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북한 붕괴론’ 집념에 북핵대응 소홀

보수정부 8년 동안 ‘제재와 압박’에 치우져 비핵화 방안은 제시 못해

북한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은 이를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한다. 한 달 후, 2월 7일 북한은 광명성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여 우주에 인공위성을 띄웠다. 우리 정부는 이를 장거리 미사일 도발이라고 말한다. 1월 6일과 2월 7일 사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은 분주해졌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제재보다 북한을 6자회담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대북제재법안을 통과시켰고, 일본은 대북송금을 사실상 금지했다. 장거리 로켓 발사 당일 오후, 한국과 미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0일 전격적으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하고, 북한은 2월 11일 오후 5시30분에 개성공단의 모든 자산을 동결시켰다. 정부는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사실상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주장의 근거는 매우 빈약했다. 결국 124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사업장을 잃게 되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를 자신을 위협하는 ‘칼춤’으로 비유하며 매우 날카로운 위협인식을 드러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대사를 초치하여 강력항의했다. 그러나 한·미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음 달 한·미 연합훈련에 동원될 미국의 핵잠수함, 핵추진항공모함, 핵폭격기 등과 같은 미국의 전략무기들이 한국에 도착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2015년 10월 ‘백두산 영웅 청년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협상은 사라지고 강력한 정책 일변도
지난 20여년간 지속된 미완의 북핵문제가 한국과 미국의 대북 피로감을 높였다. 누적된 피로감은 북핵을 사실상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방기하게 했다. 4차 핵실험 이후 한·미·일은 많은 외교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협상을 선택하기보다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동원하고 있다. 더 이상의 협상보다는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제재를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서슬퍼렇다. 협상론은 더 이상 정책 선택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한·미·일은 드디어 ‘북핵의 긴 피로감’을 극복한 것인가? 이러한 강력한 ‘제재 에너지’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왜 한국과 미국은 협상보다 강력한 제재 일변도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2월 4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움직임을 “북한의 오판”이라고 경고하며, 이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유엔 제재를 통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발표한 성명이다. 박 대통령의 ‘북한 붕괴론’이 처음으로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이다. 제재 일변도를 추진하는 박 대통령의 정서는 국회 연설에서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2월 16일 오전 ‘국정에 관한 국회 연설’에서 북한에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하며, “북한정권이 핵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북한에 경고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래 가장 명확히 ‘제재하면 붕괴할 것’이라는 북한의 ‘체제붕괴’를 언급한 순간이었다. 이 북한 붕괴론이 현 강경 일변도 정책의 인식적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북한 붕괴론의 역사는 길다. 1990년대 초 독일 통일,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 전환, 소련 해체, 그리고 냉전의 종식이 진행되면서 북한도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시각이 등장했다. 1990년대 중반.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북한의 식량위기, 그리고 김정일 권력 승계의 불안정이라는 변수는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예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실제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갑자기 통일이 눈앞에 닥쳐올지 모른다”고 언급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 기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은 ‘북한 붕괴론 2.0’이라고 할 수 있는 급변 사퇴로 그 이름을 바꾼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7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만나 김정일의 수명이 201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며, 북한의 붕괴를 포함한 급변사태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미 양국은 한반도 통일을 향해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천영우 외교안보 수석 역시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고,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 2~3년 내에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북한 붕괴론에 대한 신념은 위키리크스에도 자세히 드러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이명박 정부 고위 관료들은 “궁지에 몰린 북한이 점점 취약해지고 있어 강경하게 나가면 북한의 강경정책을 완화시키거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밝히며, 북한의 이러한 평가는 “이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2011년 6월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통일재원 마련을 위한 통일 항아리 사업을 시작했다. 20대 후반의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하고, 북한 내부 지도부의 잇단 숙청 등은 ‘과연 북한이 정상인가’라는 회의론에 힘을 실어 주었고, 북한도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시각이 통일대박론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시각을 제도화한 것이 통일준비위원회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통일대박론’은 사실상 북한의 급변사태론을 이명박 정부 시기에 전파했던 관련 분야 학자와 보수성향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에 의해 강력한 사회현상으로 등장한다.

통일만 강조, 과정 속 해결과제는 소홀
지난 8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 의지가 전제되지 않는 한, 남북 교류 및 협력의 확대가 어렵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보수정부는 ‘북핵 불용’이라는 선명한 원칙을 천명했지만, 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실효적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진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보수정부는 ‘비핵개방 3000’,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그리고 ‘통일대박론’과 같은 정책과 선언의 모호한 언저리를 맴도는 대북정책을 유지한 채, 제재와 압박이라는 망치를 놓지 않았다.

통일대박론은 어떠한 통일이 과연 우리에게 ‘대박’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과정론과 방법론 등 다양한 시각들이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지 못했으며, 당위로서의 통일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에 그쳤다. 통일준비론은 통일이라는 원칙적 당위만 강조한 나머지, 통일과정 속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북한의 비핵화 추진 방법론을 소홀히 한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지난 8년간 북핵을 관리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의 구축은 사라졌다. 결국 북한 붕괴론은 비핵개방 3000에서 통일대박론으로 변형되며, 대북정책의 스펙트럼을 압박과 제재로 좁히고 만다. 역설적으로 지난 3년, ‘통일준비위원회’ 대신 ‘한반도비핵화추진위’가 있었더라면 현재 북핵에 대응하는 정책적 상상력이 지금처럼 빈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보수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이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북한의 급변사태론, 박근혜 정부 3년간 통일대박론이라는 간판만 바꾼 것일 뿐, 사실상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다는 데 있다. 즉, ‘급격한’ 북한의 붕괴가 비핵화는 물론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자기위안적 희망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강력한 제재 행보 이면에는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북한을 끝낼 수 있다”는 북한 붕괴론에 대한 집념이 존재한다.

<최종건 연세대 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