인 동창 수는 1800명 정도고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은 100여 명이지만 동문회에 등록, 파악이 가능한 사람은 20여 명 정도다. 법조계 인사로는 김&장법률사무소의 김영무 대표변호사, 장세원·현찬욱 변호사가 있고, 법무법인안세의 강기원 변호사, 법무법인KCL 이건개 변호사. 개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경훈·김성수·신희정·오영호·이국헌·정현 변호사가 있으며 1999년 대전 법조 비리사건 당시 현직 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법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해 이목을 끈 문흥수 변호사도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이다.

학계에는 한양대 박대근 교수가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이다. 이밖에 동문회에 등록되지 않은 로스쿨 졸업자도 상당수다. 청와대에서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과 신혜경 국토해양비서관 등이 하버드대 동문이지만 오바마와 특별한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승덕 의원과 강용석 의원은 같은 로스쿨 출신이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에서 그나마 인연이 닿는 인사는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당과 교분이 있었던 박진 의원 등 외교통 의원들이 꼽힌다. 국회 외교통일통상 위원장 박진 의원은 김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통역 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 인연을 맺은 이후 친분관계를 이어왔다. 박 의원은 또 바이든 후보의 핵심 참모로 차기 미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 거론되는 프랭크 자누지와도 막역하다.

또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본인이 수학한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출신 민주당 인맥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클린턴 정부 말기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에서 근무한 황진하 의원도 오바마 후보의 국방분야 자문을 맡고 있는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을 비롯해 로버트 아인혼 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 등 민주당 국방인맥과 연결된다. 한나라당은 당 차원에서도 별도의 방미단 파견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한미의원외교협의회장인 정몽준 의원을 비롯해 미국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윤상현 의원, 씨티은행 부행장 출신의 조윤선 의원, 하버드대 출신인 홍정욱 의원 등도 미국 내 오바마 인맥 쌓기에 나서고 있다. 당 실무진 중에선 백기엽 국제국장이 프랭크 자누지와 10년이 넘는 막역한 교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 황진하, 송민순, 송영길, 김민석.(왼쪽부터)

야권에서는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오바마 후보와 안면이 있는 인사로 통한다. 송민순 의원은 장관 시절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고 송영길 의원은 오바마가 대선주자로 떠오르기 전인 지난해 1월 미 상·하원 개원 리셉션 때 만난 적이 있다. 이밖에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 미국 체류 시절 오바마 후보와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은 지난해 오바마 후보를 한국에 초청하는 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자유선진당은 이회창 총재가 오바마 후보를 지지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친분이 두텁고 이영애 의원이 하버드대 한국총동문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어 이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 밖에 지난해 대선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캠프에서 정무특보를 지낸 김헌태씨도 오바마 캠프에서 일하고 있는 재미동포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김승연 회장 오바마 측 인사들과 두터운 인맥
재계도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오바마에 대한 인맥풀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지만 오바마 당선자 측과 소통 창구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2000년부터 한미재계협회회장을 맡고 있다. 조 회장은 오는 18일 열리는 ‘금융위기와 미국 차기정부의 정책’ 세미나에서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자문 보좌관을 지낸 새뮤얼 버거를 초청하는 등 미국 민주당과 연결 통로를 찾는 데 힘을 기울일 예정이다.

김승연.

또 조석래 회장의 둘째아들인 조현문 효성 부사장이 오바마 당선자와 같은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단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오바마 측 인사로 민주당 중진의원인 에니 팔레오마바에가 의원과 얼 포머로이 의원과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하원 국제관계위 아태소위 위원장인 팔레오마바에가 의원은 향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다. 미 하원 세입위의 포머로이 의원 역시 자녀를 한국에서 입양한 지한파로 알려져 있다. 김 회장은 선친인 김종희 전 회장이 한미친선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구축한 미국 인맥을 이어받아 정당 구분 없이 미국 쪽 인사와 깊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2003년에는 방한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프라자CC에서 라운딩하면서 ‘멀리건 우정’을 쌓는 등 민주당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특히 클린턴 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의 든든한 후견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삼성에서는 오동진 북미총괄 사장이 핵심 인물로 꼽힌다. 클린턴 정부 때 삼성전자를 이끈 윤종용 상임고문도 민주당 쪽에 폭넓은 인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에서는 현대중공업 최대 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힌다. 그는 오랜 미국 생활에다 정치적으로도 미의원외교협의회장직을 맡고 있어 미국의 정·관계 인사와 친분이 있다. 풍산금속의 류진회장은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특별히 절친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미 공화당과 민주당과의 인맥도 두텁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 미래와사람의 전병현 회장은 오바마와 직접 인연은 없지만 재계에서 몇 안 되는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이다.

재계에서는 미국에 공장이 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새 정부의 인맥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현지 사무소의 인력을 확대할 예정이며, 금호아시아나·두산 등도 미국 공장 증설과 기업인수 등의 형태로 미국에 진출하면서 쌓아놓은 미국 내 네트워크를 이용해 인맥을 확충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유진 강·라이언 김·준 최·샘 윤 등 미국 내 한인 교민사회 인맥 두각
이번 오바마의 당선에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한 한인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인사회에서 오바마에 가장 가까운 인사로 꼽히는 이는 유진 강(24)씨다. 유진 강은 선거 초반부터 오바마의 일정을 책임지며 ‘정치 참모’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시간대 3학년에 재학 중인 2005년 미시간 주 앤아버 시의원 선거에 도전해 돌풍을 일으켰으나 고배를 마셨던 강씨는 오바마가 시카고에 본부를 두고 만든 후보출마준비위원회의 정치분과 14명 위원 중 한 명으로 올라 있다.

조석래, 류진, 김동석 한인유권자센터 소장, 준 최 애디슨 사장. (왼쪽부터)

시카고에 있는 선거 총본부의 아시아계 미국인 담당 부책임자 벳시 김(44) 역시 초창기부터 오바마 선거 캠프에 적극 관여하면서 상근 간부 자리에 올랐다. 교포 2세인 벳시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상대로 홍보 전략을 지휘했다. 애리조나대와 포모나대를 졸업한 그는 워싱턴의 아·태계 미국인 변호사협회장, ‘아시아계 미국인 행동 펀드’ 이사를 맡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들 유급 간부 외에 뉴욕·뉴저지·코네티컷 3개 주의 오바마 후보 지지 아시아계 미국인 모임인 ‘오바마를 위한 동부지역 아시아 연대’의 회장을 맡고 있는 라이언 김(한국명 김대용·32)은 자원봉사자 출신이지만 캠프 핵심으로 분류된다. 그는 오바마의 하버드대 법대 동기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중국계 테레스 양 변호사와 친분이 깊고, 백악관 행정요원으로 발탁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한국인으로는 가장 높은 직위에 오른 백악관 장애위원회 정책보좌관 강영우(64) 박사는 20년 동안 줄곧 공화당 노선을 견지했지만 이번에는 오바마를 지지했다. 강 박사의 두 아들 중 둘째 진영(32)씨는 오바마와 하버드대 동문으로 미 의회 상원 본회의장의 다수당 운영국장으로 오바마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오바마의 당선 이후 바로 백악관 입성이 점쳐지는 인물이다.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석(50) 소장도 적극적인 오바마 측 활동가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과 당내 경선 때부터 오바마를 지지하면서 한인 사회와 오바마 측의 네트워크를 위해 라이언 김을 적극 후원했고, 이번 총선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을 위한 한인 상대 후원금 모금 행사에 적극 나섰다.

이밖에도 뉴저지 주에서 5번째 규모의 지방자치단체인 에디슨 시의 준 최(37) 시장, 샘 윤(38) 보스턴 시의원 등도 적극적으로 오바마 후보의 지지 활동을 벌인 한국계 정치인으로 꼽힌다. 특히 준 최는 오바마가 직접 선거지원 유세를 벌였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