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난방비 대란, 시계를 되돌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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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급등한 난방비가 서민 경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서울의 한 가스계량기의 모습. / 연합뉴스

연초부터 급등한 난방비가 서민 경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26일 서울의 한 가스계량기의 모습. / 연합뉴스

난방비 문제가 대란으로 번졌다. 집마다 예상치 못한 요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이 거주하고, 지은 지 20년 지난 제주 시내의 아파트인 우리 집(26평형)은 12월 도시가스비가 24만원 나왔다(제주에선 시내만 도시가스 사용이 가능하다). 겨울에도 웬만하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제주에서는 놀라운 요금이다. 방마다 난방 조절이 불가능한 아파트라 요금 고지서를 받은 이후 최대한 난방을 덜 가동했더니 자녀들이 감기에 걸렸다. 마침 자녀들이 방학이라 집에 머무는 시간도 길었다. 감기에서 회복한 최근엔 적극적으로 낮시간에 외출해 난방 가동을 최소화하고 있다.

문제는 난방비가 한계선상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또한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예상치 못한 비용은 누구에게나 부담이다. 마침 ‘12월 난방비’ 고지서를 받고 설 연휴를 맞았다. 난방비가 여러 곳에서 화제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설 연휴 직후인 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남녀 15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통령 지지율은 37%를 차지해 전주에 비해 1.7%포인트 하락했다.

정치권은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업자원부는 1월 26일에 이어 2월 1일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각 당에서도 난방비 대책을 발표했다. 이런 움직임은 실로 기이하다고 볼 수 있다. 가스요금은 이미 2022년 4월과 5월(문재인 정부 시기), 7월과 10월(윤석열 정부 시기)에 인상됐다. 전년 동기 대비 38%가 올랐다. 이 정도도 원가를 충분히 반영한 요금이 아니어서 한국가스공사(가스공사)는 2022년 연간 영업적자가 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난방비는 겨울철을 제외하면 사람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문제가 아니지만, 정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 정부는 왜 사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일까.

이런 에너지 위기는 분명 다시 온다. 그때를 위해서도 4개월 전으로 돌아가 정부가 무엇을 해야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 지금 논의되는 주요 해법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다뤄보려 한다.

4개월 전으로 돌아간다면

가스공사는 지난해 10월 1일부터 인상된 요금을 공지했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날부터 용산의 대통령실이나, 국무조정실 혹은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가스요금 대응 태스크포스를 만들었어야 했다. 가장 적합한 곳은 대통령실이다. 이 대응은 단순한 지원 정책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고 호소해야 하고, 정부가 솔선해서 대대적인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참여를 요청하는 주체는 장관이나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마땅하다.

정부는 공공시설에서 불필요한 곳의 난방을 줄이고, 무더위 쉼터처럼 시민들이 추위를 피할 쾌적한 공간들을 마련하고 알려야 했다. 도시가스(LNG)는 전력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전기를 아낄 방안을 마련하고, 대중교통 이용에 혜택을 주는 방안 등 가스뿐 아니라 에너지원 전반에 대해서도 ‘저소비 체계’를 만들었어야 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것처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선제적으로 나왔어야 마땅했다. 그래야 취약계층은 지원을 예상하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의 난방을 이용하고, 사각지대도 줄어든다. 노후주택 단열 개선, 주택·아파트·건물 지붕에 태양광판 설치 등 그린 리모델링을 진작에 준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적극 추진해야 했지만, ‘신재생에너지 대신 원전 확대’라는 희한한 쇄국정책을 펴는 이 정부에겐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에너지를 절약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메시지라도 적시에 나왔어야 했다. 만일 10월 초에 가스비 대응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면 한국전력의 부채 방치로 채권시장을 일대 혼란에 빠뜨린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10월 말에라도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정부가 레고랜드 사태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이는 무능을 넘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에 해당한다. 비슷한 위기는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온다. 부디 다음 위기 땐 대처가 다르길 바랄 뿐이다.

이 연재를 계속 지켜본 눈 밝은 독자라면 눈치챘겠지만, 이렇게 대응한다면 이 연재의 첫 글에서 제시한 대로 ‘정책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4가지 방법’에 부합한다. 이 4가지 방법은 첫째가 정책은 단건이 아닌 ‘조합(policy mix)’이어야 하고, 둘째 타이밍이 정말 중요하며, 셋째 세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책의 효과를 높여야 하고, 넷째 정책을 추진하는 도중에 보완과 점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더 큰 위기가 예고된 유럽의 대응은 완전히 달랐다. 유럽연합과 각국의 대응을 종합하면 세 가지 정도의 방안으로 정리된다. 첫째는 에너지 절약을 통한 수요 감축이다. 정치권이 나서서 캠페인을 펼쳤고, 일부 가격 통제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에너지 원가와 연동해 전기요금, 가스요금, 석유류 제품의 가격이 오르는 걸 과도하게 누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자연스레 사람들은 가격 신호를 받아들이고 소비를 줄였다. 두 번째로 에너지 바우처, 연료비 보조 등의 정책을 활용해 취약계층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세 번째로 횡재세를 도입해 취약계층 지원 재원으로 삼았다. 스페인, 영국에 이어 프랑스, 헝가리,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루마니아 등이 횡재세를 도입했다. 유럽연합은 연대기여금(solidarity contribution)이란 이름의 횡재세를 공식화했다. 유럽은 이번 기회에 아예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그린 리모델링 추진 등으로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과 저탄소 체제로의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난방비 지원과 횡재세에 대한 오해

정부는 지난 2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동절기 차상위계층 등 서민을 위한 추가 난방비 지원’을 발표했다. 1월 26일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액을 두 배로 상향한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지원 대상과 금액이 제한된다는 지적을 받은 터였다. 이번 추가 발표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 최대 59만2000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차상위계층엔 자산의 소득인정률, 정보 미비, 수급 시의 경험 등 다양한 이유로 비수급자가 된 사람들을 포괄하고 있어 이들이 알아서 자신에게 필요한 복지를 잘 찾아 신청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아니더라도 난방비 증가로 생계와 건강에 위협을 받는 이들은 더 있다는 게 문제다. 기존 지원 대상이 아닌 이들 중에 난방비를 너무 아꼈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의 건강보험 지출이 더 나갈 수도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면서도 각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보온은 중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지난 1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난방비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지난 1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난방비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당들은 이번 난방비 대책으로 소득 하위 80%(더불어민주당), 전 가구(정의당) 지원을 제안했다. 이런 정책들이 포퓰리즘적 정책이고, 오히려 에너지 과소비를 유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물론 금액과 지원 범위는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오히려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게만 지원을 한정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 정부·여당안과 야당안 사이에서 지원 범위를 정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다. 독일의 경우엔 지원 대상을 취약계층에 한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소득세 납부자 전원에게 차등적으로 1인당 최대 300유로를 지급했고, 12월엔 연금생활자와 학생에게 별도로 개인당 300유로와 200유로를 지급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도 고유가 대책으로 2007년 기준 총급여액 연 3600만원 이하의 소득계층에게 현금 지원을 한 적이 있다. 난방비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포퓰리즘적 정책이란 생각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에게 ‘난방비 부담으로 건강에 위협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하나 더 새로운 아이디어를 결부해보자. 만일 지금의 가스비에 ‘탄소배당(탄소세를 통한 기본소득 지급)’의 원리를 적용하면 이미 폭등한 가스요금에 세금이 더해진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비싼 가스의 소비를 줄여 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것이다. 대신 세수입을 전 국민에게 배당해 누구에게나 최소한의 에너지 이용권을 보장한다. 비싼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할수록 더 이득을 얻게 한다. 이처럼 탄소배당은 여러 오해를 받곤 하지만, 기본소득은 탄소세율을 더 올리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탄소세를 임계지점까지 부과하려면 역설적으로 최소한의 에너지 이용권을 보장하고, 화석연료를 적게 사용할수록 경제적으로 이득을 얻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횡재세도 탄소배당만큼이나 오해가 잦다. 횡재세를 반대하는 근거로 ‘한국 정유업체들은 원유를 시추하고 채굴하는 기업들이 아니다’, ‘난방용 도시가스는 정유업체가 생산하지 않는다’, ‘미리 석유를 싸게 구입하는 등 자구 노력으로 정유사 이익이 컸다’ 등이 제시됐다. 모두 부차적인 내용이다. 원가 상승을 상회하는 판매가 상승으로 독과점적 이득을 얻은 업종이 있고, 이런 이득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발 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횡재세의 타당성이 생겼다. ‘손실이 날 경우엔 지원하지 않으면서 이득이 날 때만 과세한다’는 지적도 정확하지 않다. 횡재세는 지난 수년간 얻은 평균 이익을 상회하는 초과이윤 중에 일부만을 과세하고, 이전에 손실이 났으면 평균 이익이 줄어든다. 게다가 기업의 손실은 이듬해로 이월돼 법인세에서 차감한다. 횡재세를 걷으니 에너지를 이전처럼 쓰자는 의미도 아니다. 횡재세는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재원 방안일 뿐이다.

필자는 지난해 7월 이 연재에서 물가 대책으로 유류세 인하보단 횡재세, 대중교통 지원(에너지 절약), 환급(취약계층 지원)을 주장했다. 당시 마지막 문장을 다시 반복하며 강조하고 싶다.

“이런 기후친화적, 경제정의적, 서민친화적 정책들과 조합을 이룬다면 정부의 시장친화적 대책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정부가 유연한 자세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형중 LAB2050 대표>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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