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베 조력자 ‘짐바브웨의 덩샤오핑’ 될까

음난가그와는 무가베 집권 기간 요직을 두루 거쳤다.그는 2015년 중국 칭다오를 방문해, 짐바브웨에 특별경제구역과 공업단지 개발을 위해 논의했다. 서방언론은 “당시의 음난가그와는 충성스런 신하라기보다는 현시대의 덩샤오핑에 가까워 보였다”고 적었다.

에머슨 음난가그와(75)는 짐바브웨의 덩샤오핑(鄧小平)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음난가그와는 지난 11월 24일(현지시간) 짐바브웨 새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37년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쫓기듯 사임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예정된 수순이었다. 집권 짐바브웨 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은 11월 19일 가택연금 중이던 무가베를 당대표에서 해임하고 대신 음난가그와를 추대하면서 일찌감치 그의 권력 승계를 준비해 왔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에머슨 음난가그와 지지자들이 로버트 무가베의 사임 소식이 알려진 11월 22일(현지시간) 음난가그와의 별명인 ‘악어’ 인형을 치켜들며 기뻐하고 있다./하라레|AP연합뉴스

경제회복 약속한 음난가그와

음난가그와는 취임 연설에서 짐바브웨의 경제 부흥을 약속했다. “기업 활동을 장려하고 보호할 것이며, 성과에 따른 보상이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하겠다”고 했고, “해외 투자자들을 위한 안정적인 환경을 창출하겠다”고 강조했다.

내실 없는 수사로만 볼 이유는 없다. 음난가그와는 경제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도 갖췄다. 인플레율이 2억%까지 치솟았던 2008년, 짐바브웨는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화를 도입해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다. 당시 달러화 도입을 주도한 이가 바로 음난가그와다. 현지 온라인 경제지 <더소스>는 “음난가그와는 아마도 이때부터 자신이야말로 짐바브웨 경제를 개혁할 주인공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음난가그와는 2015년 중국 산둥성 칭다오를 방문해 현지 기업가들과 중국 국가개발은행 관계자들을 만나 짐바브웨에 특별경제구역과 공업단지 개발을 위해 논의했다. 국영 CCTV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 가장 시급한 경제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부분은 찾을 수 없다”면서 “농업과 제조업 개발을 위한 인프라는 15~16년 뒤처졌다. 우리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새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절대권력자 무가베를 비판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더소스는 “당시의 음난가그와는 충성스런 신하라기보다는 현 시대의 덩샤오핑에 가까워 보였다”고 적었다.

서방언론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음난가그와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무가베에 비해 훨씬 실용적이며, 이데올로기는 덜 중시한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BBC방송도 음난가그와의 한 측근의 말을 인용해 “음난가그와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음난가그와가 경제개혁의 첫 작업으로 짐바브웨인이 기업 지분 과반을 보유하도록 규정한 기존 법률을 폐지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짐바브웨 경제를 파탄낸 주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2000년 농장 몰수 사태의 후유증을 수습하는 것도 과제다. 당시 무가베는 해방전쟁의 일환이라며 백인 소유 농장을 무상 몰수했다. 경험이 부족한 현지인들이 농장 운영권을 대신 가졌다. 그 결과 수출농업은 무너졌고, 외화 수입까지 끊어졌다.

2009년 짐바브웨 경제위기 당시 하라레 엡워스 지역 여성들이 구호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무너진 농업경제를 회복하는 것은 에머슨 음난가그와의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위키미디어

산적한 개혁과제, 잠재력은 충분

무가베에게 농장을 빼앗긴 백인 농장주 4000여명은 피해보상 금액으로 30억~35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보상뿐 아니라 토지 소유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제 토지나 다른 재산을 빼앗길지 몰라 불안해 하는 상황에서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개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짐바브웨의 경제회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토지는 여전히 비옥하고, 일부 산업 인프라도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무엇보다 교육열이 높다. 무가베는 혁명투사 이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유학 경험까지 갖춘 엘리트였다. 집권 초기 그는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고, 젊은 인재들도 다수 배출했다. 음난가그와의 집권으로 체제가 안정되면 해외로 달아났던 이들 중 다수가 고향으로 돌아와 경제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그래서 파이낸셜타임스는 “짐바브웨의 마오쩌둥에 비견되던 무가베가 물러났다. 이제 음난가그와는 자신이 선택만 한다면 짐바브웨의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음난가그와는 무가베 집권기간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권의 폭압적 통치를 주도해 ‘악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가 갑자기 민주주의자로 변신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야당의 역할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음난가그와는 11월 30일 새 내각 인사 22명을 발표했다. 무장투쟁 당시 동료였던 크리스 무츠반그와에게 정보장관을 맡겼다. 음난가그와의 측근으로 분류돼 지난달 재무장관에서 쫓겨났던 패트릭 치나마스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새 내각에 야권 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제1야당인 민주변화운동(MDC)의 유력 정치인 텐다이 비티는 “허니문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났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내년 선거 승리 위해서도 경제회복 절실

음난가그와는 무가베 잔여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 자유롭고 민주적인 선거를 열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 2008년 대선 1차 투표 때 야당 후보 모건 창기라이에게 패배하자 무가베는 무자비한 폭력으로 창기라이 진영의 선거운동을 방해했다. 군대와 경찰이 동원된 당시의 야당 탄압을 주도한 이가 바로 음난가그와다. 내년 선거 승리가 불투명하다면 음난가그와가 또다시 폭력을 사용하거나, 선거 부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선택이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회복이 중요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짐바브웨인들은 ‘악어’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만약 음난가그와가 정말로 짐바브웨 경제를 반등시킨다면 내년 선거에서 자력 승리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심진용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im@kyunghyang.com>