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전성시대]삼귀-에도 시대 귀신 이야기를 통해 인간을 보다

에도 시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다르지만, 다른 세계의 초자연적이지만 절박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독자는 지금의 우리들을 생각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물에는 몇 개의 시리즈가 있다. 영적인 능력을 가진 오하쓰가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말하는 검>과 <미인>, 얼치기 무사 헤이시로와 천재적 두뇌를 가진 미소년 유미노스케의 <얼간이>와<하루살이>, 기이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과 함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오치카가 주인공인 <흑백>과 <안주> 등등.

일본경제신문출판사(사진 왼쪽). 미야베 미유키의 <삼귀> 원서와 한국어판 표지 | 북스피어

현실에서 만나는 죽은 자의 그림자

<삼귀>는 오치카 시리즈의 신작이다. 형식은 동일하다. 에도의 미시마야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녀가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누군가가 찾아온다. 가끔은 혼령도 찾아온다. 억울한 일이 있거나, 쉽게 말할 수 없는 기이한 일들이 있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가슴 한편에 쌓아두면 언젠가는 그것에 잡아먹힐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객관화를 한다는 의미이고, 더 이상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듣고 잊어버리고, 말하고 잊어버리고, 그것뿐이다.”

<삼귀>에서 오치카를 찾아온 첫 손님은 어린 소녀다. 시골마을에 기묘한 일이 생긴다. 농사철이 되기 전에 행하는 축제를 위해 낡은 집에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 호의라고 생각했지만 이유가 있었다. 화가는 어린 자식을 잃었고, 아내마저 슬픔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좋아했던 것과 함께 하는 풍경을 하나의 그림에 그리면 죽은 자들이 돌아올 수 있다. 저 세계와 이 세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돌아오면서 누구는 두려움에, 누구는 그리움에 빠져든다.

오르페우스 신화부터 단편 <원숭이 손>, 미친 과학자나 사랑에 눈이 먼 사람들이 저승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많이 보았다. 대부분의 경우는 악몽이 된다. 대개 돌아오는 것은 살아있을 때의 그가 아니다. 다른 존재이거나, 살아있을 때의 온기를 잃어버린 무엇이다. 가끔 현실에서 만나는 죽은 자의 그림자도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의 염이 어딘가에 넝마쪽 걸리듯 인연이 깊은 장소에 걸려 있는 거지. 그게 산 사람의 눈에 기괴한 환상이 되어서 보일 뿐이야.”

기묘한 이야기다.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현대인의 사고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지금 이곳에 겹쳐진 다른 세계들을 에도 시대의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화차> <이름 없는 독> <이유> 등 현대인의 악의를 파고들면서도 늘 인간의 온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미야베 미유키는 근래에 에도 시대물에 주력하고 있다. 스기무라 사부로 탐정 시리즈의 <희망장> 등 현대물도 가끔 쓰지만. 인터뷰에서 이유를 말한 적이 있다. 에도 시대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간다.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거나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갖가지 것들이 현실과 어울리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아직 사람들의 밝은 마음이 더 많을 때라는 것.

<삼귀>의 두 번째 이야기는 도시락 가게의 주인에게 들러붙은 귀신 히다루가미의 이야기다. 귀신이 들리거나 업혀 있다면 끔찍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귀신도 인간처럼 사악한 것도 다정한 것도 존재한다. 먼 길을 가다 굶어죽은 히다루가미는 사람에게 붙어서 먹을 것을 대신 먹어버린다. 도시락 가게 주인에게도 그렇게 왔다가, 지나가는 이들이 도시락을 먹고 맛에 반하게 하여 가게를 크게 번창시킨다. 도움을 준 만큼 갚는다. 귀신의 세계도 인간과 다르지 않다.

지금의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는 힘

귀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을 본다. 에도 시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다르지만, 다른 세계의 초자연적이지만 절박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독자는 지금의 우리들을 생각한다. 오치카는 방안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치카가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녀에게 들어오고 다시 그들에게 돌아간다. 그녀에게는 듣는 능력이 있다. 재촉하지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것을 사려 깊게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헤아려 준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삼귀>를 읽을 때 독자는 오치카의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된다. 그녀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따라가게 된다. 논리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들도 그녀의 눈으로 보면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읽고 나면 지금의 세계를 다른 눈으로 보고 들어줄 수 있는 힘도 길러진다.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 오치카는 <삼귀>의 마지막에 이르러 새로운 시작을 결심한다. 상처 때문에 모든 것을 떠나왔고, 비어 있기에 모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던 오치카는 이제 방을 나가려 한다. “흑백의 방을 마음의 곳간방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멈추지 않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눈으로 볼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이미 흘러갔고, 누군가의 기억에서 재구성된 사건들은 이제 현실이 아니라 이야기가 된다.

장르물 전성시대

마찬가지다. 소설, 픽션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고 상호작용을 하는 이야기는 다시 살아있는 사람에게 들어가 무엇인가를 변화시킨다. 현실에서 부딪치는 것도 좋지만, 모든 것을 직면하고 깨닫고 다시 나아가기는 힘든 일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피가 통해서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것인 만큼 가끔은 독이 되지요.” “하지만 읽을거리라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에게서 이미 떠난 것이라 시들어 있습니다. 어떻게 잘못된다고 한들 독이 되지 않고 해도 되지 않지요.” 이야기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이상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 인간이, 세상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소설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가 받아들이고 스스로 결정할 때뿐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