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규제강화가 경제 위기 해법이다

탐욕의 종말
폴 메이슨 지음 | 김병순 옮김 | 한겨레출판 | 1만3000원

2008년 9월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이후 월가 주요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쓰러지거나 휘청거렸다. 부시 행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공짜는 없었다. 부실채권을 사는 대가로 해당 은행에 대해 소유권을 행사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미국만이 아니었다. 프랑스와 영국도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은행 지분을 소유하기로 결정했다. 아이슬란드는 주요 은행을 아예 국유화했다. ‘국가 개입 배제’라는 신자유주의의 철칙이 무너졌다.

신자유주의의 대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의 후예들은 충격에 빠졌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 의장은 지난해 10월23일 청문회에서 “나는 은행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주주를 최선을 다해 보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가정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라고 시인했다. 영원히 저물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신자유주의의 영토에 조종이 울려퍼졌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가. <탐욕의 종말>은 지난해 가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의 진행 과정과 원인을 추적한 책이다. BBC 경제 에디터 폴 메이슨은 2008년 9월과 10월 미국 워싱턴과 뉴욕,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금융 붕괴 현장을 순발력 좋은 방송 리포트처럼 요약한 후 시계를 9년 전으로 되돌린다.

1999년 11월11일 워싱턴. 발의자인 필 그램 공화당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이 이날 통과됐다. 이로써 투자은행이 일반인 예금을 받지 못하게 금지해 온 글라스-스티걸법이 폐기 처분됐다. 글라스-스티걸법은 1929년 대공황에 대한 반성으로 금융산업 전반에 대해 엄격한 규제조항을 둔 법이다. 이보다 앞서 1987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상업은행이 총거래액의 5%까지 영리 목적의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허용했다. 1996년 그린스펀은 이 한도를 25%까지 늘렸다. 동시에 서로 다른 주 은행끼리 합병을 금지한 법을 폐기하고 보험업과 은행업 분리 조항도 없앴다. 이 모든 일은 ‘금융서비스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규제가 완화된 자리에 투기 거품이 끓어올랐다.

금융 위기는 표면적으로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에서 비롯했다. 서브프라임 부실이 금융 위기로 이어지는 데 결정적인 고리 역할을 한 것은 ‘구조화 금융’이라 불리는 복잡한 금융기법이다. 전문가조차 혼동할 정도로 복잡한 연속적인 파생금융상품의 연쇄고리로 구성된 이 구조화 금융 덕분에 부채상환 능력을 초과하는 투자의 위험이 과소평가됐다. 그러나 부채는 잘게 쪼개지면서 일시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 그 총합은 엄청난 규모로 증식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유가상승에 따른 금리 상승 충격이 겹치면서 결국 거품은 터졌다. ‘자유와 경쟁’을 찬양하며 개인과 기업의 탐욕을 무한히 긍정한 신자유주의는 그 내부에서 파열했다.

이주의 책

저자는 경제학자 민스키가 제안한 ‘금융체계의 사회화’가 유력한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 핵심은 금융 부문의 국영화, 투기금융에 대한 엄격한 제한, 대기업의 영향력 제한 등이다. 저자가 보기에 선진국 경제는 이미 이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규제는 악’이라고 믿는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눈이 없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