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해치가 광화문을 노닌 까닭은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정의로운 의미 외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서의 의미도 있습니다. 화마뿐 아니라 온갖 나쁜 기운을 막아줌과 동시에 행운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서울을 지켜주는 수호자로서의 의미도 함축합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해치상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울시가 홈페이지에서 상상 속의 동물 해치를 소개한 문구다.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나오자 등장한 인물(?)도 ‘해치(해치 인형탈)’였다. 해치는 오세훈 시장에게 가장 먼저 꽃다발을 안겼다. 해태라고도 불리는 ‘상상의 동물’ 해치는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의 마스코트였다. 2010년 SBS에선 <내 친구 해치>라는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다. ‘서울 해치’ 로고송도 만들어졌다.

해치가 서울의 상징이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서울시는 2007년 11월부터 서울을 상징하는 요소 27가지를 선정해 서울시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이때 경복궁이 대표 상징물로 뽑혔다. 서울시는 경복궁이 정적이고 복잡한 구조물이기 때문에 활용이 어렵다고 보고 대안을 찾았다. 서울시는 경복궁과 관련이 깊은 상징 8가지 중 해치를 서울시의 상징으로 최종 선정했다. 한때 중국인의 상상 속 동물인 해치가 서울의 상징으로 적절하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해치는 한때 ‘I SEOUL U’에 밀렸다 최근 들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2020년부터 추진하는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계획에는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 사업이 포함됐다. 해치상의 원위치가 확인되면 2023년까지 복원한다는 계획도 있다.

이번에는 해치가 우표에도 등장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지난 6월 22일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복궁의 동물 석상을 주제로 기념우표 73만6000장을 발행했다. 왕의 즉위식이나 세자 책봉식, 공식적인 조회 행사 등 국가 중대 행사가 열렸던 경복궁 근정전에는 58마리의 동물석상이 있다. 우본은 이중 용·해치·기린·주작 석상을 기념우표에 담았다. 각각 왕실의 권위와 위엄, 법과 정의, 방위신 등을 상징한다.

해치는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 있다. 해치는 높은 판단력과 예지력을 갖춘 상상의 동물이다. 사람 사이 다툼이 있을 때 이치에 어긋난 자를 머리의 외뿔로 들이받는다고 한다. 해치상은 법을 상징한다. 태평성대를 이루려는 조선왕조의 통치이념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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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상이 광화문에 등장한 것은 경복궁을 중건한 뒤인 1870년 무렵이다. 광화문 앞에 해치상을 세운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출퇴근하는 관리들이 ‘시비 사정을 분별하는’ 해치의 꼬리를 만지면서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 담겼다. 둘째, 화재가 잦았던 경복궁의 화기를 잠재우기 위해 세웠다. 해치는 물을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