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이야기 03-바빠진 대선 정국

‘문재인 후보 대세론’이냐 제3지대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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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대표 민주당 탈당… 중도 세력 결집 가능성

앞으로 대통령 선거까지 60일 동안 ‘문재인 후보 대세론’이 주도할 것인가, 아니면 제3지대론이 주도할 것인가.

3월 10일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판결 이후 정치권이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바로 코 앞에 대통령 선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후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이 정치권을 압도했다. 하지만 헌재 판결 전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3월 8일 김종인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했다. 김 전 대표는 문 대세론에 힘조차 펴지 못하고 있는 중도세력을 결집해 제3지대론으로 맞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김종인, 킹일까 킹메이커일까

김 전 대표가 목표로 하는 빅텐트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중간지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가 탈당 전후 만난 인물도 손학규·유승민·남경필 등 두 정당에 몸 담고 있는 대선후보들이다. 이들 후보는 김 전 대표의 탈당을 반겼다. 반가움의 하나는 민주당 문 후보의 대세론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김 전 대표가 문 후보의 대세론에 맞서 ‘1대 1’ 구도를 만들 수 있을 구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김 전 대표가 ‘킹 메이커’를 자처해 제3지대에 빅텐트를 칠 구심적 역할을 할지, 아니면 본인이 직접 ‘킹’이 될 욕심으로 대선판에 끼어들지는 알 수 없다. 김 전 대표는 탈당 때 “‘순교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파악하면 내가 뭘 하려는지 알 수 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제3지대에서는 ‘순교’의 의미를 ‘킹 메이커’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의 측근은 “김 전 대표가 3년짜리 개헌 대통령이 아니라 책임총리를 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가 제3지대의 킹 메이커를 자처할 경우 역시 킹 메이커 역할을 맡고 있는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함께 ‘제3지대 후보 단일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양 축으로 해서 자유한국당의 일부와 민주당 일부를 묶는 방식이다. 자유한국당에서는 골수 친박을 제외한 세력을 포함시키고, 민주당에서는 김종인계 또는 비문계(비문재인계), 개헌 추진 의원들을 제3지대로 이끈다는 구상이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3월 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3월 1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의 피켓 앞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권 일부에서는 김 전 대표가 ‘킹’ 욕심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전 대표가 직접 대선에 출마할 경우 안철수·손학규·정운찬·유승민·남경필·홍준표 등의 후보와 일정한 단일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 측은 “김 전 대표가 탈당했으니, 자유한국당에서 군소 후보를 낼 것이 아니라 김 전 대표를 미는 방식이 낫다고 본다”며 희망을 피력했다. 문재인 캠프의 한 인사는 “탈당 행보를 보았을 때 킹 메이커가 아니라 킹이라고 본다”면서 “하지만 킹 행보를 할 경우 제3지대의 다른 대선후보들을 잘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제3지대론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가 직접 출마하게 되면 다른 대선후보와의 이해득실 때문에 충돌하게 되고, 단일 후보를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김 전 대표 자신이 대권후보가 된다고 하면 제3지대론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만약 킹 메이커가 된다고 한다면 제3지대 후모가 문 후보와 맞설 희미한 가능성이라도 남게 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가 노리고 있는 제3지대의 고리는 개헌이다. 국회 개헌특위에서는 토론을 거쳐 개헌안을 마련하고 있다. 당초 국회 개헌 추진파 일부 의원들은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까지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대선일에 맞춰 역순으로 계산하면 국회 개헌특위가 헌법개정안을 의결하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본회의에 제안하는 과정이 3월 말까지 완료돼야 한다. 헌법 개정안 공고(20일 이상)와 국회 의결(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국민투표안 공고(최소 18일)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 60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게다가 민주당에서 대세론을 쥐고 있는 문 후보는 대선 전 개헌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의 입장을 나타냈다. 민주당 개헌추진파 의원의 한 관계자는 “대선 전 최소한 개헌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제3지대론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어서야 한다. 단일 후보를 뽑기에 일단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국민의당은 안철수-손학규-천정배 후보의 경선을 놓고 룰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바른정당 역시 룰 싸움은 마찬가지다. 각 당의 후보를 뽑은 후에 단일화에 나설 경우 또다시 어떤 룰로 뽑을지 씨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5월 9일 대선 투표가 실시될 경우 4월 15∼16일 대선후보를 등록하고 곧바로 선거운동에 들어가야 한다. 한 달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최소한 4월 초에는 단일 후보에 대한 구도가 잡혀야 한다”면서 “하지만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시간이 짧아 문 대세론이 굳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3지대론의 가장 큰 변수는 안철수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안 후보 측은 김 전 대표의 탈당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안 후보 측의 한 관계자는 김 전 대표의 탈당 후 행보에 대해 “노욕”이라고 표현했다. 안 후보 측은 대선에서 문 후보와의 1대 1 대결을 꿈꾸면서 이 구도로는 이길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안 후보의 입을 통해서도 부정적인 견해가 언급됐다. 안철수 후보는 3월 7일 김 전 대표의 탈당 언급에 대해 한 방송에서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지 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개헌을 고리로 한 제3지대 연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표가 탈당 후 여러 인사를 만나면서 안 후보에 대해 자신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 후보는 손학규 후보와 경선 룰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런 과정에서 김 전 대표 변수가 돌출됐고, 김 전 대표가 손 후보와 만나 제3지대 연대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황태순 평론가는 제3지대론의 필수조건을 “김 전 대표와 안철수 후보의 의기 투합”으로 보았다.

[표지 이야기 03-바빠진 대선 정국]‘문재인 후보 대세론’이냐 제3지대론이냐

‘문재인-제3지대-심상정’ 3자 구도 구상

후보들의 상황도 복잡하지만 각 당은 탄핵 이후 ‘분화’의 기로에 서게 됐다. 가장 복잡한 곳은 자유한국당이다. 탄핵 각하를 주장했던 친박파, 한국당이 살아남기 위해 친박의 자진탈당을 기대하는 중립파, 바른정당으로의 탈당 모색파 등이 얽혀 있다. 대선후보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밀자는 쪽과 대법원 판결을 감수하고라도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밀자는 쪽, 대선후보 옹립을 포기하고 제3지대에 힘을 싣자는 쪽 등 다양하다.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청산을 분명히 하지도 않았고, 탄핵 각하에 기대를 거는 바람에 차기 대선에서 시기와 명분을 모두 놓쳤다”면서 “현실적으로 뚜렷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황태순 평론가는 “보수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과 제대로 1합을 겨루기 위해서라면 결국 자유한국당 후보로는 되기 힘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결국 남는 것은 보수 유권자들이 응원하는 제3지대 후보와 문 후보의 1대 1 대결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른정당은 김무성계와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개혁파, 유승민계 등이 경선 룰뿐만 아니라 정책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탄핵 이후에도 이런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사정이 더 복잡하다. 호남이 지역구인 의원들과 안철수계의 셈법이 전혀 다르다. 손학규 후보 측과의 갈등도 부각됐다. 사드 배치나 촛불집회에 대한 의견도 제각각이다. 여기에다 김 전 대표와의 연대 문제도 각 후보 간, 당내 인사 간 갈등의 고리로 작용할 조짐이 보인다.

제3지대 후보의 주장과 정책, 그리고 캠프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각양각색이다. 당초 정치권의 흐름은 문재인-안철수-유승민-홍준표-심상정 후보’의 대결이라는 5자 구도로 예측했다. 김 전 대표가 이 물길을 ‘문재인-제3지대 후보-심상정’의 3자 구도로 만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물론 제3지대 후보에 김 전 대표 자신이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전 대표의 탈당 후 ‘문재인-안철수-제3지대 후보-심상정’ 4자 구도를 점치는 인사들이 많다. 4자 구도를 만드느냐, 아니면 3자 구도를 만드느냐에 따라 김 전 대표의 역량이 드러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대표가 3월 8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승강기를 타고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대표가 3월 8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승강기를 타고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문 대세론의 위기는 외부 아니라 내부”

김 전 대표가 2012년 총선·대선, 2016년 총선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지금 조기 대선국면에서 이런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 헤쳐 하나로 묶을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라섰다. 개헌-반패권-제3지대라는 고리 이외에도 그 이상의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김 전 대표의 인적 네트워크가 총동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비문의 한 의원은 “김 전 대표의 주변 분들이 여러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탄핵국면을 보면 정치인이 시대정신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촛불민심이 시대정신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덧붙이면서 김 전 대표 사람들로는 이 국면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에다 민주당의 대세론을 흔들고 민주당 의원들까지 제3지대론에 포함시켜야 김 전 대표의 능력이 그나마 빛을 보게 된다. 황태순 평론가는 “김 전 대표가 짧은 시간 안에 제3지대의 그림을 만들 리더십이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제와 전략그룹 다모아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지금 제3지대에서는 김 전 대표보다는 오히려 안철수 후보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세론의 혜택을 보고 있는 민주당은 국민경선의 2차 선거인단 모집기간을 놓고 문 후보 대 안희정·이재명 후보 간 갈등이 노출됐다. 비문 의원들은 국민경선 분위기 확대를 위해 2차 선거인단 모집기간을 7일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10일 동안으로 결정됐지만 논란이 불거졌다. 개헌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도 민주당은 개헌 유보파와 개헌 추진파 간에 갈등의 골이 파였다. 하지만 김 전 대표의 탈당으로 인한 대세론의 균열은 미미하다. 민주당 국민경선에서도 문 후보의 선호도가 압도적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실시될 결선투표의 가능성도 희미해지고 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심리 덕분에 민주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했다.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탄핵 이후 일단 정권교체 프레임은 조금 벗어났다”면서 새로운 국면을 다른 틀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문 대세론은 견고하지만 불안한 요소가 아직 있다”면서 “김 전 대표의 탈당과 안보·경제위기 등이 대세론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 대표는 “아무리 조기 대선이라고 하지만 역대 대선은 유권자 균형심리가 있어 거의 5대 5로 귀착된다”면서 “지금은 7대 2(진보 대 보수)인 촛불민심이 대선에서는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 대세론의 위기는 오히려 외부가 아니라 내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엄 대표는 “그동안 촛불민심 덕분에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공짜점심을 먹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대선 검증대에 오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윤태곤 실장은 “문 대세론을 허물 가능성이 있는 요인은 김 전 대표가 아니라 바로 문 후보 자신”이라면서 “탄핵 이후에 문 후보는 자신이 준비된 대통령감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대세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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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