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기 싫어한다고?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영국이나 일본-프랑스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땅의 2030의 얘기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002년 기준으로 1.17명 수준이다. 미국(2.13명)-프랑스(1.89명)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고, 저출산율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영국(1.64명)-일본(1.33명)보다도 낮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가히 세계 최저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이다. 혹자는 선진국은 출산율이 낮으니까 우리나라도 이런 점에선 확실한 선진국이 아니겠느냐고 하지만,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낮은 것과 출산율이 낮은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다. 특히 저출산율이 계속될 경우에는 생산인구와 노동력의 감소로 이어지고, 다음 세대의 국가경쟁력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10월 이화여대 학보에서 실시한 이화여대생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31% 정도였다.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임신과 출산의 권리를 포기하겠다는 사람이 셋에 하나꼴이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유로 응답자의 33%는 '자녀 양육-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과 사회제도-시설의 부족'을, 21%가 '나의 자아실현이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도 19%를 차지해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출산계획률 감소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없는 여대생의 소녀적 발상이나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는 특정 학교 학생만의 문제도 아니다. 2030세대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대개 결혼을 하고, 결혼하면 누구나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가치가 급격한 변화를 이루는 과도기인 점을 감안할 때 몇 년 후가 되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이 훨씬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2030이 늘어난 이유는 우선 맞벌이로 인해 육아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었다는 점이 꼽힌다. 사립시설에 맡기자니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공공시설에 맡기려니 얼마 안 되는 수용 인원 때문에 1~2년씩 기다리거나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 부모님께 맡기자니 노후를 두 사람이 편히 즐기겠다는 통크(TONK, Two Only No Kids, 둘만의 즐거운 노년을 위해 자식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손자-손녀의 육아를 감당해주지도 않겠다는 6070세대)적 경향이 늘어나서 그것도 힘들다. 그렇다고 직접 육아를 하자니 맞벌이를 하지 못해 생계가 원활치 못하다. 정부에서 아무런 지원이나 방법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출산과 육아를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그동안은 6070이 손자-손녀를 대신 봐주는 수고를 당연시 했기에 우리나라가 1.17이라는 출산율이라도 지켜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젠 통크족의 확산으로 그나마도 어렵게 된 셈이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2030이 늘어나는 것은 그들이 2세의 출산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게을리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두려워해서 이를 피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육아와 탁아를 방치할 수 없는 현실이 그들에게 아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가 귀찮은 게 아닙니다. 우리 둘 부부의 삶이 너무나 소중해 그렇게 간직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개설된 딩크족 카페(cafe .daum.net/dink)의 캐치프레이즈다. 이곳에는 1,7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그들에게 아이는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남편과 상의해서 당분간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결혼하고 5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해볼 거예요. 물론 사회적인 환경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는다면 아예 안 낳을 생각도 있어요"

대학원생이며 프리랜서로 일하는 전모씨(28)의 말이다. 그런 그도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만 주어진다면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박모씨(32)도 비슷한 생각이다. "맞벌이라 아이 낳고 기르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부모님이 손자-손녀를 얼른 보게 해달라고 성화여서 고민 중이예요. 손자 보여드리는 게 효도지만, 막상 아이를 낳으려면 아내가 일을 관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맞벌이하지 않으면 대출금 갚기도 어렵고, 30대도 명퇴당하는 게 현실이라 맞벌이를 쉽게 관두질 못해요."

출산과 육아에 대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2030의 현 주소다. 분명 2030부부도 아이를 낳고 싶어한다. 그들의 2세를 통해 사회적 책임도 다하고 싶고, 아이와 함께 좀더 화목한 가정도 이루고 싶다. 다만 그것을 개인적 책임으로만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아이 낳고 싶은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과연 이런 날이 언제나 올까.

김용섭-전은경씨는 각자 대학강사와 칼럼니스트, 테크니컬라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형적인 2030부부로서, 앞으로 '2030부부 이야기'를 통해 신세대 부부의 결혼관과 부부문화, 각종 부부 관련 이슈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김용섭-전은경[부부칼럼니스트] www.webmedia.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